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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이 Feb 24. 2024

돈보다는 시간

육아에 진짜 필요한 것


‘인구 소멸’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연발하며 저출산에 대한 이야기로 나라가 시끄럽다.

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어마어마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출산율은 좀처럼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사를 뒤져 보아도 유래가 없는 0.7이라는 믿지 못할 숫자를 보며 ‘인구 소멸’과 같은 단어는 어그로를 끌기 위해 쓰는 단어가 아니라 정말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라는 것을 나도 요즘은 체감하고 있다.


최근 아이의 기관을 옮기며 처음으로 저출산의 심각성을 뼛속까지 느끼게 되었다.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던 기관이 올해는 미달이었다. 어디 이 기관 뿐이겠는가.

내가 사는 이 곳은 부산에서도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이며, 다른 동네에 비해 아이의 숫자도 상대적으로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근처 모든 기관이 미달인 사태가 발생했다.

콧대 높았던 몇몇 기관들이 학생 유치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것이 바로 저출산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남편과 저출산을 시작으로 우리 아이가 살게 될 미래의 모습, 내 아이에게 물려줄 세상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날 몇일간 이어진 이 토론의 결론은 어떤 날은 ‘이민’이었다가, 어떤 날은 ‘지켜보자’였다가, 어떤 날은 ‘답답함’으로 끝이 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늘봄 교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현장에서는 ’늘봄 교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고, 주변에 늘봄 전담 기간제 교사가 된 분들은 자신의 업무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어떻게든 오후 7시까지 아이를 맡아주겠다고 했다.

수일간 쏟아지는 늘봄 학교의 기사를 보며 이 나라가 수백조의 돈을 퍼붓고도 저출산을 잡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육아에 필요한 건 ‘돈’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는 출산 가정에게 물질적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시간’이다. 돈이 있으면 무얼하겠는가? 내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녁 7시까지 아이가 학교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아동 학대이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편안한 자세로 자유롭게 일상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학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정부의 입장을 모르지 않는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맞벌이 부부의 노고를 덜어주고자 만들어 낸 정책임은 너무나 잘 알고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이 정책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부모가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이 넉넉히 주어진다면 출산율은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아이를 낳기만 했지, 조부모와 보육 기관에 아이를 떠맡기고 내 손으로 내 아이의 모든 것을 살뜰히 보듬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신과 출산은 선뜻 결정할 수 없는 문제임은 분명하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또 누군가는 희생해야 할 것이고, 손해를 보기도 해야할 것이고, 얼마나 많은 정책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지도 충분히 가늠한다.

하지만 이러한 희생과 배려와 사회적 합의가 없이는 이 일은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국가의 존립이 걸린 문제에서 우리는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아이를 7시까지 봐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7시까지 일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온 국민이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인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저출산 문제의 해결방안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한다.


곧 다가오는 개학일부터 저녁 늦게까지 남아있을 아이들과, 남겨 놓을 수 밖에 없는 부모들, 그리고 책임져야하는 선생님들까지.

이 모든 사람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담아,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며 짧은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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