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좀 나아졌습니까?
약간의 꽃과 약간의 단풍이 있는 11월의 하노이.
드디어 바람이 서늘해졌다.
달리기 플레이 리스트.
이 시기 고막남친 마이클 부블레의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로 시작.
The little drummer boy (1965 ver.) 뤄펌펌펌 하며 끝.
도저히 뛸 수 없이 경건하였도다. 크크.
내 마음도 좀 서늘해야 할 텐데… 시원한 날씨, 가벼운 농담과 달리 너무 부대껴서 에잇 하고 달리고 온 오늘 아침이었다. 개똥느므시키.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 혼돈의 생명체가 아침 등교준비 시간에 기어코 내 마음을 긁고 동시에 또 한없이 의존하려 들어서 마음 에너지가 고갈될 것 같았다. 곰곰이 따지고 보니 내가 마음을 좀 더 넓게 쓰면 될 일이지만, 아니! 왜 나만 참아야 하나. 괘씸하도다.
양지 삶아 찢어 넣은 뜨끈한 소고기 뭇국과 함께 현미밥을 차려 줬지만 흰쌀밥 타령을 하며 남겼고, 캔틴에 급식이 늘 western, oriental, vegan 3종류로 나오지만 홈런치 먹고 싶대서 싸준 아침이라 마음에 생색이 쌓였나.
학교 가져갈 스낵박스에 오늘 뭐 싸줬냐고 묻길래 3가지로 싼 내용물을 답해줬다니 웬 파인애플이냐, 자기 오레오 싫다고 투덜댄다. 거기까진 그래도 오케이.
스쿨버스 타러 같이 내려가기 위해 옷 입을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거실에서 큰 소리로 “하아… 마~앗~있게 먹겠습니다” 하는데… 말투가 딱. “눼눼~ 잘 먹겠습니다.“ 였다. 자~알 한다! 꼴 조옿다! 이런 느낌. 글자로는 잘 표현이 안된다.
‘네 정녕 내 이성을 끊어먹고 싶은 게냐. ’ 빈정이 상해 엄마 속상하니까 스쿨버스 타러 혼자 내려가랬더니 차가 오든말든 시계도 안 보고 당장 자길 데리고 내려가라고 애원 아닌 짜증 섞인 명령을 한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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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왔는데 전혀 ‘해결’된 게 없다. 이렇게 사건을 곱씹으며 투덜대고 있고 기분이 여전히 별로다. 뛰고 걸어 돌아오며 화가 날 때 나가서 걷고 하면 나아진다던가 하는 말이 내겐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생각도 여전히 많고, 마치 오염수에 물만 증발해 오히려 농도만 짙어진 덩어리가 고여있는 느낌이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저런 말이 있을까? 왜 나가는 게 (뛰는 게) 낫다고 하는 것인가? (속담이나 옛말에 틀린 게 없다고 믿는 경향이 좀 있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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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에만 함몰되지 않게 해 주는 것.
뛰면서 간간히 만나는 이쁜 풍경에 마음을 1-2초간 빼앗기는 것.
뛰고 돌아와 개운하게 씻고 뽀송한 기분을 느끼는 것.
정전기 때문에 들러붙는 먼지처럼, 온갖 들러붙을 수 있는 부정적인 조각들을 조금은 덜어 낼 수 있게 해주는 것.
이런 것 등이 우울할 때 혹은 속상할 때 하는 달리기의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 기분 좋아서 뛰고, 나빠서 뛰고, 어쨌든 뛰고나면 신체는 건강해지지 않겠나.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지독한 옛말 사랑 크크. 로마시대 때 검투사에게 한 말이란다. )
이곳에도 이렇게 풀어냈으니 마저 털어내고 좋은 것들로 덮어보는 오후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