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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면 Jun 06. 2023

05. 시간이 약. 정말 평생 가는 건 없을까?

심연: 찢어진 마음 들여다보기

 시간이 약이다. 그 말이 사실일까? 나는 그 말만큼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항상 흘러가고 있고 그 속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겪을 것이고 끝에 도달했을 때 결국 시간이 약이라고 말할 것인가. 시간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 시간 속에서 엄청난 투쟁을 거쳐 해결한 건 본인이다.


 위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가끔 뉴스를 통해 어떤 사건의 피해자가 몇십 년 후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10년 전에 있었던 학교 폭력 고발, 20년 전 뺑소니로 인해 자식을 잃은 부모의 보복 살인 등.

 그러한 사건이 발생하면 일부 사람들은 잘 살다가 왜 이제 와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모르는 말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신체를 잃거나, 죽음의 공포 등 엄청나게 큰일을 겪은 사람은 시간이 멈춰버린다. 표면적인 시간은 흐를지 모르나 그 사람의 시간은 사건 발생의 시점에서 더 이상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10년 내내 학교폭력의 시간을 되풀이했고, 20년 내내 자식을 잃은  속에 산 것이다.

 그런데도 언젠가 어떤 이유로 다시 그 사람의 시간이 흐른다면 그때 "거봐 시간이 약이지?"라고 말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그 고통과 함께하였다면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본인도 오래 고통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 시간이 약이겠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부는 시간이라는 것에만 의존해 매일매일 어두운 방에서 시간이 약이 되길 기다리며 하루, 한 달, 한해를 그렇게 평생을 기다리다 끝나기도 한다. 또 일부는 오히려 악화되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나 또한 많이 들었던 말이었으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 같은 무력감이 들었다. 수많은 병원 예약과 경과 관찰 등으로 기다리는 것에 이골이 난 상태라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몇 년? 몇십 년?'라는 마음과 함께 이 상황이 더 괴롭게 느껴졌으며 '정말 시간이 흐르면 아무렇지 않아 질 수 있는 것일까? 내 몸은 그대 론데, 그대로 불편한데, 평생 눈으로 언제든 확인이 가능한데, 그 큰 사건이 아무렇지 않아 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며 '귀찮은 건가?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왜 그런 말하는지 안다. 달리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고,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인 것 같고, 좋은 위로의 말도 더 생각하기 귀찮은 데다가 상대방의 말을 멈추게 하기 좋은 말이지 않은가. 그리고 상대의 슬픔이 얼른 과거가 되어서 아픔을 토로하는 상황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을 테다. 물론 그 사람이 슬퍼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얼른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 한 스푼과.


 그렇지만 직장에서 혼난 것, 시험을 망친 것, 사소한 실수를 한 것 등이 아닌 정말 큰 사건을 겪은 사람에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하루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고역인 그들에게 약이 되는 시간은 세상이 끝이 났을 때인 경우도 있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이 끝나기만을 매일 기다리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시간은 약이 아니다. 그 말로 그 사람을 시간 속에서 혼자 내버려 두지 말아 달라. 그 사람이 마음을 꺼내어 보여주는 이 순간이 나아지기 위한 첫걸음이고 지금 당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의 상태가 나아졌다면 "거봐 결국 시간이 약이지?"라는 말 대신 "그 긴 시간 동안 살아남기 위해 너무 고생 많았다"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그들은 지금도 그 고통을 최대한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 넣고 열심히 외면하는 중이다. 그러니 그 시간 동안 그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싸워왔는지를, 현실로 돌아와 주변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이 순간은 물론 앞으로도 모든 힘을 다해 버텨가며 살아갈 것이란 걸 알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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