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내가 기차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가장 빨랐던 것은, 40년동안 주름 잡았던 새마을 호였다. 아직까지 새마을호, 무궁화가 운행중에 있지만, 2004년부터 개통된 고속철도 KTX에 이어 SRT, ITX, 산천 KTX 등의 위용에 밀려 이제는 얼굴을 보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도 어렸을적, 고속철도보다는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를 타고 값싸게 짧은 거리를 여행을 했던 기억들이 있다. 특히나, 대학생 때는 방학때 내일로 타고 다녔던 여행들이 묘미였다.
왜그렇게 우리는 기차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까?
첫째로는 '정체' 라는게 없다. 특수하게 공사라던지, 앞차와의 간격으로 인해 조금 속도로 줄인 지연 등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정시에 출발하고 정시에 도착한다. 반대로 빨리 도착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나의 노력에 의해 바뀔 수 있는 탑승시간이 없기에, 그저 그 시간들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다.
둘째로는 '편안함'이다. 열차가 완벽한 등속운동하는 운송수단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하철이나, 자동차 보다는 훨씬 등속운동을 하는 시간이 길며, 급회전을 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나의 행동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또한 그 편안함아래 기차는 '앉아서' 가는 것이 컸다. 버스나 지하철은 자리가 없으면 서서 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만큼 행동에 제약이 걸렸다. 결국 기차는 편안하게 앉아서 일행과 놀거나, 책을 읽거나, 수면에 들거나 하기 좋았던 것이다.
셋째로는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개인적으로 '간식차'가 참 좋았다. 언제올지는 모르지만, 그 간식차가 왔을 때 또 어떤 것을 먹을지 기대하게 되는, 시각과 메뉴 두가지 모두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또 친구랑 같이 탔을때는 간식차가 오기전에 가벼운 내기를 통해 누가 먹을 것을 살지 미리 정하는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 간식차 하나에 그 기차타는 시간을 항상 즐거움이 가득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내기를 지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꽤나 승부욕이 강했더라는..)
하지만 어느새 부턴가, 간식차는 보이지 않았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갈 수 있었던 기차는, 스마트폰에게 눈을 빼앗겼고, 코로나때문에 입을 빼았겼다. 지금의 기차는 정말 조용한 공간이 되었다. 아니 그 귀마져도 이어폰에 뺐겨있었다. 문명이 발달하고, 코로나시국에서 우리는 어울림 보다는 개인적인 편안함과 안전함을 더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편안함의 장점이 없는게 아니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편안하게 쉬면서 가기도 좋으며, 내가 개인적으로 뭔가에 몰두하기도 안성맞춤인 환경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옛날 모습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과거는 미화되기 쉽상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느냐? 나는 그때의 왁자지껄함과 웃음들이 그리움이 들때가 있는 것을.
기차
[명사] 기관차에 화차나 객차를 달아 선로를 통해 여객이나 화물을 실어나르는 차량 / 기관차에 여객차나 화물차를 연결하여 궤도위를 운행하는 차량. 사람이나 화물을 실어 나른다.
출처 : 다음/네이버 백과사전
사전으로서의 의미는 또 느낌이 달랐다. 차는 차인데, 기관차에 여객차나 화물차를 붙여 달고다니는 차. 무엇을 운송하기 위함이 더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당연한 거였다. 기차가 만들어진 목적이 운송이니깐. 근데 뭔가 아쉽다. 그래서 다시 내맘대로 정의해보자면
기차
[명사] 편안하고 빠르며, 시간개념이 철저한 우리의 운송수단이자, 추억의 공간. 다만, 빨라지는 속도와 시대의 흐름속에 사라져 가는 그 속의 시간들. 그것을 아우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