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터뷰 25차__Q. 지금까지 키웠던 동물의 이야기를 해주세요.
사는 동안 수많은 ‘개’들이 내 곁에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네 살쯤 시골집에서 찍힌 사진에는 황구가 함께 있었고, 강화읍 관청리에서는 누군가가 목줄을 매어 놓은 아기 셰퍼트를 훔쳐 가 온 동네를 뒤지며 찾으러 다녔으며, 신문리에 살 때는 훌쩍훌쩍 높이도 뛰는 달마시안 한 마리와 2년 정도 같이 살았고, 대학교 때는 집채만 한 리트리버를 뒷자리에 태우고 서울에서 전라도까지 간 적이 있으며, 지금은 귀여운 혼종 말티즈의 언니로서 살아가고 있다. 내 인생에 개 이야기가 빠질 수 없기에 영숙에게도 물었다. 어린 시절에 어떤 개와 함께했나 궁금하여…. 그러나 영숙은 두 마리 고양이와 더없이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나 보다.
Q. 엄마, 지금까지 정성 들여 키운 동물은 ‘튼실이’ 뿐이야?
엄마는 ‘개 종살이’를 하고 있어. 옛날에 할머니가 마당 가에 솥을 걸어놓고 개밥을 끓여 주셨잖아. 매일 늙은 호박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뭣나뭣나(이것저것) 집어넣어 끓이셨어. 삼촌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저건 ‘개 종살이’하는 거라고 해서 우리도 말려 보았지만, 할머니는 1도 흔들림이 없으셨지. 우리가 내려와 같이 살면서도 여전하셨는데, 요양원에 들어가시면서 ‘개 종살이’를 엄마에게 물려주셨어. 게다가 고양이 두 마리가 덤으로 따라왔네.
마당엔 개 두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가 있어. 엄마는 ‘개 종살이’에 ‘고양이 종살이’로 불어났어. 하지만 이젠 간단해. 사료를 주니까. 진짜 ‘종살이’를 시키는 건 ‘튼실이’(애완견)이지. 너희들이 어릴 때 강아지를 키우자고 때를 많이도 썼는데, 성인이 되니까 엄마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데려와서는 어쩔 수 없이 키우게 됐네.
엄마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어. 개는 그저 낯선 나를 보고 짖어대며 물려고만 하는 동물이라는 인식이 있었어. 하지만, 이제 ‘튼실이’는 사람 나이로 치면 나보다 훨씬 선배이니 엄마가 좀 지고 들어가곤 해. 엄마가 정해 놓은 밥시간과 간식 시간을 앞당겨 달라고 칭얼대면 “조금만 기다려 아직 때가 안됐어.”라고 해놓고도, 정작 내가 칭얼대는 걸 못 견디고 갖다주게 돼. ‘얼마나 산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오줌 치워줘야지. 똥 치워줘야지. 산책시켜줘야지. 목욕시켜줘야지. 미용시켜줘야지. 아빠가 타박하는 거 듣고 있어야지. 게다가 제일 문제는 집을 비울 때야. 엄마나 아빠 둘 중의 한 사람이라도 집에 있으면 되는데, 둘 다 같이 집을 비우면…. 최종적으로 자리 잡은 방법이 1박 2일간 집을 비울 때는 극기 훈련을 시키는 거야. 밥그릇에 밥을 많이 담아놓고 혼자 알아서 먹고 자라고 남겨두는 거지. 다음날은 될 수 있으면 빨리 와서 밥을 주고. 2박 이상일 땐 ‘튼실이’는 애견 호텔에 맞기고 바깥 동물들은 건넛마을 아저씨한테 밥 좀 달라고 부탁해. ‘개 종살이’도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막힌 길이 뚫리더라.
고양이 얘길 해야겠네. 우리 바로 아랫집 당숙 할머니께서 고양이를 키우셨어. 그런데 연세 드시고 몸도 아프시고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아들네로 가신 거야. 고양이만 남은 거지. 그 당시 엄마는 개보다도 고양이를 더 끔찍이도 싫어했어. 옛날 사람들에게는 고양이는 ‘극혐’이었어. 이야기나 책에 흉물로 자주 등장했거든. 그런데 밥 주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고 혼자 남았으니….
그 고양이가 우리 집을 잠시 지나다니곤 하더라고. 엄마가 나가면 깜짝 놀라 달아나기에 한쪽에 개 사료를 주고 집으로 들어왔어. 먹고 가더라. 계속 주었어. 시일이 많이 지나니까 놀라 달아나지 않더라. 그러고도 몇 달이 지나니까 손가락으로 살짝 만질 수 있었어. 어느 날은 하루아침에 살이 쏙 빠져서 나타났어. 새끼를 낳았던 거야. 시일이 좀 지났는데 먹이를 물고 가더라. 어묵 반장을 잘라 주었더니 또 물고 가. 새끼들 주느라.
그러고 또 시일이 지났는데, 하루는 그 쪼끄만 새끼들을 데리고 온 거야. 엄마랑 새끼들이 함께 있는 모습만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건 없을 거야. 새끼들이 조금씩 커가고 슬슬 한 마리씩 안 보이게 되고, 또 어느 날은 새끼 한 마리의 꼬리가 뭉툭해져서 왔어. 어떤 놈이 이빨로 꼬리를 물어뜯었나 봐. 어쨌든 마지막으로 남은 건 그 꼬리 잘린 놈이야. 그게 지금 있는 고양이 ‘나비’야.
‘나비’가 혼자라 심심해한다고 너희 아빠가 선배님에게 얘기했더니, 어느 날 새끼 고양이를 두 마리를 데리고 오셨어. 겨우 걸어 다닐 때였는데 한 마리는 금방 죽고 말았어. 개가 있는 데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고 풀어 주었는데, 뭘 모르고 고양이가 그 앞까지 간 것 같아. 걷어차인 건지. 그렇게 남은 고양이가 ‘옐로우’야. ‘나비’랑 ‘옐로우’는 참 즐겁게 사는 거 같아. 싸우는 걸 못 봤어.
아! 이 얘기도 해야겠네. 어느 날 아침에 현관문을 열었더니 ‘나비’랑 ‘옐로우’가 서 있고 바닥에 조그만 뭔가가 있는 거야. 두더지였던 것 같아. 나 먹으라고 선물로 갖고 왔나 봐. 마음이 기특하긴 한데, 그냥 조용히 버렸어. 그런데 다음날도 또 가지고 온 거야. 할 수 없이 혼을 냈어. 큰 소리로 혼자 소리친 거지. 그래도 알아들었나 봐. 다음부턴 안 그래. 그러고 보니 고양이와 지낸 날들이 다사다난했네.
집안에서는 머릿속이 잠시도 쉬지 않고 시끄럽게 움직이잖아. 문을 열고 마당에 서면 ‘나비’랑 ‘옐로우’가 달려와. 안 보이면 큰 소리로 내가 불러. 들리면 ‘야옹’거리면서 달려와. 마음 내키면 엄마 다리를 ‘쓱’하고 스쳐 지나다니고. 바깥 개 두 마리는 앉아서 졸다가도 부르면 일어나 꼬리를 흔들고. 오늘은 바람이 불어서 집을 감싸고 있는 나무들이 하나가 되어 흔들거리네. 우물 같은 우리 집 마당엔 햇빛이 한가득 쏟아지고. 지나가던 구름들이 기웃기웃 내려다보네. “이 집은 뭐하며 사나?” 하고 가는 것 같아.
☎ Behind
엄마, 나는 이번 이야기 읽고 너무 황당했어.
어떻게 우리 소중한 튼실이 이야기는
온통 ‘개 종살이’ 얘기밖에 없어?
엄마한테 튼실이가 그냥 ‘종살이’ 시키는 존재야?
우리 옆에 15년째 있어 준 아인데?
튼실이가 주는 기쁨이 이렇게도 없단 말이야?
튼실이 얘기만 다시 쓰라고 하고 싶은 정도야.
엄마가 고양이 얘기만 잔뜩 하니까,
나 감정 상해서 고양이들 싫어지려고 한다.
불쌍한 우리 튼실이….
하하하하하하하하.
어떻게 그렇게 됐네?
다른 애들하고 비교하니까 그렇지.
그래도 제일 소중한 건 튼실이야.
튼실이는 내가 집에 혼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지.
그 기쁨은 아주 큰 기쁨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의 기쁨인 거야.
엄마도 튼실이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까.
하. 그래도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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