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아 Nov 27. 2024

땀띠

오래전 여름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더위가 유별나 너도나도 고생을 하던 어느 날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애 얼굴이 왜 이래? 세상에나. 이렇게 되도록 놔두었어? 쯧쯧.” 순간 나는 깜짝 놀라 큰 아이의 얼굴을 새삼스레 쳐다보았다. 세 살 배기의 이마가 땀띠 투성이었다. ‘언제 이렇게 되었지? 분명 자주 씻기고 주의한다고 했는데.’ 조금씩 늘어나 어느 틈에 이마 한가득 땀띠가 돋아있었다.


  열심히 씻기고 건조시키고 파우더를 바르며 주의를 기울여도 한번 생긴 땀띠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찌나 심했던지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 앞에 앉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엄마가 어떻게 관리했길래 이 모양이냐고 한소리 들을까 봐 겁이 났다. 아이만 어린 게 아니라 엄마도 어리고 미숙했던 때라 자식이 땀띠 때문에 가렵고 힘들 거라는 생각보다는 주위 사람들에게 들을 한마디가 더 싫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마에 땀띠가 가득한 얼굴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그 당시 아들의 사진을 보면 바늘로 가슴을 콕콕 찔리는 느낌이 든다.


 올여름은 예년에 없이 더웠다. 한시도 에어컨 없이는 지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 해도 24시간 가동을 하지는 않는데 큰 아이는 24시간 에어컨 앞에서 산다. 잘 때조차도 얼음장같이 차가운 온도로 맞춰놓고 겨울 이불을 덮고 잔다. 저렇게 더운 걸 싫어하는 아이를 내가 더위에 방치해 놨었다니 참으로 무지하고 태만했다.


  이마에 난 땀띠뿐일까. 마음 한 구석에는 땀띠에 버금가는 불만이나 응어리가 돋지는 않았을까. 그때도 지금도 미숙한 어미인 나는 아들의 마음속을 알지 못한다. 육아나 양육이 쉬웠으면 그 속에 즐거움이나 보람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려웠기에 많은 걸 배웠다.


  이제는 장성하여 행여 이마에 땀띠가 난다 해도 노심초사하며 닦아주고 약을 발라주지는 않는다. 본인이 예방하고 치료하여야 한다. 부모가 충분히 치료해주지 못한 게 피부의 상처뿐이랴. 마음의 상처에도 둔감했음을 뒤늦게 깨우친다. 젊은 시절에는 의외로 좌절할 일이 많을 텐데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닥칠 인생길에서 행여 마음의 땀띠로 괴롭지나 않을까 어미는 지레 걱정한다.


   그 더운 여름, 땀띠가 한가득이라 가렵고 불편했을 텐데도 말도 못 하고 힘들어했을 내 어린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부족한 어미 때문에 고생 많았다고.


  어렸을 때나 장성한 지금이나 자식은 부모에게 푸념하지 않는다. 자식의 말없음 속에는 세월에 묻힌 숱한 소리들이 가라앉아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어미 마음속에는 여전히 땀띠 가득한 어린 모습으로 남아있는 아들에게 전하고 싶다. ‘네 몸은 내 인생의 보물이라고. 너의 성장과 함께 엄마도 자랐고, 인생의 많은 것을 배웠다고, 네 존재가 엄마의 존재가치를 드높여 주었음에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