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리브래드슈 Apr 20. 2021

스물아홉에서 서른아홉으로.

같지만 다른 아홉에 대해.


스물아홉에서

눈 깜빡하면

서른아홉.



스물아홉에는 아홉수라며 올 한 해 조심해야 한다고 결혼하는 거 아니라며 모여서 재잘재잘 수다 떨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혼자가 아닌 친구와 함께 맞이 하는 아홉수는 외롭지 않았고 아홉수 까이꺼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른이 됨에 조금 덜 불안했던 이유 중에는 연애를 하고 있었고, 그 사람과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지금 서른아홉의 내 곁에는 조잘조잘 쉴 새 없이 떠드는 미운 다섯 살 아들이 있다. 엄마를 위해 하트쿠키를 만들어주고, 엄마가 달에 빈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해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아 준다. 아들과 함께 유치원에 적응하느라 올해가 아홉수 인지도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스물아홉에 그렇게 조심해야 한다고 떠들던 아홉수가 십 년 만에 다시 돌아와 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시절 눈 깜빡하면 마흔이 돼있을까 봐 너무 두려웠던 그 밤이 또렷이 기억난다. 정말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래도 마흔이 조금 덜 두려운 이유는 그 시절 막연히 꿈꿨던 나의 커리어가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리라.


스물아홉의 마음이 스물에 멈춰있었다면, 서른아홉의 마음은 서른에 멈춰있다. 스물아홉에는 몸은 늙어도 마음은 안 늙는다며 평생 마음은 스물에 멈춰있을 것만 같았는데 서른아홉이 되고 보니 마음도 스물에서 서른만큼 나이를 먹었다. 마음도 나이를 먹고 한 뼘 정도는 성장했으리라.


스물아홉의 몸이 하나씩 점검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한 군데씩 돌아가며 아팠었다면, 서른아홉의 몸은 만성 통증을 호소한다. 침침한 눈, 거북목, 저린 손목, 뻐근한 어깨. 서로 내가 더 아프다며 아우성이다. 스물아홉이 한 해 한 해 몸이 나이 먹는 것을 느꼈다면, 서른아홉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 시절 친목도모와 즐거움을 위해 운동을 했다면, 이제는 살기 위해 한다. 왜 등산모임이 이렇게 많이 있는가를 이해하게 된달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살기 위해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만 하는 쪽에 가깝다.


그리고 오늘 점심 혼밥을 하다 여자 사장님과 수다를 떨게 되었는데, 서른아홉이 참 젊은 나이라며 마흔아홉까지는 젊디 젊은것이라는 말씀에 남몰래 위로가 되었다. 근데 사실 서른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이 먹는 것에 조금 무뎌지는 느낌이다. 서른 번이 넘게 나이를 먹어봐서일까?


그럼에도 스물아홉이던 서른아홉이던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찾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확신은 없고 고민은 많다.


마흔아홉은 어떤 모습일까?





내일, 음감 작가님은 '알다'과 '이해하다'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을 의무감으로 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