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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아 Jul 19. 2024

요리

                                   요리 
                                        

  아내를 여읜 남자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다. 반대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아내들은 대체로 혼자서도 오랜 기간 산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요리’라는 말을 들었다.
  아내를 여의고 십오 년 가까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어느 노작가의 글을 읽는다. 그는 자신이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 수 있는 이유로 '음식 만들기'를 꼽는다. 아내가 떠난 후에도 혼자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어 요리를 해 왔기 때문에 건강관리를 잘하게 된 거라고 말한다. 요리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도 한다. 그 이야기 덕분인지 요즘 요리에 관심이 생긴다.
  식구가 단출해 음식 재료를 살 때도 만들 때도 최소한으로 한 지 오래인데 요즘은 좀 달라졌다. 오늘은 양배추를 넣어 아삭아삭한 토스트를 만들어볼까.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감자전을 해 볼까. 얼갈이와 열무로 하얗고 칼칼한 열무김치를 담가볼까. 예전에는 음식이 남을까 지레 걱정돼 엄두를 못 냈는데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한다. 나누어먹으면 되므로.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 중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성공, 업적이 대부분 운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설마 운만 가지고 어떻게 성공을 해. 노력이 기본이 되었던 거겠지’라고들 한다. 맞다.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데 이 명제가 단순한 겸손함의 표현이 아님을 밝혀주는 흥미로운 데이터가 얼마 전 공신력 있는 한 매체에 올라왔다. "인간의 성취는 50퍼센트가 나라(제도, 정부), 30퍼센트 이상이 유전자(기질, 성향)에 의해 결정된다. 최소 80퍼센트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 통제 영역 밖에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인생 성취의 8할은 운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걸 인정하는 사람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긍정적이다. 이상을 수용하지 않는 이들은 세금에도, 기부에도 인색한 편이다."라는 자료이다. 물론 여기서  ‘20퍼센트’의 가치는 훨씬 무게감이 있을 것이다.
  남은 인생 나침반이 될 만한 해석이다. 내가 한국이 아닌 환경이 더 열악한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학구적인 부모가 아닌 부모에게서 태어났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가진 게 많지는 않지만 나눌 수 있는 게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해 왔으나 사실은 부여받은 것이었음을 깨치는 이 순간이 귀하다. 누군가는 "그래, 넌 받은 게 많아서 좋겠다."라는 남의 속도 모르는 소리를 하며 삐딱하게 볼지도 모른다. 그림자 없는 빛이 있을 리가 있나. 나를 좌절케 하고 무너지게 하는 어두움을 굳이 내비치지 않을 뿐이다.
  재벌들의 우울증 발생률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는 통계를 보았다. 영국인이 사랑하는 지도자 윈스턴 처칠은 뛰어난 화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였고 지금까지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한데 그런 그가 평생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환경이, 조건이 행복의 필수사항이 아님을 새삼 되새긴다.
  빛도 그림자도 다 내 것임을 겸허히 인정하며 이번 주말에는 홍고추를 갈아서 총각무김치를 담글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 분주하다. 이 김치는 좋아하는 이들이 많으니 넉넉히 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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