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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르방 Jan 15. 2023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이라는 책은 순전한 궁금증으로 읽기 시작했다. 최근 읽었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이어령 선생님은 윤리적 선을 넘나드며 대담하게 글을 쓰는 일본 작가들을 칭찬하며 다자이 오사무와 무라카미하루키를 언급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알고 싶어 졌다.


처음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역시 일본 문학은 나와 안 맞아.’하며 책을 덮었다. 맥락 없는 섹스와 끊임없는 자살시도에 깊은 공감이 어려웠다.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아 정말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내신 것 같다.’였다. 나는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을 영화처럼 상상하며 제3자의 시선으로 책을 읽었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이었음에도 도저히 동일시하기 어려웠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여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가벼운 만남을 가진다. 나는 이 만남들을 읽을 때마다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 잘생긴 미모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미 내 상상 속의 그의 얼굴은 잘생기지 않았다. 그런 말투와 낮은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지 않았다.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가진 음흉하게 생겼으며 미소가 어색한 주인공의 얼굴을 상상하며 읽었고 결말까지 이르러서도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책을 덮고 더 궁금해졌다. ‘왜 사람들은 <인간실격>을 사랑할까?’에 대한 해답을 알고 싶었다. 유투브에 <인간실격>을 검색하고 해석 동영상을 봤다. 그리고 그 영상의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세상에, 너무나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고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평가 중에 ‘자기 혐오할 때의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다.’가 인상 깊었다. 책 뒷 표지에는 ‘뉴욕타임스’의 서평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가장 잘 나타낸 작품’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나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책을 읽을 때는 주인공의 상처를 기억하며 감정 표현에만 집중하며 읽었다.


요조는 어린 시절 성적학대를 받았고 부모와의 관계가 어려웠다. 그는 아버지에게 원하는 선물조차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여린 아이였다. 부모와 정서교류가 없었던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이후 인간을 믿지 못하고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깊은 관계를 회피하고 결국 자기 자신까지 혐오한다. 그의 상처와 감정에 집중하며 책을 읽었더니 책은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그의 상처 속에 나의 상처를 대입해서 읽어봤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즉 저에게는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그때껏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 불안 때문에 저는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참 행운아라는 말을 정말이지 자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늘 웃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 밖에 안 되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나도 요조처럼 가면을 쓰고 산적이 있다. 모두가 자기혐오를 인생에서 한 번쯤은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에 일종의 가면으로 쓰고 위장하고 생활한다. 그렇게 자기혐오를 할 때는 남을 사랑할 수 없다.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벅찬 일이다. 하지만 요조는 그 와중에 인간을 단념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문장에서 요조의 필사적인 ‘익살’이라는 서비스가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고생스러운 일이라는 게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 어머니조차도 전혀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에게 호소한다. 그런 수단에 저는 조금도 기대를 걸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한테 호소해도, 어머니한테 호소해도, 순경한테 호소해도 결국은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의 논리에 져 버리는데 고작 아닐까.
이제는 내 정체를 완벽하게 은폐할 수 있겠다 하고 마음을 놓으려던 참에 저는 실로 불의의 칼을 등 뒤에서 맞았습니다.

“부러 그랬지?”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우선 얼굴에 사이비 기독교인 같은 ’정다운‘미소를 띠고 고개를 삼십도 정도 왼쪽으로 갸우뚱 기울이고는 ……

개인적으로 이 구절에서 웃음이 터졌다. 사이비 기독교인 같은 ‘정다운’ 미소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여자는 똑같은 인류 같으면서도 남자 하고는 완전히 다른 생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저와 형태는 달랐지만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유리되어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저의 동류였습니다. 그가 의식하지 못한 채 익살 꾼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저하고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었습니다.
“나를 진짜 누나라고 생각해도 돼.”
그 같잖음에 저는 닭살이 돋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수 어린 미소를 짓고 대답했습니다.

거짓말을 쉽게 파악하는 사람일수록 거짓말에 많이 노출된 사람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요조를 보면서 어쩌면 요조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과 감정을 나눠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게 너무 안쓰러웠다.


저는 술을 마셨습니다. 그 사람한테는 마음이 놓였기 때문에 익살 따위를 연기할 마음도 나지 않아서, 저의 천성인 말없고 음산한 면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면서 잠자코 술을 마셨습니다.

이 사기범의 아내(쓰네코)와 보낸 하룻밤은 저한테는 행복하고(이런 엄청난 말을 아무 주저 없이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이 수기 전체에서 두 번 다시없을 것입니다) 해방된 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단 하룻밤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깨어 일어난 저는 원래대로 경박하고 가식적인 익살꾼이 되어있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저는 상처 입기 전에 얼른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며 예의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자기 회피성향이 강했을 때의 찌질한 나의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문장이다.


천박한 술책으로 쿨럭쿨럭하고 두어 번 가짜 기침까지 요란하게 보태어 기침을 한 후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검사의 얼굴을 흘깃 보았습니다. 그 순간 검사가 말했습니다.
“진짜야?”
그는 조용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진땀아 석 되 흘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콱 죽고 싶어 집니다.

‘지금도 콱 죽고 싶어 집니다.’라는 그 부끄러움이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도 쥐구멍으로 같이 숨고 싶다.


넙치네 집을 나서서 신주쿠까지 걸어가 춤에 지니고 있던 책을 팔고 나니 또다시 막막해졌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했지만 ‘우정’이라는 것을 한전도 실감해 봄 적이 없고 모든 교제가 그저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어서  그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열심히 익살을 연기하느라 오히려 기진맥진하곤 했습니다. 조금 아는 사람의 얼굴이나 그 비슷한 얼굴이라도 길거리에서 보게 되면 움찔하면서 일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불쾌한 전율이 엄습해서, 남들한테 호감을 살 줄은 알지만 남을 사랑하는 능력에는 결함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모두를 무서워하는지, 무서워하면 할수록 나는 두려워지고 모두한테서 멀어져야만 하는, 저의 이 불행한 기벽을 시게코한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었습니다.
죽인 게 아니야, 우려낸 게 아니야 하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희미한, 그러나 필사적인 항변의 소리가 끓어올랐습니다. 그러나 아니, 내가 나쁜 거라고 금방 다시 고쳐 생각해 버리는 이 버릇.

이 문장을 읽고 너무 공감이 갔다. 내가 자신감이 없을 때 나를 비판하는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나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에 서럽고 화가 난다. 그리고 금방 내 탓을 해버리는 나약한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었습니다. 요시코는 신뢰의 천재니까요. 남을 의심할 줄이라곤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비극.
불행. 이 세상에는 갖가지 불행한 사람이, 아니, 불행한 사람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소위 세상이라는 것에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는 불행이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해 줍니다. 그러나 제 불행은 모두 제 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항의할 수 없었고, 또 우물쭈물 한마디라도 항의 비슷한 얘기를 하려 하면 넙치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 전부가 뻔뻔스럽게 잘도 이런 말을 하는군 하고 어이없어할 것이 뻔했습니다.
죽고 싶다. 숫제 죽고 싶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무슨 짓을 해도, 무얼 해도 잘못될 뿐이다. 창피에 창피를 더할 뿐이다.

<무뢰한>이라는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상처 위에 상처, 더러운 기억 위에 더러운 기억. 다 그런거죠." 상처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순간 깊이 빠지게되고 더 많은 부끄러움의 겹을 쌓는다. 상처를 인정하고 또 다른 나만의 인생을 잘 살아야 하는데 아마 요조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을 것 같다.  


“아니, 이젠 필요 없어.”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누가 무언가를 주었을 때 거절한 것은 제 생애에서 그때 간 한 번 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감히 내가 성적학대를 경험하고 어린 시절 부모에게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한 사람의 선택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가볍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요조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말하기엔 미안해졌다. 그리고 그의 불안함에 대한 솔직한 표현들이 공감이 갔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문체가 용감하다고 느꼈다. 상처에 대해서 말하려면 그 상처를 다시 바라보고 그 감정을 기억해 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책에 ‘삶에 대한 욕구’는 강렬하게 느껴지지만 ‘사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요조가 느끼는 모든 욕구, 쾌락은 순간적인 짧은 순간에 충족될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요조의 아픈 과거를 생각하면 오히려 보잘것없는 부끄러운 선택들과 감정들이 소설을 완성하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나는 ‘한 사람의 힘’을 믿는다. 조심스럽지만 내 생각에 요조와 따뜻하게 감정을 교류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요조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호밀밭의 파수꾼> 스포주의!!

한 달 전에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 역시 상처와 불안감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홀든’의 상처 역시 깊다. 형제를 상실한 아픔에 홀든은 방황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을 연달아한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대변하듯 납득되지 않는 감정선은 날카롭고 그는 불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홀든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형제에 대한 애정, 그리고 동생 피비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물론 홀든의 선택들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실낱같은 사랑의 힘이 결국 사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홀든은 결말에서 심리 상담을 받는 것으로 암시되는데 나는 분명히 홀든은 앞으로 점점 더 괜찮아질 것이라고 상상했다.


누구나 방황하고 길을 잃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부끄러운 선택을 한다. 나도 그랬다. 그래도 지금 나는 힘들 때 내 어깨 뒤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한다고 상상한다. 그 힘은 엄청나다. 상처 위에 상처가 덧나고 흔적을 남기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한다는 믿음 역시 단단히 마음속에 자리를 남긴다. <인간실격>을 읽으며 찌질했던 나의 경험들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알고보면 조금씩 상처가있을 모든이들에게 ‘너만 그런 게 아니야.’식의 위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어떤 사랑도 없다. 나는 우리 모두 상처를 지울 순 없지만 사랑의 힘으로 충분히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인생의 뚜껑을 열어보면 부끄러운 순간들이 가득하지만 여전히 살아갈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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