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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Sep 28. 2021

여자였다가 그저 몸이었다가 지금은

인체는 신비했다.

아이를 배고 내 배가 짐볼마냥 부풀어 올랐을 때, 사람의 거죽이 가진 탄성이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함에 놀랐다.

하지만 사람 몸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그리 가볍고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샤워 때마다 머리카락은 채수 구멍을 가득 채우고 발은 퉁퉁 부풀어 올랐다. 늘어나고 불어난 살들 사이에 기존의 살과 새 살의 경계를 구분 짓 듯 새하얀 셀룰라이트가 금을 그었다.

호르몬은 제 위상을 뽐내 듯 사춘기 때의 뾰루지를 돌려놓았고 내 몸은 그깟 호르몬에 지배되는 양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했다.

내 몸은 더 이상 나만의 몸이 아니었다


아이가 나왔다. 마음이 준비되기도 전에 몸이 알아챘다. 

몸이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 내 젖을 있는 힘껏 부풀렸다. 부풀고 부풀고 부풀어 돌처럼 딱딱해지고 티셔츠를 적실만큼 젖이 뚝뚝 흘러나왔다.

젖은 티셔츠를 보고 부끄러움을 느낄 만도 할 텐데 부끄럼이란 건 임신을 하면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호르몬과 본능에 지배되고 있는 몸은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었다. 

제왕 절개를 위해 음부의 털을 제거하고 반 나체로 수술대에 오른 내 몸을 다섯 명의 의료진이 둘러쌓다. 

정신은 멀쩡한데 완벽한 타인이 내의 나체를 보고 있다면 어떨 거 같아? 이십 대의 나는 얼굴의 온 미간으로 아연질색을 표현했을 것인데.

생각해보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나체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건 사회적으로 학습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출산의 영역에 들어선 순간 그것을 넘어서야 했다.


가슴이 딱딱하게 굳자 잠들 수 없는 통증이 찾아왔다. 아무리 가슴 마사지를 하고 유축을 해도 소용없었다. 

"아이에게 물려야 해요."

수간호사의 조언을 듣고 다 붙지도 않은 배를 부여잡고 신생아실로 향했다. 보통 걸음으로 5분에 갈거리를 20분 걸렸다. 수유실에 도착하자 눈도 뜨지 못 한 아이가 다 트이지도 않은 울음소리를 내며 안겨 나왔다. 본능적으로 젖을 찾을 줄만 알았던 아이는 찰나에 젖병에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아직 내 가슴과 데면한지 젖을 잘 물려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젖을 문 아이의 그림은 언제나 평화롭지 않았던가. 산부인과 수유실의 풍경은 어느 명화에도 표현된 적 없는 전쟁통 같았다. 통증이 가득한 가슴을 부여잡고 아이의 입에 물렸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고통에 소리를 질러야 했다.

"4시간 후에 다시 시도해 봅시다."

함께 내 가슴을 쥐어짜던 간호사가 말했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일에 나도 아이도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만큼 지쳐버렸다. 맞은편에 앉은 쌍둥이의 엄마가 나를 위로해줬다. 그녀는 양팔로 두 아이를 안고 양쪽 수유 중이었다. 수유실에서 동일한 처지의 여자들과 마주칠 때마다 서로를 향한 눈빛에 서로를 향한 위로와 동정을 느낄 수 있었다.


수유가 익숙해지고 안정적인 자세로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있을 때야 수유실이 눈에 익숙해졌다.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를 알록달록한 벽지와 강아지 모양의 수유쿠션. 초록색 소파, 그 위에 나란히 앉아 가슴을 드러내고 앉아있는 여자들. 그들 중 한 명이 아닌 체로 수유실 밖의 유리문에서 이 광경을 지켜봤다면 그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봤다. 참으로 이상한 풍경일 텐데, 우리는 모두 한쪽 가슴을 내놓고 오고 가는 사람이 누구라도 상관없는 듯 이야기를 했다. 모두 한쪽 가슴을 내놓고 오늘은 아이가 젖을 잘 무네요,라고 안부를 전하는 풍경이었다.


집으로 돌아오고도 수유는 계속됐다. 2시간, 3시간, 4시간. 수유 주기는 늘어났지만 늘어난 시간은 충분히 희망적이지 않았다. 언제라도 아이가 울면 젖을 물릴 수 있게 목이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누워있다 울음 신호가 오면 젖을 물리기 위해 달려갔다. 티셔츠는 늘 아이의 침인지 젖인지 모를 분비물로 얼룩덜룩했고 그걸 개의치 않을 만큼 피로에 잠겨 있었다.

내 몸보다 아이가 중요했던 시기였다. 아이가 먹는 시간, 싸는 시간, 자는 시간, 모든 걸 기록했지만 그 일지 속에 내 몸에 대한 기록을 할 생각조차 못 했었다.


내 몸은 더 이상 나만의 몸이 아니었다.

아이를 위해 먹고, 아이에게 해가 되는 걸 먹지 않고, 아이에게 해가 되는 걸 멀리하는, 오로지 아이를 위한 몸으로 존재했던, 절대적으로 부족한 잠으로 미치고 미치고 그 미칠 것만 같던 시간. 그 시간을 나는 아이에 대한 설 익은 모성애보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지만 그 순간 혼자였다면 아이를 창 밖으로 던지지 않았을 자신이 있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느 밤, 남편이 출장을 가서 오롯이 아이와 단 둘이었던 밤. 아이가 한 시간이 넘도록 우느라 그치지 않았던 날은 방 문을 조용히 닫고 나와 소파에 앉아 뜬 눈으로 새벽을 지새웠다.

세상에 정말 증오하는 사람이 있다면 잠을 못 자게 하는 가장 잔혹스러운 고문을 주면 되겠다고 상상하면서.




언젠가 일본의 다이칸야마의 서점에서 무심결에 꺼내 들었던 사진첩에서 충격과 함께 잊었던 출산과 육아의 과정들이 다시 떠올랐다. 한 여자의 임신과 출산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첩이었는데, 벌어진 여자의 다리 사이로 아이가 나오고 있었다. 머리부터 차근차근. 

역설적이게도 나는 아이를 낳고도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을 본 것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아이를 낳고도 모르는 적나라하고 생략된 출산의 광경이 사진으로 생생하게 나타나자 내 몸이 온전히 내 몸이 아니었던 시간이 내 눈앞에 다시 펼쳐졌다.

사람의 피부가 어느 정도까지 늘어날 수 있는지, 척추가 어느 정도의 무게까지 버틸 수 있는지, 부은 손 발의 고통이 어떤 방식으로 올 수 있는지, 한 손으로 거뜬히 바쳐지는 신생아의 두 주먹만 한 머리를 내뱉을 만큼 여성의 질이 찢어지고 늘어날 수 있다,는 온몸의 신비를 경험했던 시간이.

생략되고 망각되어버린 출산과 육아의 한 부분이.


여자였다가 그저 몸이었다가 지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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