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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Dec 01. 2023

오늘은 내가 참 후지다

내 우울감 때문에 미안해요

아침 요가 수업이 있는 금요일. 발바닥을 마주 붙여 앉은 상태로 팔을 앞으로 뻗어 상체를 숙인다. 유연성이 덜해 산처럼 솟아오르는 양 무릎을 쌤이 억지로 바닥에 밀어붙이면 이내 곧 팔이 펴지고, 다시 팔을 뻗으면 다리가 또 솟아오른다. 어딘가 제대로 고장 난 불량 장난감이 된 것 같아 민망한 웃음이 났다. 


하노이 미세먼지가 계속 300 수치를 찍다가 오랜만에 내린 비로 시야가 좀 트였다. 

날씨 탓으로 돌릴까. 규칙적으로 돌아오는 여성호르몬 그래프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까. 며칠간 나는 지난 즐거웠던 날들이 모두 다 꿈이었던 듯 홀로 우울했었다. 우울함은 꼭 싱크홀 같다. 멀쩡한 보도블록도, 횡단보도도, 오솔길도 있다가 문득 작은 균열 사이로 구멍이 생기고 저 깊은 깜깜한 곳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래도 이런 '우울감'이 '나 자신'인건 아니니까. 노력해 볼 힘은 남아있으니까. 휘휘 먹구름을 헤쳐 괜히 쌓인 종이 뭉치도 정리해 보고 냉장고에서 갈무리할 반찬거리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몸은 바삐 움직여보는데 아무래도 또 생각은 자꾸 싱크홀 탐사대처럼 굳이 그곳을 찾아간다.




어제는 동네에서 바자회가 열렸다. 다양한 것들을 직접 만들어와 판매를 하고 수익금 일부로 이웃을 돕는 소담한 자리였다. 메인 시가지와 떨어진 동네인지라 너무 귀한 이벤트였고, 좋아하는 삼각김밥을 품절 전에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뿌연 거리를 뚫고 갔다. 살 것을 사고 다른 매대를 둘러보는데 못 보던 신규 셀러들이 보였다. 그리고 드물게 힘찬 에너지로 호객행위를 하며 고구마 말랭이와 호박음료를 팔던, 나와 비슷한 나이의 그녀. 


어찌나 명랑한지 레시피 비법을 죄다 공유하는 맛집 사장님처럼 달랏에서 공수한 고구마를 신문지에 싸서 일주일 후숙을 하고 아무 첨가물 없이 식품건조기에 건조했단다. 에너지 흡혈귀 모드를 장착한 나. 작동을 시작한다. '이거 팔아서 얼마 남는다고... 당신은 왜 이렇게 순수하게 신나 있는 건데? 전기세랑 포장지 값이 더 나오는 거 아냐?' 이런 생각과 다르게 나는 그녀의 고구마 말랭이 하나를 샀다. 꿀맛이다. 와 내가 정말 싫다.


그녀는 에너지 넘치는 하루를 느끼며 뿌듯하게 수익까지 창출했고 나는 돈을 쓰며 그녀의 멋짐을 홀로 깎아내리고 추해졌다. 이건 우울한 '오늘의 나'가 하는 생각일까, 아니면 나란 인간은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생각을 끊어야 했는데 우울할 땐 그걸 잘 못하는 것 같다. 물론 구매 전에 저런 많은 생각이 한 번에 휘몰아친 건 아니다. 맛있는 것들을 사고도 왜 유쾌하지가 않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책 후기를 썼을 뿐인데 어제야 글을 읽은 언제나 나의 첫 독자 남편은 내 글은 늘 뭔가 짠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대체 뭐가 짠한 거지? 생각하다가 그냥 나 자신이 짠해져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남편은 다른 뜻으로 했을 수도 있는데 공대출신 대문자 T라 그런지 더 이상 다른 언어로 설명을 해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가족이 다시 모인 저녁 딸아이의 생활습관, 태도 문제로 우리 모녀는 투닥거리게 되었고 내 입에선 날 선 말이 나와 또 자책감과 함께 모든 게 무기력해졌던 게 어제였다.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아무렇지 않은 것을 내가 그렇다고 못하는 걸까?

아니 실제로 아무렇지 않은데 내가 굳이 후벼 파며 상처를 내는 걸까.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나. 근데 나 말고 누가 나를 생각해 주겠어. 매일 혼자 싸운다. 

호강에 겨워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인가. 바쁘면 이런 생각할 겨를도 없다는 말이 딱인가.

사람들을 만나 내가 입 밖으로 내뱉는 말과 내 속에 있는 단어들이 너무 다른 색이라 

나도 내가 일치가 안된다. 


그러다 오늘 아침 오랜 친구와 통화 중에 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길 하다가 그녀가 내게 말했다. 

"야! 너 뭐가 그리 불안한 건데! You're so tight!!!" 

어므나. 그러게. 이상하게 그 말이 힘이 됐다. 내 밝음도 엉뚱함도 현명함도 아는 내 친구.


근데 또 부제를 쓰다가 눈물이 터졌다. 아닌데! 나 이제 오늘 신나게 잘 지낼건데!

널뛰는 이 감정. 약간 조금 노답. 이러다가 또 마는 것이겠지.

on and on and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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