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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Jung Aug 15. 2023

우리 집 그리고 메이드

2023년 8월, 벌써 반이라니


한국 이곳저곳을 누비고 하노이로 돌아온 지 2주가 지났다. 


제발 자기를 한국 외갓집에 두고 가라던 딸은 돌아오는 날 이제 막 착륙을 마친 비행기 안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이 천국이긴 하지만 하노이가 내 집이야. Home sweet home'. 사실 나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아 웃음이 났더랬다. 엄마가 매일 차려주시던 밥도 좋고 아빠의 배려도 감사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꾸 '내 집'이라는 존재가 꿈틀거렸다. 집이란 게 참 신기해. 엄마아빠가 사는 집도 11살 적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내 집이건만, 일 년 조금 넘게 산 하노이가 마음속 진짜 '내 집'이라니. 뇌의 오류인가? 암튼, 한국에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흉내 낼 수 없는 호안끼엠의 쌀국수 집이 생각나기도 했고, 어떤 날은 '가면 떠이호에 있는 그 인도 레스토랑 가야지!' 하는 날 발견하곤 '진짜 웃기네' 하고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딸아이랑 같이 외출하는데 운전 중에 뒷좌석에서 '찰싹!' 하는 웬 따귀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나서 놀라 돌아보니 "오마갓, 엄마! 내가 하노이를 그리워하고 있었어!!" 라며 정신 차리라고 실제로 자기 뺨을 때렸던 날도 있었다. 하노이를 그리워하는 자기를 인정할 수 없다나 뭐라나.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약 40일 뒤 다시 이곳 하노이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한국 갈 때는 가볍게 갔는데 돌아올 땐 아이와 나 각각 23kg씩, 총 46kg의 짐을 부치고 각각 기내에 갖고 탈 수 있는 짐의 최대치를, 아니 사실 살짝 많이x2 초과해서 이고 지고 왔다. 그중 대부분은 반찬과 더불어 새로 쇼핑한 운동복, 아이 문제집, 책들. 실제로 그 뒤로 며칠 동안 내 어깨엔 빨간 알갱이 점들이 올라왔더랬다. Home sweet home 이긴 하나 여러모로 부족한 게 많은 우리 집인가 보다ㅋ


첫 일주일은 엄마의 반찬을 야금야금 파먹었고, 그다음 일주일은 아이가 열감기가 걸려 지금까지 오늘에야 받아온 약을 다 먹었다. 그래도 지난 주말 즈음부터 아이 학교에서 꼬부랑글씨 가득한 영어메일을 여러 통 받으니 이제 드디어 개학이 다가오는 게 실감되고 있다. 곧 자유다!!




또 다른 큰 변화 중 하나는 집안일을 도와주던 메이드를 해고했다. 해고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무시무시하지만 단어 뜻 그대로 고용 중지를 했기에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아니 집에 메이드가 있었어?'라고 놀랄 수도 있는 게 한국의 일반적 통념이라면, 베트남 주재생활에서는 '메이드가 없어?'가 약간의 더 예외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참 고민이 많았다. 나 대신 빨래, 설거지, 청소를 해주는 '가사 노동자 고용'은 베트남에 살며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서비스 중 하나인 건데 그걸 내 손으로 중지하다니. 내 무덤을 파는 걸까? 후회가 더 크려나?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 한 움큼을 덜어내는 걸까?


헌데 그간 나는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위인이 못 되는지 그녀가 청소할 때 나도 슬금슬금 거든 날도 많았다. 시어머니가 청소하는데 가만히 못 앉아 있겠는 느낌이랄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베트남어로 다시 지시하는 게 마음적으로도 쉽지 않았고, 피곤하고 아픈 날엔 내 집이건만 누워있는 게 편치 않았다. 내가 라면을 먹으면 이런 거 먹지 말라고 몸에 안 좋다고 한소리 거들던 그녀 특유의 친근함도 노땡큐. 더구나 나는 평소 약속이 취소되면 기쁜 내향 집순이인데 아이와 남편이 나간 집에 고요히 있다가 곧 누군가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늘 이른 아침부터 약속이 잡혀 있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울리는 초인종은 택배 말고는 다 반갑지 않아;) 그래도 외출 후 돌아오면 침구가 마치 호텔처럼 정리되어 있고, 배수구 머리카락을 내 손으로 안 치워도 될 때는 '와 우렁각시가 따로 없다' 며 행복했던 게 사실이지. 


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녀의 반복되는 핑곗거리와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해 고민이 많았더랬다. 불편감을 넘어서 신뢰를 저버리는 일들이 여러 차례 쌓였는데 그게 내 마음을 너무 괴롭게 했다. 내 집인데 때때로 내 물건의 안전여부(?)를 확인해야 했고, 최근엔 분명 내가 이곳에 둔 것 같건만! 잃어버린 건지 그녀가 가져간 건지 확신이 안 서는 상황이 생겼다. 결백한 그녀를 내가 의심하게 되면 큰일 날 일이니 정말 조심스럽게 '혹시 아나요? 보았나요?' 공손히 묻고, 이런 걸 물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도 하고, 근데 또 마음은 속상하고... 


'그래. 정말 내가 잃어버렸을 수도 있어. 1년 넘게 우리 집에 와준 사람이니 믿고 가자!' 했는데 8월에 다시 나를 만나자마자 급여를 올려달란다. 10% 인상을 제시했더니 그녀는 대차게 30% 인상을 불렀다. 지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거의 베트남 대졸 풀타임 수준의 급여라고 하더라. 정말 맘에 드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급여 인상은 불가피하겠다만 그런 케이스도 아니었고 내가 급여를 이렇게 큰 폭으로 올려버리면 로컬 커뮤니티에 소문이 퍼져 전체 시세가 올라가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하기에 나는 그녀에게 고용 중지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앞으로 한 달만 더 출근하고 그만두라고 하면 그 또한 서로 편치 않을 듯하여 한 달 치 월급을 미리 건네주고 좋게 마무리했다. 


그러고 나니 어찌나 마음이 편하던지! 신데렐라의 공주놀이가 열두 시가 되어 끝났는데 유리구두가 그립기는커녕 물걸레가 착착 손에 들러붙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진정 전생에 무수리였나. 사라진 물건이래 봐야 추억이나 사연이 담겨봤자 결국 물건일 뿐이고. 그리고 정말 내가 잃어버렸을 수도 있으니... 그 보다 정말 의심과 불신이 괴로운 것이었다. 마음이 힘들 바에야 몸이 힘든 게 낫다는 말이 백번 맞다. 


오랜만에 청소기, 물걸레, 화장실 청소, 다림질까지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아 뭔가 내 것이 다 제대로 돌아온 느낌인데 왜 한편으로 쎄하지ㅋㅋ 아이러니한 해방감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운동복 손세탁을 맡기며 출근하는 남편은 미안함이 들었는지 시간 될 때 메이드 고용을 다시 함 알아보란다. 그래서 말했다. "괜찮아!! 나 지금 너-무 좋아!!" 내일이면 아이 개학으로 이제 본격 하반기 돌입이다. 잘 살아보세. 


아, 말미에 남편이 너무 스윗한 사람같이 보일까 봐 보태자면 평소 못 하나 박는 것도 업자 부르라고 말로 (라고 쓰고 입으로만) 서포팅을 잘하는 편 ㅋㅋ 아! 굳이 꼭! 이 한 문장을 써야만 내 속이 시원하겠다!!! ㅋㅋ 말로라도 잘하니 고맙다고 하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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