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힘
엄마는 며느리 셋에 대해 불평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못마땅해서 이러쿵 저러쿵해도 엄 마는 맞대응하지 않는다. 엄마가 섭섭하거나 상처받을 것이 분명한 때에 내가 엄마에게 속상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만하면 됐어.”
엄마가 늘 하는 말이다. 내 자식도 내 맘대로 못하는데 남의 자식은 오죽하겠느냐는 것이다. 남의 얘기 들으면 우리 며느리들은 훌륭하다고 하면서 그만하면 됐다고 한다. 그리고 또, 내 자식은 아무리 야단쳐도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남의 자식은 다르다면서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고 했다. 엄마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때가 많다. 내가 본 엄마는 회복탄력성이 기본 으로 좋은 데다가 관계회복력도 좋은 것 같다. 며느리가 아무리 밉상 짓을 해도 만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한다.
나는 어렸을 때 뭔가 내 마음에 안 들거나 삐치면 입을 닫고 말을 안했다. 그러면 엄마는 제 풀에 꺾여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내버려둔다. 야단도 치지 않고, 뭐 때문에 화가 났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그게 며칠이나 지속되어도 엄마는 마치 아무일 없다는 듯이 대한다. 엄마의 이런 대처 방식은 비판하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고, 어린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존중해 준 태 도에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이들을 키워보니 엄마가 그런 걸 참은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둘째는 성격이 예민한 데다 감정 기복이 심해서 내 성질을 북돋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도대체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늘 참아주려고 하지만 가끔은 나도 참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말을 안 한다. 둘째가 먼저 기분이 풀려서 내게 말을 걸어도 내 기분이 풀리지 않으면 나는 입을 열지 않는다. 분위기가 싸늘하다. 이건 엄마가 나 에게 하던 방식이 아니다. 이럴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많이 참아 주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처럼 해야겠다고 마음 먹어도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역량 차이는 어쩔 수 없나보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 로 삼아 더 높이 뛰어 오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위키백과). 회복탄력성은 대인관 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인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갈등이 생겼을 때 탄력적인 사람들은 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해결책을 찾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홧김에 성질을 내고 싶은 충동을 조절 할 줄 안다. 이렇게 형성된 관계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연결성을 높이고, 이것이 선순환되어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만하면 됐다는 만족감 때문에 엄마는 우리들을 닦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돌아보니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이런 만족감은 가지지 못했다. ‘이만하면 됐다’가 아니라 ‘어쩔 수 없지’였다. 첫째는 공부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욕심이 없어서 그 능력을 발휘 못했으니 어쩔 수 없지. 둘 째는 공부 재능 대신 다른 재능을 가졌지만 그것을 활용해서 뭔가 이루기 위해 끈기있게 도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어쩔 수 없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언제 어떻게 자신들의 재능을 펼치면서 살아갈지 기대하는 마음은 여전히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