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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 만난 물개 Jun 20. 2021

#8. 드디어 퇴사

퇴사도 힘들다

퇴사. 정말 긴 여정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쉽지 않았다.

거진 한 달의 시간 동안,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내가 겪어본 회사는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퇴사 전 마지막 주.

얼추 마무리되었다고 각한 것도 잠시, '작별 회식'이란 관문이 남아있었다.

'작별 회식'은 '회사에 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질척임과 함께 마지막 날 까지도 날 괴롭혀왔다.

무엇보다도 작별 회식에 할애해야 하는 나의 귀중한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보다 나은 퇴사 후의 삶을 위해서는 퇴근 후 퇴사준비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해야 할 시간이었다.

이성적으로는 회식을 거절하는 게 맞았지만, 인간관계에서 떠나기 전 마지막 이미지라는 건 정말이지 무시하기 어려운 요소였다.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술 한잔 하자'는 말을 꺼낼 때마다, 참 곤란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회식의 가장 큰 문제는 점점 나태해지는 정신상태였다.

회식에 하루를 써버린 후 풀어진 몸과 마음을 다시 다잡는 데에는 하루 이상이 걸렸다.

회식이 연속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더욱 풀어지기 십상이었다.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도는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이번 주는 쉬엄쉬엄 하고 다음 주 퇴사하고부터 빡쎄게 달리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시간낭비인걸 알면서도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마음 약해진 나 자신이 싫었다.

잠들기 전에 "이제부터는 모든 회식에 불참해야지..."라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막상 다음날 현실에서는 그렇게 모질지 못했다.

그렇게 어쩔 수 없다는 핑계만 쌓여가며 회사원으로써의 마지막 주가 흘러갔다.



회사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이었다.

본부장님이 따로 연락을 주시어 술 한잔 하자고 하셨다.

거절하지 못해 나간 자리였으나, 아름다운 마무리라 생각하며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회사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아직은 돌이킬 수 있으니, 후회한다면 지금 말하라고' 하셨다.

마지막 기회라고 하시면서.

꽤나 매혹적인 속삭임이었다.

내가 원하는 부서로 배치해주는 것은 당연하고, 다시 열심히 생활한다면 대리 조기진급도 고려해 보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하지만 꽤나 매력적인 제안에도, 거절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내게 이야기하는 달콤한 제안들은 허상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퇴사라는 단어에는 묘한 힘이 있다.

첫 번째는 한번 입 밖에 꺼내면 돌이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순간부터 회사 내의 업무, 지위는 그다지 가치 있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미 퇴사 선언을 하였다면, 그 여파는 결정을 번복한다고 주워 담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순간부터 주위 사람들의 인식에는 '퇴사'라는 단어가 각인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선입견이 남게 되는 것 같다.

퇴사를 입밖에 낸 사람이 가장 주의할 부분이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흔들림으로 다시 회사에 정착하게 된다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퇴사일 아침, 사옥을 한 바퀴 돌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고마웠던 사람들에게는 조만간 한번 보자고 이야기했고,

그다지 접점이 없던 분들에게는 감사했다고 인사드렸다.

이 순간부터 더 이상 회사의 일원이 아니란 생각에 홀가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는 노동자의 삶을 벗어나고자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렇게 나는 '우리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이탈했고, 그와 동시에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되었다.

1막의 주제가 '패키지 관광'이었다면, 이번 챕터의 주제는 '항해'다.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건 방향키를 내가 잡았다는 사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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