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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Sep 27. 2023

08 선택이라고 해봤자

11


김미주는 아이가 자라는 속도를 보고서야 시간이 빠르다는 걸 실감했다. 자라난다는 표현이 어색해지고 늙어간다는 표현이 적당해질 무렵부턴 자신과 아이의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 같았다. 차라리 시대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라면 나은 일이었다. 세상이 변하는 것에 자연스럽게 노화해 가는 몸이 박자를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오히려 자신이 낳고 기르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어려웠다. 어쩌면 아이가 자라면서 모든 부모가 견뎌야 하는 고독은 필연일지도 몰랐다. 자신이 없으면 기본적인 생존조차 어려웠던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가 흐려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 순간 감동이면서 김미주를 외롭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깊고 단단하게 자신의 인생에 뿌리를 박았던 아이는 어느새 움푹 파인 자국만을 남겨놓고 민들레 홀씨처럼 홀가분하게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준비해 왔지만 막상 아이가 집을 떠날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자 사소한 일에도 수시로 눈물이 흘렀다. 갱년기인가 싶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해야 할 걱정이 수천 가지인 김미주에게 한 가지가 더 붙었다. 사이보그가 된 아이였다. 

어렸을 적 SF영화에서 보았던 완전체 기계 인간은 생각만으로도 소름 끼쳤지만 세상이 변하는 속도로 보았을 때 가능성이 없으리란 법은 없었다. 김미주는 자신의 욕심인 줄 알면서도 아이가 특별한 필요가 없으면 가능한 그대로 본래의 몸을 유지했으면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김수정은 대부분 엄마는 너무 고지식하다며 듣는 척도 하지 않았지만 온전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으면 하는 자신의 마음을 딸에게 납득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다. 너는 그 자체로도 사랑스럽다. 누군가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나 더 뛰어나 지기 위해 신체를 변형할 필요도 없고 지금 그 자체의 너로도 완전하다는 것을.

엄마, 저 사람들도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저러는 거야,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딸은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12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이었지만 특색 있는 건물은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흰색 가운을 입은 직원이 먼저 알아채고 다가왔다. 사무실 겸 연구실은 모두 지하에 있는데 보안 게이트를 통과해야 입장이 가능하니 모든 소지품과 액세서리를 이 바구니 안에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복장쯤이야 날로 영악해지는 사기꾼들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신경 쓰는 것이란 걸 알고 있었음에도 전문직을 상징하는 새하얀 가운과 회사 로고가 새겨진 명찰을 보자 김미주는 무의식적으로 안심했다. 현대식 시설을 보기 전까지 김미주의 머릿속에선 암흑 속에 가려진 기괴한 주문진을 바닥에 새기며 악마를 소환하는 강령회의 이미지가 떠나지 않았었다. 소지품을 맡기고 들어간다는 게 내키지 않긴 했지만 그만큼 철저한 보안을 유지한다고 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김미주와 김수정이 보안 게이트를 통과하자 허가의 표시로 문이 푸른색 빛을 내뿜었다.

따라 내려간 지하 엘리베이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두툼한 철문을 직원이 노려보았다. 뭘 하나 했는데 직원을 인식한 보안 센서가 요란한 허가음을 내며 김미주와 김수정을 환영했다. 철컥하고 열리는 소리로 문의 두께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문은 일반 가정집의 문과 비교했을 때 세배는 될 정도로 두툼해 방공호를 연상시켰다. 문지방대신 발아래 그려진 선명한 노란 경계선이 정말 넘을 자신이 있냐고 김미주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정말 감당할 자신이 있어?

잔뜩 긴장한 채로 직원의 뒤를 따라 선을 넘는 김미주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흡.


연구실이라는 말에 온갖 실험기구와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찬 슈퍼 히어로의 고향을 상상했었는데 직원이 김미주와 김수정을 안내한 곳은 어떤 이음새도 보이지 않는 매끈한 벽이 사방을 이룬 방이었다. 정육면체의 공간. 비커에 담긴 색색의 약물도 잘못 건드리면 펑하고 터지는 물질도 없었다. 슈퍼히어로가 태어나기엔 너무나도 심심한 방이었다. 사실 이렇게 아무 결점도 없는 방을 찾기란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이곳을 오고 간 사람들이 남긴 인적 따위는 찾을 수 없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텅 빈 공간이 김미주 앞에 펼쳐져 있었다. 직원이 방문객들의 긴장감을 풀려는 마음인지 리모컨으로 벽을 조작하자 새하얗기만 하던 벽이 지상의 사무실에 난 창처럼 바뀌었다. 분위기가 그나마 한결 나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높고 낮은 건물들 사이로 개미같이 보이는 사람들은 김미주를 고층에 있다고 착각하게 할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수정 씨가 잘못될 일은 없을 겁니다. 머리를 두 동강 낼 필요도 없이 아주 작은 구멍 하나만 내면 됩니다. 구멍을 통해 요것보다 작은 나노 로봇들이 들어가 거미처럼 제 할 일을 할 겁니다.”


직원이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아주 작은을 가늠해 보여 주었다.

직원의 말을 빌리자면 뇌 사이사이에 첨탑처럼 심어진 나노 칩들이 서로 전기 신호를 보내고 신호가 거대한 그물처럼 형성된다. 그렇게 촘촘한 그물이 뇌에 크고 얇은 전극이 달린 모자가 씌워진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이 모자, 혹은 뇌를 감싼 전기 보호막이 시냅스 사이의 전기 신호를 분석하고 복제해 네트워크로 옮겨 오게 하는 것이 마인드 박스의 핵심 기술이었다.

직원이 아무리 쉽게 설명한들 김미주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원리는 알겠는데 그래서 그게 어떻게 내 딸이 되는 거냐고 내 옆에 서 있는 이 뜨끈한 몸체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옆에서 빛나는 눈으로 듣고 있는 김수정을 보곤 그럴 수 없었다.


“뇌에 씌워진 이 촘촘한 모자에 수백 개의 전극이 달려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기신호를 읽고 변환시켜 이쪽으로 사람들의 데이터, 흠, 그러니까 영혼을 가져올 겁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건 없어요.”


그런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닌가. 이미 이 방에 들어선 순간, 데이터인지 영혼인지 기계인지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은 부차적인 게 되어 버렸다. 진심인지 고객을 안심시키려는 배려인지 모르겠으나 직원의 말투는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레토르트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과학의 발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그럴지도 몰랐다. 언젠가 뚝딱하고 만들어져 생활 속에 자리 잡고 말았다. 그렇기에 나노가 실제로 얼마나 작은 크기를 의미하는지 가늠할 수 조차 없으면서도 나노니 로봇이니 하는 단어들이 전혀 생소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걸러냈을 단어 하나하나가 실체를 가지지 못 한 허구처럼 공간을 울리기만 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그냥 상처나 소독하고 꿰매는 정도로 넘어가도 되는 걸까.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김수정을 보며 겁에 질린 자신이 유난을 떠는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요?”

“네?”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요?”

여태까지 한 직원의 설명에 그다음은 없었다.

“김수정 씨의 영혼을 네트워크로 옮겨가는 동안 육체는 서서히 빈껍데기가 되어갈 겁니다. 뇌사 상태라고 보시면 돼요. 장례식을 원하신다면 따님의 시신을 처리하여 보내 드릴 수도 있지만 돈이 좀 들어도 냉동 보관 하시는 게 나을 거예요. 업체도 추천해 드릴 수 있고요” 


직원이 잠시 뜸을 들이다 VIP들만을 위한 특별 상품이라도 있는 것처럼 목소리를 작게 낮추며 말했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 사망 신고를 하는 건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단지 정신만 따로 떼어내 네트워크로 이동시킨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나중에 다시 몸이 갖고 싶어 지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 때 신분이 없으시면 새 신분을 만드는 게 비용도 비용이지만 절차가 복잡하니까요. 회사랑 전혀 관계없으니 제가 이런 말씀드렸다는 건 비밀입니다.”

“몸을, 다시 가질 수도 있다고요?”


언제부터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또한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되어버린 것일까. 마치 돈이 없어서 나중을 위해 육신을 세이브해두었다 돈을 모아 현실로 돌아오라는 소리인가. 현재가 살 만한 세상이 아닌 게 아니라 살 만하다고 느낄 처지가 되어서 돌아오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몸을 다시 가질 수 있다는 말은 일종의 보험처럼 들리기도 했으나 어떤 이에겐 경제적 무능을 드러내기도 말이기도 했다. 김미주는 직원의 말에 경악했지만 그는 김미주의 표정을 읽지 못 한 모양이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비밀이라며 눈을 찡긋거리는 것을 보아선 나름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하겠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건 말건 직원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는 식이었다. 

직원의 모든 말이 김미주에겐 어차피 하나 살 바엔 두 개 사는 게 더 이득이라는 말이나 한 달에 몇 만 원 수준으로 36개월만 렌트하면 제품이 고객님의 것이 된다는 말처럼 정해진 가격을 교묘하게 말을 바꿔 고객을 설득하는 꼼수처럼 들렸다.


“네. 레인처럼. 아시잖습니까. 뭐든 상용화되면 끝입니다. 지금은 꿈도 못 꿀 정도지만 언젠가 레인도 저렴해지는 날도 있겠죠.”


코미디 프로의 방청객처럼 그가 정해진 방식으로 웃었다. 그럴 거면 굳이 왜 멀쩡한 육체를 죽이는 겁니까. 김미주 안에서 요동치는 질문을 꺼내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어머님. 저는 여기서 어떤 선택도 강요 드리고 있지 않습니다.”


웃음에 화답하지 않고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김미주를 보자 여태까지 가볍고 상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던 직원이 전문가다운 태도로 진지하게 고쳐 앉았지만 이제야 하얀 가운이 효력을 발휘하기는 늦은 감이 있었다. 요점은 ‘네가 선택해 놓고 왜 내 탓을 해’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죠. 다만, 단 하나만 명심해 주세요. 지금 당신 앞에 앉아 있는 게 사람이라는 것, 제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과연 그는 자신이 무슨 말에 동조하고 약조했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무슨 말인지 정말 알아들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딸의 손을 잡고 박차고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을까. 지금 네 옆에 있는 엄마를 봐서라도 생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 길을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충고해주지 않았을까. 김미주는 의심이 들었지만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머님 저도 딸자식이 있는 사람이에요. 어떤 마음인지 알아요."


남자가 차라리 그 말을 하지 말지 좋았을 뻔했다. 그래 당신도 딸자식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내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여기에 오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알 텐데.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새어 나오지 못하고 김미주를 앉은 상태로 태워 버리고 있었다. 표출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고통 다음 따라오는 건 체념이었다.


“그래요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 영혼도 사고파는 세상에 누구 탓을 하겠어요.”


단순한 수요와 공급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제외되는 분야가 있을 리가 없지. 김수정은 직원과 김미주의 대화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직원이 슬며시 앞에 올려놓은 서류에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김미주 앞으로도 두툼한 서류 파일이 놓였다.


“아무래도 종이가 편하실 것 같아서 뽑아놨어요. 천천히 읽어 보고 사인해 주세요.”


김미주는 읽지 않아도 이런 종류의 서류들을 잘 알고 있었다. 고객의 권리를 세세하게 분류해 고지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자신이 항거할 수 없는 기업의 면책사유가 될 것이었다. 

어차피 사인을 하지 않으면 수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옆에서 읽지도 않고 사인하는 김수정과 자신의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사인을 끝낸 김수정이 김미주가 망설이는 것을 눈치채고 재촉했다.


“엄마. 나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침묵 속에 앉아 두툼한 서류 뭉치를 바라만 보고 있는 김미주를 향해 김수정이 말했다. 김미주의 손 위로 김수정의 손이 포개졌다. 단단히 붙잡은 손아귀를 통해 김수정의 간절함과 의지가 전달되기는커녕 오히려 김수정의 미숙함이 걱정되었다. 이 아이는 아직 어린데, 아직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을 텐데. 김미주는 여기까지 와서도 확신이 서지 않아 굳은 채로 앉아 있었다.


“엄마 제발.”


딱딱하게 굳은 김미주의 팔을 흔들며 김수정이 애원했다. 김수정의 눈에 거의 눈물이 맺히기 직전이었다. 

사실 너는 조금만 기다리면 미성년도 아니라 내 동의가 필요 없을 텐데. 조금이라도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을 만큼 환멸을 느꼈던 걸까, 네 눈앞에 있는 나는 그저 이 지겨운 세상의 일부인 걸까. 네가 삶을 그만두지 않을 온전한 이유가 되기엔 부족한 걸까. 김수정이 자신을 여기로 데려온 건 자신의 동의를 얻고 싶어서였단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갖고 싶어서. 이 엄마 버리고 갈 정도, 그 정도의 확신도 없으면 그만두라고 모진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다가 멈추길 수십 번이었다.

미동도 않던 김미주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미주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포개진 김수정의 팔목을 가로지르는 선명한 상처였다. 그래, 네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김수정의 행복 그게 김미주가 살아온 이유였으니까. 


김미주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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