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터뷰 27차__Q. 자식을 키우며 느낀 감정은?
영숙의 인터뷰가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다. 인터뷰는 쭉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빨간머리 앤’이 했던 말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 짓기 전에 한 번쯤은, 영숙이 나와 동생을 키우며 느꼈을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난에 대해 묻고 싶었다. 나는 그대로 질문을 던졌고, 영숙은 ‘기쁨’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Q. 엄마, 나랑 진환이 키우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어?
▶ 영숙: 핑크 ▶ 해영: 검정
꽃다발 생각나니?
(응)
초등학교 다닐 때던가?
(응)
인천에 상 받으러 갔었잖아.
글짓기 대회에 입상해서 엄마랑 둘이 어딘가로 찾아갔어.
(진환이랑 셋이 갔어)
근처 꽃집에서 꽃다발을 만들었어.
그런데 엄마 욕심에 너무 큰 꽃다발을 만들어 버린 거야.
(큰 게 아니라 너무 길었어)
네가 그걸 받고 무안해했던 게 기억나.
(그게 기억나다니. 아이쿠. 내가 좀 더 고마워할걸.)
그렇지만 기뻤어.
그리고 중학교 때 전교 회장 됐을 때도 무척 기뻤지.
(정말?)
넌 집에 와서 실망하지 않았니?
리엑션 빵점인 엄마 때문에….
(아니, 전혀)
그리고 친구들 데려다가
작은 파티라도 열어주었어야 했는데,
(엄마, 그 전교 회장 선거 막 경쟁적인 거 아니었어.)
너도 알고 있었겠지만,
그때는 집안 형편이 좀 그래서 그런 것도 못 해주고 미안하다.
(나 집안 형편이 안 좋은지 전혀 몰랐는데? 세상에.)
네 동생이 중학교를 서울로 전학 가서
적응을 못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네가 그랬지?
컴퓨터 게임이랑 운동을 잘하니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그랬지)
정말 별 탈 없이 잘 지냈고,
셋이 한 조가 되어 길거리 농구 대회에 나가 1등도 했었지.
(맞아. 심지어 조장이었을걸? 맞나?)
그럴 때 기뻤어.
친구들이랑 잘 어울려 지내는 게 참 보기 좋았지.
너는 어려서부터 학교에 다녀오면 동생을 잘 봐줬어.
아이들은 골목에서 놀았는데,
너는 유모차를 끌고 친구들을 쫓아 다녀야 했지.
(기억이 전혀 안 나서 다행이야.)
그러고 보니 널 키운 보람을 참 옛날부터 느꼈네.
널 어릴 때부터 콩쥐처럼 부려 먹었으니.
네가 아기일 때도 ‘딸은 살림 밑천’이란 말을 하곤 해서
그래도 되는 줄 알았나 봐.
(초등학교 3학년 생활기록부에 담임 선생님이 썼던 말이 기억나.
“부잣집 맏며느리 상입니다.”라고. 난 대체 어떤 애였던 걸까.)
네가 여섯 살쯤이었어.
송해에 살 때 집이 찻길 가에 있었는데,
길 너머 가게에 다녀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던 게 기억나.
택시가 그 가게를 들이받았던 적도 있었고,
송정옥 할머니의 손녀가 방학 때 놀러 왔다가 교통사고로 입원한 적도 있었지.
(맞아, 거기 언덕 넘어서 바로 휘어지는 길이라 정말 위험했지)
옛날이고 시골이라 차가 많지 않아서 방심했던 거야.
사고가 난 후에야 그런 위험한 길을 건너라고 심부름시켰던 게
가슴 철렁한 일이란 걸 느꼈지.
(그랬구나. 엄마도 그런 감정을 느꼈구나.)
그때도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이 많으셨어.
너한테 말 잘한다고 야무지다고,
변호사가 될 거라고들 하셨지. 기뻤어.
(변호사가 못 되어서 미안)
야무지다는 말에
엄마가 없어도 잘 헤쳐 나가겠다고 생각했지.
37세가 오는 게 두려웠던 거야.
외할머니가 딱 그 나이에 돌아가셨거든.
그렇지만 그런 얘길 누구에게도 해 본 적이 없었어.
40세나 넘어서야 했던 거 같아.
(50세 넘어서 말해줬을걸?)
그래서 네가 친척들과 잘 지내길 바라왔어
엄마가 없어도 마음의 의지가 되도록.
그런데 이렇게 오래 살아버렸네.
(‘오래’라니, 85는 살아야 오래지)
어버이날이면 가슴에 꽃을 달아주었지.
그럴 때면 기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무척 부끄럽다.
한참 부족한 엄마여서….
그래도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고
지금 잘살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야.
(나도 고마워)
엄마 삶은 다 살았어.
이제 여분의 삶을 사는 거야.
언제 죽어도 여한 없어.
지난날 과오는 어떡해?
이미 그렇게 살아버린걸.
그저 ‘미안하다 고맙다’ 말만 되뇔 수밖에….
(우리 미안해하지 말고 고마워하기만 하자. 엄마.)
영숙은 참 작은 이야기들을 잘 기억한다. 작은 이야기들을 들을 때,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나도 잘 아는 이야기였을 때, 나는 이야기 세상에 푹 빠져 간지러워진다. 내가 어렸을 때 영숙은 기쁘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영숙은 기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어쩌면 기쁘고 행복했던 엄마로 기억됨으로써, 나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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