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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NIE Dec 10. 2021

마음에도 미니멀리즘이 있다면

내 마음은 언제나 맥시멀리스트

*2016년 쓴 글입니다.


내가 한국에 온 지 며칠쯤 지났나 세어보다 깜짝 놀랐다. 벌써 17일째라니, 시간이 너무너무 빠르다. 곧 내가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된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귀국 첫 주는 신변 정리를 위장한 염색도 하고 쇼핑도 하고 뭐 나름 적응도 하느라 시간이 훌쩍 갔고, 둘째 주는 매일매일 나가 놀기도 하고, 제주도로 여행도 다녀왔기에 또 금방 가버렸다. 금주인 셋째 주는 몇 개의 자소서 쓰기와 면접 준비로 나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것뿐 아니라 나는 요즘 '백 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백수와 주부의 합성어인데, 전업주부가 아닌 엄마를 두고 있어서 집안일은 내 몫이다. 물론 내가 지저분한 상태를 싫어하기에 부득부득 치우는 것도 있다. 시차 적응을 핑계로 아홉 시에서 열 시쯤 일어나서 청소기를 돌리고 이틀에 한 번씩은 빨래를 돌린다. 만약 오늘 폭염주의보나 볕이 뜨겁다면 빨랫거리가 별로 없어도 세탁기를 돌린다. 탈수가 잘 된 빨래를 탁탁 털어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에 널어놓으면 왠지 기분이 좋다. (우리 집 베란다는 겨울에도 따뜻할 정도로 해가 잘 들어온다)


빨래를 하고 나면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식탁에 노트북을 켜고 앉는다. 한낮의 해는 뜨겁기 때문에 집안 전등은 끄고 바깥 빛을 받으며 생활한다. 조금 덥거나 답답함이 느껴질 때는 선풍기를 1단으로 틀어놓는다. 고요한 거실에 사각사각 선풍기 소리가 들리고 타닥타닥 타자 소리, 책장이 한 장, 두 장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행복으로 차오른다. 혼자 이것저것을 하다가 조금 질리면 커피를 내리러 주방으로 출동한다. 새로 산 모카포트는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즐기기에 적당하다. 바닐라 시럽 조금에 우유를 섞어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먹기도 하고, 집에 남은 달달한 아이스크림으로 아포가토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집 밖을 하루 종일 나가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원체 성격 자체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언제나 바쁜 것을 좋아하여 일을 찾아다녔기에 집에 붙어 있었던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웃긴 것이 집에서도 뭔가 계속할 것을 찾아다닌다는 거다. 아까도 괜히 옥수수를 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힘'


요즘 신문 서평란에서 왕왕 보이는 책의 제목이다. 독일의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숨 돌리는 방법을 제시한다고 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선 휴식이 필요하고, 잠깐의 휴식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것이 작가가 주장하는 바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내가 달려가고 있는 동안 놓치는 것은 없는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어 얘기하자면, 요즘 읽는 책이 아주 흥미롭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인데 일본어로는 <ぼくたちに, もう モノ は必要ない> 번역을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물건은 필요하지 않아쯤으로 직역될 수 있다. 요즘 '핫'한 미니멀리즘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에게 필요한 물건만 남겨둠으로써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인생 전체의 문제라고 작가는 책 전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게 미니멀리스트냐 맥시멈 리스트냐를 묻는다면 나는 전자다. 물건에 있어서는 그렇다. 필요한 물건만을 남겨놓고 그렇지 않은 것은 정리하여 버린다. 미련이 없다.


하지만 마음이나 내 인생 전체에서는 그럴까? 대답은 '아니다'다. 누구보다 생각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욕심도 많다. 마음도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면 좋을텐데, 나는 오늘도 나라는 사람이 내 욕심을 모두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맥시멈리즘을 추구하곤 한다.


요즘 내 생활은 이런 나를 반증한다. 당분간은 쉰다고 해놓고 또 새로운 잡을 찾아가는 나를 보면서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스스로 든다. 우연히 읽은 책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일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제는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소중한 것을 안고 가기 위한 여정을 이제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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