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상실 (2)
다행히 음주로 인한 식욕과는 금방 멀어질 수 있었다. 목관리를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당시 실용 음악 보컬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술만 마셨다 하면 목이 쉬어버려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워낙에 목청이 크고 말이 많은 탓이었다. 덕분에 학기 중의 금주는 불가피한 것이었고 방학 동안에도 연습을 멈출 수 없었으므로 자연히 음주와 담을 쌓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터져버린 식욕과 증량되기 시작한 체중 앞에는 음주 외에도 여러 장애물들이 있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식사자리나 남자친구의 선물 공세를 빙자한 음식 공세가 그것이었다.
그 시기의 내겐 식사량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억눌러온 시간을 보상받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몸이 감량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옷을 입을 때마다 드는 은근한 수치심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기어코 쟁취한 음식의 자유를 또다시 자의로 박탈할 만큼 강한 동기가 되지는 못했다. 나는 여유로운 상의와 허리가 밴딩으로 된 트레이닝팬츠에 의지하기 시작했고 남들이 나의 증량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관심을 가진다 해도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도 종일 붙어 다니던 남자친구와 대학 동기들, 심지어는 가족들까지도 내게 체중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는 이가 없었으므로 나는 마음 놓고 먹고 눕고 앉아있는 부동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안심했다. 얼굴에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가 보다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의 마름에 대한 환상은 커져만 갔다. 연예인과 주변 마른 체형의 친구들을 보며 ‘역시 마르면 이목구비가 덜 예뻐도 상쇄 가능하군.’하는 음침한 생각을 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나의 환상과 현실의 격차는 커져만 갔고 나는 그것을 회피하느라 바빴다.
대학 시절의 나는 거의 연습실에 살았다. 각 단체 수업별 합주와 한 학기당 실시되는 공연을 준비해야 했던 것보다도 학교 선배들과 밴드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 나를 그곳의 지박령으로 묶어두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나는 내 인생 어느 때보다 열정과 열의에 차 있었다. 다르게 말해 인생 어느 때보다 압박과 부담에 짓눌려 있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입시 때보다도 열심히였다. 학기 중에는 수업이 끝난 뒤부터 늦은 시각까지 학교 연습실과 합주실에 남거나 학원에 가곤 했으며 방학에는 매일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 30분 마감 시각까지 학원 연습실 한 구석에 박혀 연습이 되든 안되든 그 자리를 지켰다.
나는 교외 친구들과의 약속을 최소화하고 오로지 연습에만 전념했다. 남자친구와도 따로 작정하고 데이트하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캠퍼스 커플이었고 학교에서 붙어 다니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했으며 집이 가까워 각자 연습이 끝난 후 동네에서 밥을 먹고 산책하는 것으로 데이트를 대신하곤 했다. —물론 추후에 안 사실이지만 남자친구는 우리가 데이트를 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나를 배려해 주었던 것이다.—
교우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에서 내내 붙어 다니던 친구들과는 거의 비슷한 일상을 공유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각자 연습이 끝나고 자취하는 친구네 집에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새벽을 보내는 식으로 20대 초반의 억눌린 유희의 한을 풀곤 했다. 우리는 배달음식을 사이드 서너 개 추가하여 시켜 먹고 곧바로 누워 졸거나 휴대폰을 했다. 겨울에는 식사에 연달아 붕어빵과 와플을 먹었고 여름에는 초밥과 치킨, 떡볶이를 동시에 시켜 먹는 사치를 부렸다.
나에게 섭식이란 어느새 휴식과 일탈이자 감정 해소의 방식이 되어 있었고 그때의 내게 과식이란 그런 것들을 깊게 사유해 볼 만큼 별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했다. 만족할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먹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만족의 역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그러한 나날이 반복되던 21살의 어느 여름날, 나는 학교 기숙사 근처 벤치에서 열명 남짓 되는 언니 오빠들과 모여 시시덕대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살쪘냐?
오랜 시간 들을 일 없길 바랐던 그 말을 듣고 나는 겨울철 잔뜩 언 손처럼 둔한 표정이 되어 어버버거렸다. 그의 말에 한두 명씩 나를 뜯어 살피는가 싶더니 이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와하학 웃으며 동조하기 시작했다. 맞네, 살쪘네!
나는 도무지 뭐가 웃긴지 알 수 없었으나 우선 함께 웃으며 ‘조금 쪘어요!’라는 말로 내가 심각하지 않음을, 살에 개의치 않음을 어필하려 애썼다.
그들은 내게 ‘처음 봤을 때 정말 인형같이 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과 같은 말을 하며 나를 아래위로 훑고 놀리고 비웃었다. 하지만 어쩌면 비웃음까지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들이 나를 조롱한다 느꼈지만 모두 나의 피해의식 혹은 과민반응이었을지 모른다. 명확한 것은 그 순간의 수치와 창피, 살이 쪘다는 사실을 죄스럽게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뿐이었고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두 번째 다이어트의 시작이었다.
나는 나를 믿었으며 희망적이었다. 이미 성공한 전적이 있으니까, 두 번은 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깟 거, 하면 되지!’—
문제는 첫 번째 다이어트를 하기 전보다 아는 것이 많아졌다는 데 있었다. 나는 매일 운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의지와 다짐을 필요로 하는지 알았다. 음식을 조절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으며, 외식의 유혹은 또 얼마나 자주 닥치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자주 간식과 야식을 찾으며 얼마큼 밥보다 설탕 덩어리를 좋아하는지 알았다. 무엇보다도, 허벅지 사이가 떨어지고 팔뚝이 얇아지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지 알았다.
나는 시작부터 여러 가지를 간과했는데, 바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모두 같은 ‘나’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큰 오류로 작동했다.
첫 번째 다이어트를 하던 때와 그때의 나는 동기부터가 달랐다. 전자의 경우 미디어의 노출에 따른 마름에 대한 동경과 주변 모태 마름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이 욕심까지 부리진 않을 정도로 있어온 와중에-애초에 내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실용음악을 시작하며 중간중간 기획사 오디션을 볼 일이 있었고 그에 따라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된 케이스였다. 스스로의 목표에 따른 결심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두 번째 다이어트는 타인에 의한 결심이었다. 나는 학교 선배들의 가볍고도 얄궂은 희롱으로 내 존재에 수치를 느꼈고 설욕에 따른 그들의 인정을 기대했다. 무엇보다 섭식충동으로 미뤄둔 언젠가 가져본 적 있던 환희가 깊은 내면에서 들끓으며 나를 끊임없이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 표면으로 드러나기로써는 선배들의 여파였으나 사실 그들은 내가 회피해오고 있던 것들을 끄집어내 준 역할을 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날씬한 몸과 매일 예쁜 옷을 갖춰 입던 것에 대한 기쁨, 가볍고 활기찬 몸의 에너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내게 그러한 욕구가 없었다면, 혹은 덜했다면 애초에 그들의 말에 분개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웬만큼 유명한 홈 트레이닝 영상들은 모조리 섭렵한 데다 질리기까지 했으며 인스타그램이 활발해질 초입 무렵이었던 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과도하게 활발해져 온갖 다이어트 콘텐츠와 ‘미’에 대한 욕망을 초래하는 게시물이 넘친다는 점, 무엇보다 음식을 갈망하기 시작했으며 내 것이 아니라 생각했던 마름을 기어코 얻어낸 경험 등,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처음과는 달랐다.
나는 조급해졌다. 내 드러나는 모습이 열등하게만 느껴져 밖으로 나가기 꺼려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 가야 했고 학원에 가야 했으며 나의 열등의식을 부추긴 선배들도 계속 마주쳐야 했다.
나는 조금 더 빠르고 명쾌한 결과를 원했다.
절식 혹은 단식. 그것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