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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먼지

존재 자체가 축복

by 책꽃 BookFlower

“전 우주 먼지처럼 사는 게 꿈이에요.”

팀장님이 꿈을 묻자, 신규 직원 유주 씨가 이렇게 대답했다.

“우주 먼지처럼 산다는 게 어떤 건데요?”

“음… 존재감은 없어도, 혼자 즐겁게 떠다니다가 흩어지는 삶이요.”

“오, 그런 의미라면 저도 우주 먼지처럼 살고 싶네요. 먼지처럼 살고 싶다길래 힘든 줄 알고 놀랐어요.”

“전 주님이요. 주식 잘돼서 건물주님이 되는 게 꿈입니다.”

“전 로또 1등! 그래서 매주 조합 짜서 삽니다.”

이야기는 순식간에 화기애애해졌고, 당첨되면 뭘 하고 싶은지 우르르 쏟아냈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웃음 속에서도, ‘우주 먼지’라는 말만은 머릿속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얼마 전 우리 민족 최대의 행사, 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딸아이는 1년 전 자퇴했고, 올해 검정고시를 통과해 수능을 치렸다. 시험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엄마, 나 대학 안 가고 공무원 시험 치면 어떨까?”

“엄마야 상관 없지만, 공무원 시험도 몇 년은 공부해야 해. 대학 대신 그걸 선택하면 더 부담될 수도 있어. 중요한 건 회피냐, 선택이냐의 문제겠지. 시험 치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자.”

“그럼 재수하게 되면 지원해 줄 거야?”

“흠… 그것도 시험 끝나면.”

아이가 원해서 가지 않는 거라면 나는 받아들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순간적인 회피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능이 끝나고도 성적 이야기를 피하는 걸 보니 원하는 점수가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재수는 없다’고 늘 말해왔던 터라 마음이 복잡했다. 이리저리 고민하며 검색하던 중, 알고리즘이 나를 뜻밖의 세계로 데려갔다.


한 유튜버의 영상이 추천에 떴다. 좋은 대학 못 가느니 차라리 ‘N수생’이라고 말하며 몇 년을 히키코모리로 지내온 스무 살 초반 여성의 채널이었다. 스스로 성인 ADHD가 있다고 말하며, 욕먹고 정신 차리고 싶어서 계정을 만들었다고 했다. 부모님께 부끄러운 자식이고, 집안의 쥐새끼 같아서 ‘지새기’라는 이름으로 했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의 어눌함, 순수한 눈빛에 내 딸아이가 겹쳐 보였다. 이후 나는 첫 영상부터 정주행 했고, 4만 명이 되었을 때 부모님께 유튜버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영상에서 그녀의 부모에 빙의되어 함께 울었다.


지금 그 채널의 구독자는 20만 명에 가깝다. 그녀는 본인 이름에서 따온 회색의 귀여운 ‘쥐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를 만들고, 아르바이트하던 ‘백억 커피’와 콜라보도 했다. 여전히 혼자 여행 가고, 느리게 살고, ‘전업 자녀’로 존재한다.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보다 보니, 우리 아이가 느꼈을지도 모를 복잡한 마음을 미리 엿본 것 같았다. 좀 더 힘을 내주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상황도 미리 생각해 봤다. 어떤 상황이어도 ‘존재 그 자체가 축복’ 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알고리즘이 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존재 자체가 이미 이타적 행위다.”

쓸모와 상관없이,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의 삶을 밝히고 위로하고, 숨 쉴 이유가 되어준다. 결핍을 바라보는 대신, 스스로 충분함을 발견했으면 한다. 우린 우주 먼지처럼 작아 보일지라도, 각자의 우주에서는 중심이다. 세상 모든 존재는 귀하다. 그 사실을 종교처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내 아이도 어떤 상황이어도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며칠 전 독서모임에서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해 들었다. ‘쓸모’는 타인이 만든 기준일 뿐이다. 나에게 쓸모 있는지, 나를 기쁘게 하는지가 진짜 기준이다. 남에게 쓸모 있으려고 애쓸 필요 없다. 내가 즐거워지는 삶을 선택하는 것. 그 자체가 존재의 이유가 된다. 내가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낼 때, 나는 동시에 누군가의 삶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무너지지 말고, 숨지 말고, ‘우주 먼지처럼 사는 꿈’이라도 당당히 웃으며 말하길 바란다. 남들이 정한 쓸모라는 잣대에 갇히지 말고, 쓸모와 상관없이 나는 이미 충분한 존재라는 진실을 스스로 믿어주자. 우리는 이미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완전하다. 그 사실을 마음 깊이 품고, 존재 자체로 서로를 이어가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이 마음이, 언젠가 내 딸아이에게도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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