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타고 와 내려서 택시 타면 편할 거예요.”라는 말에 택시를 타려 했으나 역에서 나오자마자 행선지가 같은 좌석버스가 있기에 바로 올라탔다. 길 찾기 앱이 알려주는 대로 버스를 갈아타면 잘 도착하겠지 싶었다.
20여 년 전 맺었던 인연이 끊겼다가 20년 만에 다시 연결되었다. 잠시잠깐의 시간을 함께 하고 연락이 단절됐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쪽에서 먼저 연락의 손길을 내밀었다. 반갑기도 하고 세월의 무상함도 느끼던 차에 그분의 아버님 부고를 접했다. 그런데 장례식장이 서울이 아니라 지방 소도시이다. 집에서 3시간 거리. 집에 비는 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해서 부의금만 보낼까 잠깐 고민했으나 이내 마음을 돌렸다. 나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분이지 않은가. 시간 아끼다 귀한 인연 놓칠세라 발품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앱을 이용하면 대한민국 어디든 못 갈 데가 없다.
안락한 좌석에서 창문 밖의 푸르른 논이나 지는 석양을 바라볼 때만 해도 그 뒤의 고생길을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좌석버스에서 내리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됐다. 다음 버스를 탈 정류장이 분명 여기가 맞는데 정류장 번호가 앱에 뜬 번호와 끝 자릿수가 다르다. 그냥 여기서 타도 되지 않나 생각이 들면서도 영 꺼림칙하다. 앱이 가리키는 번호가 틀릴 리는 없잖은가. 차들은 거의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게 질주하고 있다. 도로에서 좀 떨어져 있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는 데도 차가 지나갈 때마다 몸이 휘청 흔들린다. 누가 있으면 물어라도 볼 텐데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신호등은 30여 분 내내 붉은색이다. 택시를 부를까 싶었으나 택시가 오는 데도 몇십 분은 걸릴 거 같다. 발을 동동 구르다 포기하고 ‘오늘 안에만 도착하자. 여의치 않으면 장례식장 구석에서 자든지 다른 숙소에서 자든지 해서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자’ 마음먹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열 걸음 정도 걷다 보니 건너편에 작은 정류장이 보였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에 가슴을 졸이며 가까스로 찻길을 건너 도착하니 내가 찾던 바로 그 번호의 정류장이다. 어찌나 기쁘던지. 이런 작은 일에 이렇게나 기뻐할 수가 있나 싶게 기쁘고 반가웠다.
상주와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한 상의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어찌나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던지. 이 사람이 먹으라 왔나,라고 생각할 상주가 아니긴 하지만 다 먹고 나니 좀 겸연쩍기는 했다.
수년만의 폭염이라는 올여름은 휴가도 없이 몸도 마음도 분주했다. 지방의 장례식까지의 이번 여정이 나에게는 어쩌면 작은 여행이었다. 나름 기차도 탔고 버스로도 많은-아찔한-경험을 했다. 덕분에 푸르른 논밭도 원 없이 봤다.
부모를 여읜 그녀의 슬픔을 달랠 길이 없다. 그 어떤 위로도 가 닿지 않을 것이다. 생멸이 자연의 이치이고 인생은 누구에게나 유한한 거라는 걸 알지만 내 혈육과의 사별을 받아들이는 건 나이와 관계없이 고통이다. 그 슬픔을 같이 나누려 이번 조문을 했던 것인데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까. 옛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행복이 오면 즐기고, 불행이 오면 그냥 왔구나 여겨 감수하고 극복하라. 아등바등하지 말아라. 아무리 애써도 흐르는 시간 앞에 장사 없다. 안달하지 말아라.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그분의 아버님께서 이제는 고통도 미련도 다 벗어놓고 평안에 도달하시기를 가슴 깊이 기원한다. 미숙했던 젊은 시절을 함께 하며 아낌없이 인정과 덕을 나누어주었던 훌륭한 따님을 낳아주신 데 대한 무한감사를 보낸다. 고맙습니다, 아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