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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Apr 06. 2024

경청, 기다림과 동행의 힘

자녀의 또래갈등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고민되고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또래 안의 갈등을 맞닥뜨릴 때다. 특히 감정적 촉수가 민감히 깨어 있는 우리 딸은 그 시기가 더 이르게 다가온 편이었다. 아직 자기에 대한 이해도 제대로 안 된 나이였건만, 타인의 감정과 태도의 작은 변화가 너무나도 잘 포착됐던 것이다. 더구나 기질검사 시 회피성향이 98%로 나와서 전문가가 말하길 아마 이 아이는 웬만한 갈등은 그냥 피하거나 수용하며 참고 마는 아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참았던 것들을 집에 와서 내게 말하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깊이와 양상은 더 깊어지고 다양해졌다. 반면, 그와 비례하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내' 상황이라면 찔러보고, 엎어 보고, 소리도 꽥 지르고 뭐라도 해볼 텐데 '아이'의 일인 경우 지켜보는 시간과 지혜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성장해 가며 아이가 겪어내고 극복해야 하는 삶의 과제를 내가 모두 다 대신해 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냈을 때 비로소 아이도 나도 한 뼘 자란다는 것을 조금씩 경험으로 터득해가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진짜로 그 과정을 통과하는 게 답답하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이를 두고 기도를 할 때도 '하나님, 문제를 빨리 해결해 주세요' 보다 '제발 이 괴로운 불안함과 답답함을 덜어내 주세요'라는 기도가 더 나오곤 했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기본적으로 아이의 말을 들어주되 아이가 하는 모든 말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아무래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어려운 나이이기도 하고 나 또한 아이의 사회생활을 처음 겪어보는 초보 엄마의 입장에서 섣불리 날을 세워 대면하고 싶지 않았다. 또 그때는 하도 맘충이란 단어가 화두일 때라 까다로운, 진상, 자기애만 아는 이기적인 엄마라는 평판이 두렵기도 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늘 '아이의 말에 따르자면 이러이러하다고 하는데 무슨 상황인지 앞뒤 정황을 확인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하는 부탁을 조심스레 했더랬다.





지금은 한국나이로 초등학교 4학년. 특히 여학생들의 또래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이다. 어쩌다 보니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국제학교에 다니는 지금, 여학생들의 국적을 보니 벨기에, 태국, 베트남, 일본, 호주, 불가리아, 한국까지 7개국이 섞여 있었는데 그중 전혀 다른 문화권의 T가 지속적으로 딸아이를 포함한 몇 명을 배제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처음엔 귓속말을 하거나 암호를 정하는 등 작디작고 유치한 해프닝들이어서 딸 아이랑 함께 흉도 보고 때때로 T의 의도를 이해하려고까지 했는데 점점 횟수가 잦아들더니 여론까지 조장하며 그룹의 분위기를 아이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게 보였다. 가슴 아팠던 건 친했던 아이들까지 주도하는 T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일을 크게 키우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보이는 양상이 결코 가벼이 여길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2학기부터는 휴대폰 메모장에 날짜, 장소와 함께 기록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학교에서 뉴스가 생겼다. T를 비롯한 몇 명이 학교 상담실 및 교장실에 불려 갔고 눈물을 쏙 빼며 나왔단다. 아이와 비슷한 괴롭힘을 받던 한 명이 제대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교장실에까지 불려 가고 꽤 구체적인 예시들을 토대로 혼났다는 걸 아이를 통해 들어보니 그쪽 아이와 엄마가 작정하고 움직였구나 싶었다. '앗 이러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거 아냐?' 하는 기대감이 비실비실 스며 나왔다.


바로 그다음 주 하교한 딸아이에게 물었다.

"어때? T는 좀 나아졌어?"

"에이~ 엄마! 똑같아. 걔는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몰라"


정확히 꿰뚫어 본 아이의 답이었다. 자기 잘못이 뭔지 이해했다면 그렇게 똑같은 짓을 우리 아이에게 반복할 수는 없는 거였다. 문제를 제기한 아이는 아예 마음이 떠나 다른 반 아이들과 지낼 길을 찾은 듯했고, 여전히 계속 같은 그룹에 있으며 참고 회피하는 성향의 딸아이에게로 괴롭힘의 대상이 옮겨졌다. 주도하는 T는 키도 제일 작건만 작은 고추 같이 매섭게 아이들을 휘어잡았다.


어떤 날은 과자 하나를 갖고 아이들에게 가위바위보를 시키고는 이긴 사람에게 나눠주며 권력을 다졌고, 딸아이가 이기는 날엔 주기가 싫어서 그 작은 과자 한 조각을 반으로 나누고 한입 베어 물고 나서 남은 걸 주기도 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 급식실, 탈의실에서 각자가 앉는 자리, 가방 놓는 자리를 지정해 주고 딸아이는 무리와 떨어지게 했다. 어떤 날은 수영장 탈의실에서 특정 자리에 가방을 두자, T왈 "거기는 'K의 자리'야" 라며 가방을 옮기게 했단다. K는 약 한 달 전 전학 가서 더 이상 학교에는 없는 아이였다. 전학을 갔더라도 그 자리는 영원히 K의 자리라나 뭐라나. 딸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반박했더니, 너 지금 K가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라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단다. 마치 born to be 박연진 (더 글로리)의 실사판 같았다.


기가 막히는 일들이 쌓이고 쌓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젠 선생님에게 말하자고 했다. 1차적으로 다른 아이 덕분에 교장실에 불려 갔으니 2차까지 우리가 문제 제기하면 한결 나아질 거라고 나름의 설득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한결같이 선생님에게 오픈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오히려 나에게 왜 이렇게 일을 키우려고 하냐며, overreacting 하지 말라고 했다. 계속 엄마가 이러면 엄마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며 엄마가 나서서 해결하면 애들은 억지로 자기에게 잘해줄 것이고 자기는 그보다 그들의 진심을 원한단다. 아 엄마에게 숨기는 것만큼은 안되지. 답답했다. 조언을 구했던 선배 엄마들은 아이의 성숙한 태도가 대견하다는 칭찬과 함께 한편으로는 가스라이팅을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도 해주었다. 가스라이팅. 뉴스나 막장드라마에서나 들었던 다섯 글자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문제의 날. 캔틴에서 T는 여지없이 아이들의 자리를 지정했고, 이미 앉아 있던 딸아이에게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단다. 끈질기게 그러니 더 이상 듣기 싫어서 식판을 들고 옆 테이블로 옮겼는데도 한번 더 아예 다른 테이블로 옮기라고 했단다. 부글부글. 아니 밥도 편히 못 먹니. 무엇보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야 한다니... 제발 메모장 판도라를 열자. 너네 엄마 누구야! 교장실에 한번 불려 갔다며! 당장 머리끄덩이를 잡고 싶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선생님에게 말하지 말란다.


아무리 회피성향이 타고났다지만 피하고 수용하는 게 능사가 아님을 알려줘야 했다. 무리 중 친구들도 조금씩 T가 왜 이렇게 너한테 못되게 구냐고, T가 너한테 social bullying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단다. 아무것도 모르고 집단놀이로 인식하던 아이들도 이제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엄마로서도 차라리 '걔는 진짜 못된 애고, 이건 선생님한테 말해야 하는 거야'라고 내가 가스라이팅을 하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조언도 있었다. 너를 지키는 견고한 성을 쌓아가자. 엄마 아빠 선생님이 최전방에 있고 하나님이 늘 너와 함께 하신다. 끊임없이 설득주입 시켰다. 그리고 몰래 교내 카운슬러에게 메일을 보냈다.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아이가 있으며 최근 급실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아이는 선생님들에게 오픈하고 싶지 않아 하는데 이런 경우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아니면 아이가 자발적으로 오픈해서 선생님/부모/아이가 함께 해결하는 게 최선일지 답변을 부탁합니다' 단호히 하지만 진심 어린 조언을 구했다. 'According to my daughter...' 따위는 일절 없었다. 그저 내가 믿는 사실 통보. 해결책을 내놓으시오.



목요일에 메일을 보냈고 답장을 못 받은 채로 일주일간 다시 봄 방학. 답답하기도 하고, 방학이라서 편하다가도, 월요일 등교를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거렸다. 동네 아이들과 플레이데이트 잡으며 멀쩡히 잘 노는 아이를 보면 짠하다가도 반 애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몰래 나왔다. 이쯤이면 내가 정말 overreacting 인 듯싶지만 메모장에서는 그간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그득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순절 및 고난주간이라 더 말씀을 가까이 붙잡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 두려움은 내 몫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한 방법으로 알아서 하실 테니 담대히 기다리라 신다. 내 힘으로도 안되고, 선생님의 답도 안 오고, 하루에도 다양한 마음이 넘실댔지만 믿고 기다리며 기도하고 응원해 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부글부글 그 아이 머리칼을 쥐어뜯고 싶은 내 손의 힘을 빼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정말 감사했던 것들이 있었다. 옆에서 늘 공감하고 걱정해 줬던 남편은 물론이고, 깊은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우연한 만남들이 있었다. 한 학기에 한번 있는 학교 스낵세일에서 우연히 같은 곳에 자리를 잡은 같은 반 엄마에게 T의 개인사도 들을 수 있었고, 그분의 첫째 자녀 때에 겪었던 경험으로 지혜를 나눠주셨다. 그리고 동네 아들엄마들 모임이 얼렸는데 딸엄마로서 홀로 급 초대를 받아 내가 놓쳤던 부분과 함께 너무너무 적절하고 감사한 조언까지 얻을 수 있었다. 아이에겐 어떤 응원을 해줘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학교 측과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완전 실제적이고 생생한 조언들이었다.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눈 것이 어찌 우연일 수 있을까. 아이 앞에서 티 낼 수 없는 너덜너덜해지려는 마음이 기워지는 너무 감사한 만남들이었다. 더불어 유튜브에도 교육, 양육, 관계 전문가분들이 어찌나 많은지 진짜 방구석에 앉아 교육, 양육, 관계에 대한 대단한 강의들을 보고 들을 수 있음이 또 감사했다.




일주일 봄방학 후 개학 일 아침 6시에 눈이 떠졌다. 바로 또 분노와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재빨리 다시 잠재우고 마침 월요일이라 다도수업이 있는 날이기도 하여 꽤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바삐 보냈다. 그리고 늦은 오후 즈음, 드디어 카운슬러 선생님의 답장이 왔다. 모든 상황을 이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으며 가급적 상황을 공유해 달라는 내용. 뭔가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받은 건 아니었다만 이미 많이 담대해지기도 했고 누군가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의 동의 없이 내가 모든 걸 뒤에서 해결해주고 싶진 않았다. 더구나 만약 엄마가 움직인 걸 알게 되면 내게 닥칠 후폭풍은 거의 대지진 쓰나미가 일어날 게 불 보듯 뻔했다. 여지없이 개학 당일에도 여전히 T에게 나쁜 대우를 받았다. 심지어 Happy Easter Eggs 라며 딸아이만 빼고 친구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줬단다. 오마이 주여... 나의 하나님과 그녀의 하나님은 다른가요? 유치한 기도, 투덜대는 기도, 날 것의 기도가 나왔다. 선생님께 답장은 바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화요일.

하교한 아이가 기쁜 소식을 들고 온 듯 방방 뛰며 나에게 안겼다.


"엄마! 메일 봤어??"

"응?(무슨 메일?)"

"나 선생님한테 다 말했어!!"

"뭐?!! 말했다고?!! 지인짜?!!! 우와아아아아!!!!!

"엄마 나 잘했지?"

"응! 너어어무 잘했다 잘했어!!! 오구오구!!!"


가방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아이랑 빙글빙글 방방 뛰며 기쁨의 세리머니와 폭풍 칭찬을 하고 꼭 껴안고 소리 내어 기도했다. 아이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정말 이게 얼마나 큰 스텝인지!! 만약 엄마인 내가 대신 움직였다면... 내가 모두 다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다면... 인생이란 거대한 체스판에서 겨우 졸병 하나 전진 시켜준 수준이었을 텐데, 아이가 직접 자기 목소리를 냄으로써 쌓아둔 전략과 숨어있던 지원군의 힘으로 한 번에 판을 흔든 것이다. 이미 대략적인 상황을 알고 있는 담임 선생님이 호의적으로 동감하며 들어주신 듯하다.


아이에게 전후 사정을 들어보니 당일 오전에 또 T로부터 한차례 사건을 겪은 후 아이는 속에서 이젠 선생님에게 말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었단다. 그리고 나에게 결심의 메일을 보냈던 것이었다. (비록, 하교 때까지 보지 못했지만...) 선생님께도 바로 상담요청 SOS를 보내놓고는 아이들이 모두 놀이터로 나간 사이 상담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 진행 과정도 만 10세 아이치고 매우 전략적이라 웃기고 대단한데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 특히 전학생의 자리에 가방을 두지 못하게 한 건 선생님이 "That's so ridiculous" 라며 맞장구를 쳐주셨다며 말하는데, 작은 추임새까지도 내게 알려주는 걸 보면 아이가 이해받고 있음을 기분 좋게 느낀 듯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T는 점심시간 전에 또 아이를 따돌리려는 시도를 했고, 점심식사 후 바로 교장실로 불려 가 나오며 역시나 또 눈물을 흘렸단다. 그리고 아마 그간 관찰해 온 선생님들의 시선이 있으셨는지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날 경우 퇴학당할 수 있다고까지 강하게 이야길 하신 듯하다.


그래서 그 이후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겼느냐?

생겼다.

다음날 아침에 T가 딸아이에게 "Hi"라고 했단다.


"Hi!"

 

표정이 어땠고, 그 이후 어떻게 무슨 상황이 펼쳐졌는지 깊게 묻지 않았다. 그저 쿨한 듯 기쁜 듯 하지만 좋은 변화로 받아들인 아이와 인사를 건네준 그 아이의 태도 변화에 안도했다. 사실 '아이들 간의 또래 문제가 일어난다 해도 학교에서 해주는 건 없더라. 선생님도 결국 월급쟁이일 뿐이더라'라는 말도 더러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일을 통해 분명 움직이고 도와주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더불어 학교의 대처와 별개로 아이와 내가 정말 감사한 것은 나를 지키는 힘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아이가 발견한 것, 늘 자신을 사랑하고 든든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 것, 또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 것이다. 바로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테지만 바른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강한 믿음이 나와 아이에게 있다. 


바로 어떤 정확한 해결방법으로 매끄럽게 끝맺음이 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시작의 첫 단주를 아이가 직접 잘 채웠다는 것이 너무 고무적이다. 나는 들어주고 기다려준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아이가 직접 작은 언덕을 넘는 방법과 힘을 터득했다. 점점 큰 갈등도 조율해 내는 힘을 또 얻어갈 수 있겠지. 조언과 기도로 존재로 너무 든든함을 준 사람들에게도 정말 고맙다. 주말이 된 오늘에야 선생님들께 감사 메일을 전했고, 지인들에게도 야금야금 감사함을 전할 계획이다. 아직 10살인 딸과 T... 점점 자라나며 자기 안에 사랑과 편안한 마음이 흘러넘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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