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이끄는 삶
나는 한때 발명가가 되고 싶었다.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특허를 가진 사람이 되어, 내 이름이 새겨진 발명품을 세상에 내놓는 꿈을 꾸었다. 한 번은 꼭 발명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발명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곤 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세상에 없을 것만 같던 그 물건들이, 검색 몇 번이면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은 다반사였다.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이미 생각해 냈고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의 일이다. 스테이플러의 침을 뺄 때마다 번거롭게 제거 도구를 찾아야 했다. 그 도구가 칼과 붙어있던 것처럼 스테이플러와 연결돼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 스테이플러 뒤에 제거 도구 붙어있음 되겠다!!’
그러나 사무실을 둘러보니, 이미 그런 제품이 있었다. 나의 ‘발명’은 언제나 그렇게 ‘발견’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 발견을 알려주면 거의 보든 사람들이 놀라곤 했다.
한 번은 감기에 걸린 팀장님이 마스크를 쓴 채 “안경에 서리가 껴서 미치겠다”라고 투덜대던 날이었다.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떠올랐다.
“코 위에 얇은 철사 같은 게 있으면 입김을 딱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신한 아이디어라며 흥분했다. 하지만 역시나, 일본의 한 회사가 이미 제품을 내놓은 상태였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코로나 시절에 그때 말했던 바로 그 철사 마스크를 매일 쓰며 그 생각이 나서 웃었다.
항상 발명은 실패했지만, 발견은 성공했다고 해야 할까? 내가 먼저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세상 어딘가에서 이미 누군가가 같은 생각을 품었다는 사실이 참 신기했다. 이후 나는 스스로를 ‘프로 발견러’라 불렀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미 있는 것을 새롭게 보고 찾아내는 사람. 그 이름이 내 삶에 조금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언제나 호기심에 이끌려왔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끊임없이 물었다.
“왜?”
그 한마디가 나를 세상의 이곳저곳으로 데려갔다. 배움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궁금증의 해소이자 문제의 해결이었다. 목마른 자에게 물이 필요하듯, 나에게는 언제나 ‘이유’가 필요했다. 이게 다른 곳으로 잘 못 풀렸다면 나쁜 중독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적 호기심이라는 멋진 이름 덕에 ‘문자 중독’, ‘탐독가’, ‘문구 덕후’ 정도의 좋은 중독자로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기심은 나를 한 곳에 머물게 두지 않았다.
나는 왜 우울할까, 왜 불안할까, 왜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줄까. 그 질문들의 끝에서 나는 책을 찾았다. 심리학, 철학, 문학. 한 가지도 끝까지 파지 못했지만, 대신 시야는 넓어졌다. 인간관계가 힘들 땐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해서 심리학 서적을 읽고, 오래전 이미 훌륭한 사유를 했던 사람들의 철학 관련 서적을 찾았다. 누군가는 그것을 ‘산만함’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넘치는 지적 호기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Curiosity killed the cat.(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다.)”
중학생 때 처음 배운 영어 속담이었는데, 너무 신기하고 인상적이어서 오래 잊히지 않았다. 그때는 단순히 ‘지나친 호기심은 화를 부른다’는 뜻이라 배웠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말을 다르게 해석하게 됐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을지라도, 그 고양이는 누구보다도 세상을 많이 보았기에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죽음보다 더한 것은,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삶 아닐까. 그래서 여전히 묻는다.
“왜?”
“어떻게?”
“만약에?”
절망 속에서도 ‘왜’라는 질문이 남아 있으면, 아직은 끝이 아니라는 신호다. 알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건, 여전히 세상을 향해 열린 사람이라는 뜻이다. ‘프로 발견러’로 살며 나는 세상의 작고 사소한 것들을 새롭게 본다. 출근길 골목의 들꽃 한 송이, 카페 유리창에 비친 하늘의 색,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언어의 온도. 그 모든 것은 내게 하루의 발견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하찮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발견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살아 있으니 느끼고, 느끼니 궁금해지고, 궁금하니 또 배우는 것. 그 순환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나의 모든 감각들을 강하게 느끼게 해 준다.
요즘 나는 ‘배움’을 ‘성장’의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배움은 더 많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어제를 넘어서는 일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깊게 세상을 바라보는 일. 그게 나의 비전이고, 나의 신앙이다. 호기심이 이끄는 삶은 때로 피곤하다. 그러나 그 피곤함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무엇이든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늘 또 하나의 발견과 마주한다.
발명가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발견가는 세상에 이미 있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혁신으로 세상을 바꾸겠지만, 나는 발견으로 나를 바꾼다. 세상이 아닌, 나의 시선을 새롭게 하는 일, 그것이면 충분하다. 호기심은 내 삶의 불씨이고, 발견은 그 불씨가 피워낸 빛이다. 그리고 그 빛 아래에서, 나는 매일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아마도 인생이란, 거대한 발명이 아니라 끝없는 발견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내 안의 질문이 다하지 않는 한, 세상은 여전히 새롭고 낯설다.
“이다음엔, 어떤 발견을 하게 될까.”
나는 매일이 설레는 예술하는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