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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 May 16. 2021

'-린이'라는 표현

미숙일까 잠재력일까


  출근길 버스 안에서 늘상 스쳐 지나가는 학교 하나가 있다. 그저 그뿐인 학교이지만 어쩐지 내 기억에 명확히 남는 것은 기다란 전광판에 번쩍이도록 적어놓은 문장 하나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자.'


  요즘 학교는 저런 말을 돌에 새기는 대신 LED 전광판에 반짝반짝 흘려보내는구나. 멋지다 21세기. 정도의 생각 정도나 했을 뿐이다.



  이처럼 평소라면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갔을 문장을 갑자기 되새김질하게 된 것은 막 지나온 어린이날에 불거진, 한 주제 탓이다. 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자는 주린이, 요리라는 취미에 막 발을 들이민 사람은 요린이. 유행처럼 번져 공중파에도 절찬리에 사용되고 있으며, 이제는 단순 넷상 밈이라 부르기 어려워진 신조어.

  단어 뒤에 '~린이'를 붙여 '초보'의 뜻을 나타내는 신조어는 과연 이대로 계속 사용해도 괜찮은 걸까?



  사용 지양을 주장하는 쪽의 의견은 이렇다.

- 어린이가 정말 미숙하다는 편견을 키우고 있다.
- 해당 표현을 접하는 어린이에게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을 수 있다.


  반대로 과도한 반응이라 주장하는 경우는 이러했다.

- 이 신조어의 핵심은 미숙이 아니라 갓 시작한, 잠재성 있는 존재라는 지점에 있다.
- 어린이를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개인적으로 주장에 대해 어떠한 찬반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어느 쪽이 옳아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에 피로감을 느낀다.) 이전에도 딱히 즐겨 쓰던 표현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실제로 의견을 물을 만한 그 나잇대 어린이를 알지도 못하니 당사자 앞에서는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 편이 좋겠다, 정도만 잊지 않고 기억하기로 했다.




  한편 다른 생각도 얼핏 든다.


  분명 한국 사회는 어른을 공경하라 주의받는 만큼 어린이를 향해 비슷한 정도의 공경(혹은 존중)을 하라 교육하고 있지는 않다.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는 대신, 다소 강압적으로 굴어도 자신은 '웃어른'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식의, 미생으로 대하는 사람 또한 많다는 점에도 사실 여부에 관한 갈등의 여지가 많지 않다.


  그러니 이 표현이 과연 지양해야 하는 표현인가, 라는 논의 거리에 오르게 된 것은 애초 현 사회의 어른이 어린이를 동등하게 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학교 앞에 지루할 정도로 걸리는 저 슬로건이 '웃어른을 공경하자'가 아니라, '사람을 공경하자'로 바뀌고 난 뒤에야, 매 사람에 대한 존중이 나이에 따라 가볍거나 무거워지지 않는 사회가 선행된 후에야 정말로 저 단어가 논쟁의 여지없이 긍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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