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상실 (1)
세상에는 가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 내가 고작 음식에 시간을 쏟고 있는 게 유독 허망하게 느껴질 만큼.
언제부턴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음식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친구와 평범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잊었고 집중과 몰두를 잃었으며 고독과 무의미, 냉소에 생각을 혹사시켰다. 그런 류의 생각들이 으레 그렇듯 나는 종종 깨닫고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었으나 그것이 섭식이라는 강렬한 욕구와 대치하며 짓눌려온 시간을 보상해 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음식들, 이를테면 밀가루와 설탕, 튀김 앞에서 금방 이성의 끈을 놓았다. 홀로 방에 틀어박혀 평소에 먹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물을 열흘 굶은 짐승마냥 격 없고 자각 없이 우적우적 씹어 삼키다 보면 살면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성의 상실을 절감하게 된다. 나는 좁디좁은 방 안에서 그러한 처참하고도 적나라한 본능을 홀로 마주하길 반복해 온 것이다.
폭식을 하는 동안 나는 내가 아니었다. 무언가가, 내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지전능한 무언가가 나의 정신을 도려내고 의식을 수제비 뜯듯 죽죽 잡아 뜯는 듯했다.
나는 식욕 앞에서 도덕성마저 잃곤 했다.
22살 말, 친구의 소개로 동네 빵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해는 내가 처음으로 닭고야-닭가슴살, 고구마, 야채- 식단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전까지는 늘 먹던 음식의 양을 조절하는 정도였다. 아니, 조절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한때는 분명 그랬던 것 같으나 21살 중후반부터는 고등학생 때부터 한 두 스푼씩 덜기 시작한 쌀밥을 한 두 스푼씩만 먹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특히 21살이 다 지나갈 무렵에는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단식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내 첫 다이어트는 고등학교 2학년 중후반에 야식을 끊고 근력 운동을 매일 40분 정도씩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의 내게 다이어트란 식단보다는 운동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유연한 사고를 했던 것 같다. 한두 끼 과식하고 어쩌다 한 번 디저트를 서너 개 연달아 먹는다고 해서 지금만큼 낙심하거나 자괴감을 느끼진 않았다는 소리다. 먹었으면 조금 더 걷고 뛰면 그만이라는 가벼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 그때의 나는 다이어트를 인생의 목표로 삼지 않았고 따라서 지나칠 정도로 몰두하지 않았다. 첫 번째 다이어트에서 나는 먹고 싶은 것을 적당히 챙기며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름대로 천천히, 큰 강박 없이 감량할 수 있었다.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길에 들어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식단보다 운동에 초점을 뒀다는 것이 음식 종류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해 왔다. 밥은 포기해도 빵과 과자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류의 음식들이 대개 다이어트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고 나는 감량을 위해 그런 음식들을-그러니까 내가 평생 주식으로 삼아온 음식들을- 종종, 아니 꽤나 자주 참아야 했다.
인내의 시간 끝에 나는 차츰 감량에 성공해 나갔다. 그러나 내가 살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체중계의 숫자가 줄어가는 것과 별개로 거울 속의 내 모습은 항상 미묘하게 불만족스러웠다. 얼굴의 부기가 덜해 보이는 날에도 체형은 가로로 긴 짧은 몽당연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 보였으며 옷을 입으면 그러한 단점이 더욱 부각돼 보여 나 자신이 도라에몽 내지는 트롤, 미니언즈로 보일 지경이었다.
평생 안 하던 운동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해온 데다 식사도 차차 줄여나가고 있는데 도라에몽, 트롤, 미니언즈라니! 내가 목이 짧아 터틀넥이나 좁고 두툼한 라운드 넥이 어울리지 않고 통뼈에 짧은 허리를 가지고 있어 본래 잘록한 허리라인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이며 따라서 너무 붙는 옷은 삼가는 편이 낫다는 것을 그때부터 일찍이 알았더라면 나 자신을 조금 더 관대하게 대할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당시의 나는 그러한 나의 체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이상을 향해 요령 없이 달려 나갈 뿐이었다. 부실한 식사량으로 새벽 내내 똘망똘망한 눈을 치켜뜬 채 꼬르륵 거리는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먹방 유튜브를 보는 식이었다.
언젠가부터 교복 치마 허리가 여유로워져 조임기를 바짝 조이고 허벅지살이 두드러져 보여 입기 겁내던 스키니진을—그때는 와이드 팬츠가 유행하기 전이었다— 겁내지 않고 입게 되었다는 걸 의식하곤 있었으나 나는 여전히 나의 맵시가 불만족스러웠다. 주변의 마른 친구들을 보면 더욱 그랬다.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소리는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종종 들었지만 나의 목표는 단순히 '조금 빠져 보이는 정도'가 아닌 '마름'에 있었고 그렇게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나는 어느새 성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게 '말랐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막상 듣게 되니 기쁨보다도 얼떨떨했다. 내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금방 기쁨에 차올라 뿌듯과 환희를 맛보았다. 그것은 초콜릿 과자보다도, 캐러멜 쿠키보다도 달고 중독적인 맛이었다. 나는 그제야, 서너 명의 말랐다는 감탄을 듣고 나서야 나의 감량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거울 속의 내가 제법 나쁘지 않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감량에 성공하고 주변인들의 인정과 칭찬으로 한창 콧대가 올라갔을 무렵 나는 1년이 넘도록 속박해 오던 의지를 조금씩 너그럽게 풀어주기 시작했다. 하기 싫어도 매일 하려고 노력했던 운동은 가끔 몸이 무거울 때 운동장과 집 아래 길게 이어진 대로를 빠른 속도로 걷는 것 이상으로는 하지 않게 되었고 식사량도 본래의 양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조절하고 움직이려는 관성이 있었으므로 한동안은 감량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변수는 내가 성인이 되었고 술자리가 빈번해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늘씬한 몸에 익숙해짐에 따라 슬며시 등한시해 오던 몇 가지 다이어트 수칙들을 스무 살 초중반 혈기왕성한 술자리의 소주병 뚜껑과 함께 완전히 해방시켜 버렸고 주저없이 음식을 삼켜대기 시작했다. 식탐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장악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요요가 찾아왔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허벅지 사이를 떼어내는데 걸린 1년이 넘는 시간과 다시 맞붙는데 걸린 단 몇 주의 시간 차만이 야속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