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을 기념하는 찻자리에 남편과 함께 참석했다.
하노이 도시 한가운데, 교토에서 가져온 목재로 지어진 작은 다다미 방.
우리보다 앞서 시작된 다회를 감상하기 위해 대기석에 앉았다. 기모노를 입은 베트남인, 엄마 옆에서 정자세를 하고 있는 일본인 소녀가 첫눈에 띄었다. 잠시동안 고요히 바라보고 있다가 남편이 긴장 섞인 우려의 소리를 전한다.
'저렇게 무릎 꿇고 앉는 거 괜찮겠어? 진짜 할 수 있겠어?'
'이제 와 무슨 소리야. 다 작정하고 오는 거지.'
'그게 아니라, 네가 걱정돼서 그렇지.'
'됐어 조용히 해'
제 딴에서는 걱정해 주는 거였건만. 한껏 삐진듯한 남편의 표정.
날 것의 감정은 왠지 숨겨야 할 것만 같은 정적인 자리에서 여전히 방정맞은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안내받은 대로 준비한 하얀 양말을 신고 양말이 스칠 때마다 ‘사아악 싹’ 마른 소리가 나는 다다미 방에 들어가 무릎을 꿇은 채 나도 모르게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
아직 차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게스트들을 상대로 열리는 차회다 보니 일본 차를 정립한 센노리큐와 3대 류파 및 우라센케에 대한 설명을 비롯하여 공간, 다구 및 방 한쪽 벽에 걸린 족자에 써진 의미를 알려주셨다.
족자에 써진 글 귀는 "萬歳緑毛亀 만세녹모귀"
Ten thousand years green as the moss in the tortoises (shall)
뜻은 ‘일본 차회 시간에 / 베트남인이 / 유창한 영어로 / 중국 한자어를 설명하는 걸 / 들은 한국인’이라고 써두면 될까; 크크. 장난이고. 내 해석대로 하자면 거북이 등에 푸른 이끼가 낄 정도로 긴 세월을 지나 오늘 우리가 만난 이 자리를 기념하는 내용이라고 추즉해본다.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 어떤 물로 누구와 마시느냐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늘 다른 차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새해 첫 찻자리를 기념하는 족자인 것으로 해두지.
보통 화로는 구석에 차를 준비하는 사람 앞쪽에 두지만 오늘은 방 가운데 손님 가까이 나와있다. 겨울철이기에 손님들께 따뜻한 온기를 내어 드린다는 의미이다. 더울 때는 안쪽으로 치워 호스트가 화로의 열기를 가져가는 셈이다.
차를 마시기 전 달달한 히가시(마른과자)를 대접받는다. 마치 설탕 파우더를 눈송이 마냥 단단히 뭉쳐둔 콩알만 한 사탕을 입에 넣으면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지고 입안에 달달함이 남는다.
'앗 벌써부터 발끝이 저려오려는 것 같아! 달달함이 퍼지면 좀 나아지려나?' 하는 순간, 첫차가 첫 손님인 남편에게 나온다.
앉는 자리에 따라 주인에게 가까운 순서대로 정객, 차객, 삼객, 사객, 말객 등으로 순서가 나뉘는데 그간 쌓아온 약간의 경험으로 기지를 발휘해(?) 남편을 정객자리에 앉히고 나는 차객자리에 앉았더랬다. 마치 뮤지컬 티켓을 주면서 맨 앞이니 좋겠다며 배우들 신발이 코앞에서 보이는 오페라 석에 앉히고 나는 좀 더 전망 좋은 R석에 앉은 느낌이랄까. 크크. 남편이 하는 것을 눈으로 배우며 익혔다.
차를 내어준 주인과 남편이 두 손을 무릎 앞 다다미에 살포시 올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 뒤 첫 잔을 대접받고, 남편은 그 옆 두 번째 손님인 나에게 '실례지만 먼저 마시겠습니다'라고 또 한 번 가벼이 인사를 한 뒤에야 잔을 든다. 그렇게 모인 사람은 마실 때마다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편안한 대화가 오가는 티타임과는 확연히 다른 그야말로 다도 (차도) 시간임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영어로도 Tea ceremony라는 말보다 The way of Tea를 선호한단다.
앉은자리 기준 다다미 선 바깥은 타인의 영역이고 안쪽은 내 영역이다. 선 바깥에 놓여 있는 다완(찻잔)을 오른손을 뻗어 내 앞으로 들여와 왼손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잔을 한번, 두 번 시계반향으로 돌린다. 잔에 그려진 멋진 그림, 문양 등을 감상하며 또 그 부분을 비껴 마실 부분을 찾는 과정이다.
잔을 들었다 내려놨다 나눠 마시지 않고, 두 손에 그대로 둔 채로 비교적 짧은 호흡에 마신다.
앞서 먹은 마른과자의 단맛과 차의 씁쓸함이 섞이며 짙은 무게감이 입안에 퍼진다.
신년 시작이 좋다는 느낌을 받는데
부족함이 없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