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출근과 야근, 출장이 잦은 직장을 다녔다. 예상치 못한 야근, 비정기적인 지방 출장 때문에 정기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기 어려운 일상이었다. 두 달 정도 헬스장에 다닌 적이 있는데, 코로나 시국이라 마감도 이르고 주말엔 휴관이라 주 2회 출석하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다음 달 헬스장 등록하지마! 출장 많아서 거의 못갈거야."
그 무렵 팀장은 필라테스를 연장했던가, 안했던가. 회사를 중심으로 내 일상과 선택이 좌지우지된다는 건, 조금 서글픈 일이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야근은 간혹 있지만 출장은 거의 없다. 레슨 일정을 바꾸는 건 수강생도, 강사도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이다. 드럼 학원을 등록한 이후, 하늘이 두쪽 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화요일엔 야근하지 않겠다고 나와의 약속을 했다.
첫 한 달은 칼퇴를 하고 여유있게 학원에 도착해서 패드를 두드렸다. 업무량이 많은 시기, 레슨 시간에 아슬아슬 맞춰 갈 때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제 시간에 학원에 도착했다.
문제는 2월의 어느 날 폭탄같은 어떤 일이 우당탕 굴러들어왔다. 때마침 학원에 가는 화요일이었다. 갈등했다. 드럼레슨이 아니었다면, 100%사무실에 남았을테지만, 조용히 노트북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대표는 별 말 없었지만, 늦은 밤까지 업무 메신저에 유난히 날 많이 테그해서 이런저런 현황을 공유했다. 신나게 드럼을 치면서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때때로 연습을 멈추고 조용히 '좋아요'를 눌렀다.
다음 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서너 시간의 야근을 야근을 쌩까고 드럼을 쳤으니, 업무가 밀렸음은 물론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달까. 어렴풋 대표가 하는 대화를 들었는데, 잠을 거의 못잤다고 했다. 드럼치고, 엄마랑 두런두런 얘기도 하고, 꿀잠을 잔 직원은 하필 그 얘기를 들었다.
사실 살금살금 퇴근할 때 대표는 마침 대표실에서 나오고 있었고,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조금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 뒷모습을 봤으리라 짐작한다. 그렇지만, 드럼학원에 간 것에 후회는 없다.
그날은 오랜만에 새로운 악보를 받았다. 직장이 아닌 곳에도 내가 존재한다는 것, ㅇㅇㅇ매니저가 아닌 드럼을 배우는 나, 다른 공간에 내가 존재하는 시간이 간절했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내 몫의 일을 누가 대신 해주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화요일에 쌩깐 야근은 수목금 풀 야근, 주말 출근으로 돌아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