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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로운 민트초코 Apr 02. 2024

다시 드럼을 시작하다

버거운 일상에 좋아하는 것 채워넣기

내일이 두렵지 않은 날은, 내일 출근을 안할 때 뿐이다. 모든 날 모든 순간 아침이 오는 게 싫다. 세수 하기 싫고, 버스 타기 싫고, 엘리베이터도 타기 싫고, 회의도 들어가기 싫고, 전화도 하기 싫고, 메일 쓰기도 싫다.

내일이 기대되는 평일은 존재하나. 하루가 무탈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안전한 장소, 내 방 침대 위를 사랑한다. 이불 밖에서의 생활은 그닥 유쾌하지 않고, 버겁고 또 버겁다.

분 단위로 날아드는 메일에 답장을 하고, 통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며, 소통 한 번에 에너지가 조금씩 소진되는 걸 느낀다. 50% 정도만 충전된 상태로 집을 나서, 간신히 집에 갈 기력만 남기고 사무실을 나선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너덜너덜해진다. 잠을 자면서 간신히 하루를 버텨낼 만큼 충전한다.

어느 날, 나의 하루가 싫어하는 것들로 꽉 찬 것 같아서 내가 좋아했던 게 뭔지 생각해봤다. 어렵지 않게 드럼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 까지, 내가 가장 사랑했던 드럼.


학원 가는 골목길, 드럼학원의 퀘퀘한 냄새, 손에 감기는 스틱의 감촉, 딱딱하지만 나름의 리듬이 있는 메트로놈 소리와 언젠간 반드시 연주하게 되는 노래 한 곡. 산적 두목 처럼 생겼지만 섬세한 재즈를 연주하던 학원 선생님, 그리고 그 시간에 가면 언제나 만나는 수강생들까지. 빠짐없이 모두 좋았는데.


새해에도 일은 지겨웠다. 2024년 1월 2일에도, 나는 메일을 쓰고 통화를 했다.


점심을 먹고 3시 즈음 되었을까. '더는 참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명치 께에서 뭔가 묵직한 게 울컥하는 느낌이 든다. 3시 20분 즈음, 결국 '더는 참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휴대폰을 들고 비상구 계단으로 달려갔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한 전화번호를 누른다. 신호가 서너 번 갔을까, 상대가 경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성인 드럼 레슨 예약하고 싶은데요..평일 8시 이후에 레슨 가능할까요? 금요일 빼곤 다 괜찮습니다."


"보자...화요일. 화요일 8시가 비었네요."


순조로웠다.


"네, 그럼 화요일 8시로 할게요. 어떤 걸 준비해서 가면 될까요?"


"7시 50분까지 오셔서 가입서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학원 한 번 둘러보시고요. 스틱은 빌려드릴게요."


"네, 언제부터 레슨 받을 수 있나요?"


"오늘이 화요일이네요. 오늘부터 오셔도 됩니다."


지겨운 오후를 버틸 수 있는 한 줄기 희망이 보인다.


"그럼 오늘 7시 50분까지 갈게요. 그런데..제가 신발을 따로 안챙겼는데.."


"아 예..그냥 운동화 신고 오시면 됩니다."


내 발을 내려다본다. 마침 운동화를 신고 출근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니 슬쩍 미소가 피어 오른다. 다시 드럼을 배운다. 다시 음악을 시작한다. 비상구 계단을 빠져나와 모니터 앞에 앉는다. 10분 전 까지만 해도 더는 참지 못할 것 같은 상태였는데, 조금은 참을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일상의 버거움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내 하루에 내가 좋아하는 걸 채워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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