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딱지 딸랑구
떼어내려 하면 할수록 들러붙는 것.
꼭 너와 나 같아.
딸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 딸은 껌딱지 중의 껌딱지.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얼마 전부터 겨우겨우 1칸당 1명으로 합의 봤으나 종종 아래 문틈으로 발을 넣어달라 하고 최소 옆칸으로 나란히 이용하며 볼일을 보는 중에도 계속 말을 붙인다. 나는 사랑을 퍼부어 준다고 줬는데 왜 이 아이는 내 관심을 갈구할까.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중에 일상을 자연스레 아이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최근 여럿 만났다.
어른들의 온/오프라인 모임에 아이를 데리고 등장하는 사람들. 나는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거나, 물리적 차단을 위해 방문을 닫고 엄마 시간이니까 들어오지 말라고 말해두곤 했고 그것이 당연하다 여기곤 했다. 하여 아이와 함께 참여한 사람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에구... 여건이 안돼서 데리고 왔구나...' 라며 그들이 처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던 나였다. 너무나도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터라 그것이 나와 그 사람의 다른 태도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일생주기 중 당연히 아이와의 시간을 자연스레 인정하는 사람과, 반면 나는 일상 중 노키즈 타임을 너무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
이라고 작년 8월에 쓰다가 말았던 글을 보관함에서 발견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지금. 만 10세의 후반을 달리는 아이.
엊그제 아침 운동 후 가진 티타임에서 멤버들에게 내가 한 말을 되새기자면 이러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애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말을 안 하네요?'
'아유~ 무소식이 희소식이에요'라는 말로 해당 대화는 종결되었지만 나는 속으로 '어라 이것 좀 보게?' 하는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 껌딱지가 변했다. 점착력에 변화가 조금 생긴 듯하다. 그녀는 누구랑 뭐 하고 놀았는지 자기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예전만큼 세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내심 바라던 바이기도 하지만 왜 내 입은 삐죽 대는 것인가. 점진적인 아이의 독립. 교과서같이 뻔한 말도 내 이야기가 되면 새롭게 느껴지는 법이다. 지인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은 껌딱지라 네가 참 고생이 많다는 격려 또는 위로를 받았었지만 또 동시에 이러다가 갑자기 어느 날 시집간다고 할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더랬다. 어찌 될지 예상이 안 간다. 어렸을 때부터 늘 그랬다. 매일 똑같은 시간 규칙적인 삶을 사는 덕에 그가 다리를 건널 때면 3시 30분이 되었구나 했다는 칸트를 따라 이웃 중에 베이비 칸트가 두 명 있었는데, 내 딸은 그들과 전혀 다른 종의 생명체 수준이었다. 낮잠시간이나 먹는 것 어느 것 하나 예상이 불가능한 아이. 언제 어떻게 물리적/정신적 독립을 할지... 나는 아무 예상도 기대도 하지 않고 그저 조금 덜 서운해해야지 하는 다짐만 해본다.
아! 근데 며칠 전엔 갑자기 베개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나 다른 방에서 자볼게. 라더니 가버렸다. 묘한 쓸쓸함과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10년 넘게 내 옆에서 자면서 풍차 돌리고 잠꼬대해서 제발 혼자자라고 해도 움찔도 않던 애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그렇다고 다른 방에서 자는 남편을 데려오고 싶지는 않고 크크 근데 참 허전하고 이상한 기분에 잠이 안 왔다. 몇 분 후 괜히 아이가 잠든 방에 가서 사진을 남기고 휴대폰에 간단히 일기를 남겼다. "난데없이 예고 없이 혼자 자는 전O윤. 당황스럽네. (8월 29일)"
집에 혼자 있는 시간도 늘었다. 이제 내가 모르는 그녀의 사생활 영역에 길이 조금씩 나는 듯하다.
우연히 한 쇼츠를 봤는데 지미팰런쇼에 출연한 한 배우가 집에 하이틴 자녀가 있다면 꼭 사내 짝사랑 하는 기분이라며.
"우리 뭐 먹으러 나가는데! 엄 혹시. 너도? 너도? 혹시 땡기나? 하핫
땡기면 같이... 갈래? 아니 뭐 꼭 같이 가자는 건 아니고!"
"(손에 폰) 엄마 왜 저래"
이런 식의 연기를 보여줬는데 내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도 하다.
아이 숙제 체크하는 요즘 내 모습이 맘에 안 드는데 차라리 저렇게 조금 깨갱한 모습이 나은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