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이 천대받는 시대에 살면서 시를 좋아한다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어디 가서 시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괜한 허세를 부리는 것 같고, 왜인지 조롱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좋다. 사실 나는 학창 시절 언어영역을, 더 자세히 말하면 '분석해야 하는 시'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이상하게도 '시'는 싫었다.
그랬던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언젠가 문득 시를 읽게 되었다. 시를 읽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리고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 할 순간들이 올 때 내게 감동과 위로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작가별로 다른 감성과 그 차이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크다. 시인은 많고 시는 더 많아서 아직 읽어본 시는 전체 중에 5%도 될까 말까겠지만 말이다.
시 중에서 내 인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시는 단연, 정호승의 봄날이다. 이 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이 무언가 내가 마음먹은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치밀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닌 경우에는 흐지부지 되는 경우도 물론 많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가 나랑 닮았다고 생각한다. 함정임의 하찮음에 대하여 역시 나와 비슷하다. 갔던 곳을 또 가고,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나고, 언제나 익숙한 것을 사랑하는 나와 잘 어울린다.
시를 통해 인생을 통찰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또 다른 시인 황경신의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에서는 사랑이란 잡으려 손을 뻗을수록 저만치 달아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화자는 이것을 사랑이라 말했으나 그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시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에 그 매력이 있다.
감성적임을 드러내는 것은 어렵다. 특히 나처럼 겉으로는 너무나 밝아 보이고 시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까닭은 마음속의 생각은 밖으로 내보일수록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시를 읽을 것이다. 그 작업들을 통해서 인생을 통찰하기도, 위로받기도 하고 싶다. 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만 하기에는 인생은 너무도 길고도 또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