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상실 (3)
두 번째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나는 과도하게 덜 먹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운동을 하기 싫은 마음에서 기인한 게으름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건 운동을 하지 않으려면 밥을 한 스푼이라도 더 덜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내게 '덜 먹을수록 살이 빠진다.'는 다이어트의 정설은 '운동을 하기 싫은 마음이 찾아낸 구실'에 더 가까웠던 셈이다.
그때부터 백미 두 스푼 이상을 푸는 건 양심에 찔렸고 떡볶이와 라면은 물론이고 과자와 빵 같은 간식류는 일절 입에도 대지 말아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욕심부려 극단적인 다짐을 한다고 해서 어제까지 온갖 인스턴트로 입맛을 충족시켜 온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사람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끼니를 부실하게 챙기다 보니 더 달고 짠 속세의 맛이 당겼다. 나는 연습에 집중하며 식욕을 잊으려 하다 집중력이 흐려지는 순간 참지 못하고 편의점으로 내달리거나 학식을 반 이상 잔반대에 흘려보내놓고 두 시간 뒤 군것질로 입맛을 달래기 일쑤였다.
참고 참다 과식하는 순간이 있을지언정 매 순간 양 조절을 염두에 두고 언제나 배가 불러오기도 전에 숟가락을 내려놓으려 노력하다 보니 살은 착실히 빠져갔다. 나는 종종 참지 못하고 먹은 과자 두 세 봉지나 치킨과 라면이 감량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지 못할 정도로 웬만큼 적게 먹었고, 과식했다 싶은 날엔 긴 거리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빠르게 걸었다.
나는 한순간에 주변인들에게서 살이 안쓰러울 정도로 많이 빠진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야위어졌다. 그들은 대체로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나는 곧 쓰러질 것 같다는 그들의 말을 보호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여리여리해 보인다는 의미로 해석하곤 뿌듯해했다.
하루는 대학 동기 중 한 명이 말했다.
“아니, 내 말은. 단순히 날씬하다는 느낌 보다도… 아파 보여.”
그것은 분명 누군가는 무례하게 느낄 수도 있을 법한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감동했다. ‘마침내! 마침내 그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지?’
그때쯤부터 나는 통장에 돈이 없을 때 단념하지 못하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까지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충동적이고 아둔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필시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징조였다.
졸업이 다가왔다. 음악을 계속해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서 내가 내린 판단은 명확했다.
나는 팀 활동을 해 나가는 내내 이미 인정받고 있는 팀원들 사이에서 제 역할을 잘 해내는 것 이상의 증명을 해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과 내가 그들의 프런트맨이 될 자격이 없다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만든 지옥은 그 어떤 타인보다 체계적으로 나의 숨통을 죄여왔고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음치가 되었다. 한 소절과 다른 소절 사이에 마땅히 쉬어져야 할 숨이 쉬어지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매 소절마다 소리를 쥐어 짜내듯 부르면 겨우 한 곡을 완창 할 수는 있었으나 그런 상태로 완창 하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상황을 개인적인 노력으로 해결해보려 했으나 잘 되지는 않았다. 부담감으로 생긴 증상을 부담감으로 억누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 과정에서 어그러진 무대만 수차례였으며 겨우 해낸 무대들도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무대 영상들이 휴대폰 사진첩에 쌓여가는 동안 팀 활동은 전반적으로 시들해졌고 버티고 버티던 2학년 2학기 말, 나는 팀원들에게 팀 활동을 지속해 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통보했다. 그들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적당히 받아들였고 그것은 나의 힘을 주욱 빠지게 만들었다. 몹시 허무한 끝이었다.
팀이 끝맺음 지어지고 나니 음악을 더 할 이유가 없겠다 싶었다. 그것을 향한 나의 애정과 믿음, 무엇보다도 기능적인 부분의 결함으로 애를 쓰기보다는 하루빨리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해진 것이다. 다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연습실에 가는 발걸음만은 끊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꾸준히 친하게 지내온 친구 다현-가명-에게 나의 막막함을 털어놓았다. 그때 다현은 피부미용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녀는 방학 동안 실습을 나갔던 취업 협약처에서 마침내 채용이 확정되었다며 의기양양해했다. 나는 그녀에게 축하와 부러움을 동시에 늘어놓으며 의기소침함을 구태여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다현은 나의 푸념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빛내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피부미용 어때?”
나는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때는 정시 원서 접수 기간이었고 원서를 넣기에 나는 피부미용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현은 어느새 진지해져 그래도 상관없다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제로 베이스에 가까운 상태로 오는 학생들이 꽤 많으며 수업 커리큘럼도 기초에서부터 시작되므로 내 생각보다 무리가 아닐 거라는 거였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충동적으로 나의 새 진로를 결정했다. 이전까지 없었고 결정하는 순간에조차도 생기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생길지 알 수 없는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피부미용을 다만 음악을 그만둘 용기로써 이용하게 된 것이다. 나는 다음 날부터 연습실에 나가는 일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나를 열정과 집념에 사로잡히게 하는 대가로 고뇌와 부담을 키우던 근간이 마침내 파괴된 것이다. 나는 자유로움을 느끼는 한편 나로 하여금 강력한 동력을 불러일으키던 육중한 무언가가 빠져나간 자리의 공허를 속절없이 느꼈다.
하루아침에 일상이 비었다. 학교는 종강을 했고 남자친구에게는 결별을 고했으며 매일같이 보던 동기들은 구태여 볼 이유가 없어졌다. 그들이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위치에 살고 있기도 했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었다기보다는 상황이 맞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집보다 자주 왕래하던 연습실로의 발길까지 끊은 상태에서 나에게 남은 건 정말이지 다이어트와 넷플릭스뿐이었다. 내게는 이렇다 할 취미도 없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한 가지를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성향이었던 나는 음악과 아이돌 팬픽 읽는 것 외의 어떤 것에도 큰 호기심과 끈기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것은 질렸고 부르는 것은 잘 되지 않으며 대학 생활에 집중하느라 학창 시절 아이돌에게 가졌던 관심도 시들해진 지 오래니, 도무지 내게 남은 산물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인생이 전반적으로 모호하고 불분명해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집에만 있으려니 몸이 찌뿌둥했고 나가려 하면 의도하지 않아도 술약속만 잡혔다. 그때 다시 자주 보기 시작했던 두 살 많은 언니는 낮에 일을 했고, 중학교 동창은 여전히 4년제 재학생에 학생회 임원이었어서 방학 동안에도 학교에 가거나 그곳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았기에 낮에 각자 할 일을 하고 저녁에 만나 안주를 저녁밥 삼아 술을 먹는 것이 어느새 당연한 수순이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웬만큼 놀아야 했을 스무 살 초반에 목관리를 하느라 참아온 무언가가 터지며 나는 매일 소주 세 병씩을 웃돌게 마시며 만취 상태로 새벽 늦게 집에 돌아와 다음날 늦은 시각까지 침대에 누워 어기적거렸다. 또 술을 마실 때마다 안주를 배가 터지겠다 싶을 만큼 과식했고 눈을 뜨면 어김없이 후회하며 약속 시간 전까지 최대한 굶으려 노력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몸에 군살이 붙고 얼굴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술을 마시면 웃음이 끊임없이 나왔고 안주로 배를 채우면 공허감이 가셨으며 남자들에게 헌팅이 들어오거나 실제 합석까지 하는 날에는 자존감마저 오르는 듯하니 고작 다이어트를 위해 술자리를 팽개치기에는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유혹적이었다.
그러던중 나는 집에서 30분 걸리는 위치에 있는 피시방에서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내가 그곳을 택한 명확한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오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근무 시간대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체중을 유지하거나 줄이며 밤을 즐길 수 있을지 골몰하고 있었다. 여전히 운동은 싫었고 숙취에 몸을 일으키는 건 더욱 싫었다. 당장 떠오르는 답은 굶는 것뿐이었고 결과적으로 나의 고민은 ‘어떻게 해야 더 잘 굶을 수 있는가’로 이어졌다. 잘 굶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줘야 하는데 당시의 텅텅 빈 스케줄로는 시간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내게는 보다 생산적으로 시간을 축낼 거리가 필요했고 마침 술값으로 용돈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가 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