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을 수 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을 뺏겼다. 넌 귀여운 얼굴을 하고 살랑살랑 미소 지으며 내 남편을 빼앗아갔다.
연애 때부터 신혼까지 내 남편은 오롯이 나를 중심으로 생각했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찾아보고 함께했다. 기념일마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의 멋진 식당을 찾아내서 데려가면 그렇게 행복했다. 물론 남편의 메뉴 제안에 '그것만 빼고'라며 몇 번 거절했더니 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와의 사투를 애저녁에 포기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남편은 선물 고르는 재주는 없었다. 나도 선물계에서는 자칭 똥 손이라 생각하는데 남편은 나보다 재주가 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내가 필요한 것을 사준 것 같다. 쓰고 보니 그게 그것인 것 같지만 어쨌든 애매한 선물을 보며 애써 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런 내 편인 줄만 알았던 남편이 너가 태어난 후 달라졌다. 애아빠의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닌 아이로 바뀌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이는 커서 우리를 떠날 사람이라며 서로를 잃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그 다짐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남편은 애아빠가 되었다. 이제 아이가 먹고 싶은 것, 아이가 가고 싶은 곳을 검색하고 데려간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아이의 선물은 아이의 마음에 쏙 드는 것으로 잘 산다는 것이다.
남편은 결혼하면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고 했는데,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훨씬 더 무거워진 것 같다. 남편의 반대편에는 스스로 삶을 살 수 있는 아내가 있지만 애아빠의 반대편에는 돌봐야 할 아이가 있다. 그래서인지 애아빠는 남편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엄격함을 선보인다. 아이를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에 매 번 엄격하게 언성을 높인다. (물론 애엄마도 목소리가 커졌다.) 오늘 혼내고 울어도 내일 달라지지 않는다고 아직 아기라 잘 어르고 달래야 한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봐도 잘 바뀌지 않는다. 남편보다는 애아빠의 고집이 조금 더 센 것 같다.
아이가 커갈수록 남편보다 애아빠의 비중이 급속히 늘어가는 것 같아 섭섭하다. 우리의 이야기 속에 우리는 사라지고 아이만 남아 아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아내와 남편의 자리가 사라지게 될까 겁이 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지금 아내의 삶을 살고 있는가 되돌아본다. 내 삶은 지금 일과 애엄마로만 채워져 있지 않은가. 바쁜 일상 속 의식적으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아내로서의 삶을 살 것인가 애엄마로만 살 것인가. 그 또한 나의 선택에 달렸다. 내가 아내로 돌아간다면, 남편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내일, 음감 작가님은 '참여' 와 '참석'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