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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묘 Aug 01. 2022

(에세이) 13. 비누와 개밥은 별미입니다만

초등학교 입학 전 아주 어렸을 적. 왕성한 식탐 때문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너무 어릴 적이라 모든 기억을 다 세세하게 떠 올릴 수 없지만, 부모님의 기억에 의지하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다.


"여보, 빨리 119 불러!!"


다섯 살 된 우량한 남자아이가 비누 한 개를 절반 이상 씹어먹었다. 조금만 더 늦게 발견됐다면 비누 한 개쯤은 순식간에 내 뱃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나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가 위세척을 받았다.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들을 내버려 두고 굳이 냄새나는 화장실 안에 비누를 왜 씹어 먹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 아마도 노란 비누를 큰 사탕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심지어 비누는 경도가 물러 어린아이가 씹기에도 좋다. 어린 내 눈엔 별미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위세척 이후 더 이상 비누는 먹지 않았다. 대신에 마당에서 기르던 개의 밥을 먹었다.


어릴 때 우리 가족은 다세대 주택에 세 들어 살았다. 다세대 주택은 보통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있고, 마당 끝나는 지점과 열결 된 가장 큰 집에 주인이 산다.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보통 주인집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집이나, 2층에 지어진 작은 집 여러 채에 산다. 우리 집은 1층 주인집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단칸방이었다.


다세대 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집집마다 약속이나 한 듯 마당에서 잡종개를 기른다는 것. 아마도 한 집에서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아 동네 사람들에게 입양 보던 것이 또 새끼를 낳고, 또 퍼져나갔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그게 인정이고 상식이었을 테니깐. 우리 집 마당에도 주인집에서 기르는 흑갈색 잡종개가 한 마리가 있었다. 짖는 소리가 우렁차고 사납게 생겨서 섣불리 다가가기 힘든 외형이지만,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개였다. 어린 나는 아직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마당에서 개랑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개밥이라고 하면 사료를 떠올리지만, 그 당시는 주로 잔반을 개밥으로 줬다. 개밥은 주인집에서 챙겼지만, 고기나 생선같이 개들이 좋아할 만한 잔반이 생기면 세 들어 살던 사람들도 챙겨줬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던 시간이었을까? 2층에 세 들어 살던 아주머니가 개 밥그릇으로 사용하던 은색 스텐 냉면 그릇에 잔반을 쏟았다. 잔반은 고기랑 밥이 버무려져 있었다. 지금은 비위가 약해 쳐다보는 것도 거북하지만, 그 당시엔 그게 고기 죽으로 보였던 것 같다. 혀를 날름거리며, 게걸스럽게 먹는 강아지 옆에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냉면 그릇에 잔반을 퍼 먹었다. 몇 번을 먹었을까. 잔반은 깨끗이 비워졌다. 얼마 후 엄마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을 먹기 위해 집으로 들어오라는 소리였다. 나는 개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웠기 때문에 밥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엄마는 또 한 번 놀라 자빠졌다. 그걸 왜 먹냐고 따져 물으며, 곧장 나를 데리고 약국으로 향했다. 약사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더니 여러 가지 약을 타 왔다.


어렸을 때 이식증을 앓았던 걸까? 단순히 식탐이 넘치다고 하기엔 기이한 기억들이 너무 많다. 다행히 지금은 식탐도 없고 음식이 아닌 걸 먹고 싶지도 않다. 단지 서른 후반에도 과자를 즐겨먹는 게 좀 창피한 식습관이다. 매일 아침, 이성이 충만한 시간. 과자를 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퇴근 시간에 가까워지면, 아침에 했던 생각이 무색할 만큼 과자 생각이 간절하다. 퇴근길에 어김없이 집 앞 무인 편의점에 들른다. 새우깡, 바나나킥, 콘치, 치토스 중 하나를 고르고 펩시 제로 콜라와 돼지바를 산다. 오늘도 자신과의 약속에 실패한 내 모습이 초라하지만, 비누나 개밥 먹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나는 오늘도 자기 합리화 없이 하루를 채 버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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