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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Nov 18. 2023

영숙’s answer. 영숙 할머니의 미래 소설

엄마 인터뷰 28차__Q. 80세 엄마의 하루는?

      

한동안 영숙의 인터뷰를 올리지 못했다일이 바쁘기도 했지만조금만 부지런을 떨었으면 충분히 올릴 수 있었던 이야기들을 그냥 묵혀뒀다왜 그랬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시작은 창대했는데끝은 미약해져 버린 인터뷰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벌써 9개월 전에 영숙에게 요청했던 인터뷰가 있었다영숙이 80세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하루의 모습을 적어보라는 것이었다귀여운 하루 일기 정도를 적어 내려갔을 거로 생각했던 나는 글을 받아보고 적잖이 놀랐다영숙이 이미 미래의 어떤 사람이 되어 과거의 어느 날을 선명하게 회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Q. 엄마가 80세가 됐다고 생각하고 평범한 하루를 상상해 볼 수 있겠어?     




며느리가 왔다. 아들네는 함평읍에 산다. 읍내를 벗어나는 곳에서 아주 예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며느리는 요즘 폭염 때문에 나를 시인 할머니와 함께 용천사 앞에 데려다주고 카페로 돌아간다. 남편은 선배이신, 시인 할머니 남편과 해병대 전우회에 가신다. 이열치열로 흑염소탕을 잡수신단다.     


용천사 앞에는 카페와 정자가 몇 개 있어서 여름날 쉬기는 딱 좋다. 주인 남자는 커다란 종이를 펼쳐놓고 붓글씨를 쓰고 주인 여자는 불교용품이랑 기념품을 팔면서 사람들의 말벗이 되어준다. 그리고 옥수수를 삶아서 팔고 있다. 동네 아주머니가 팔아달라고 해서 삶아 파는 것이다.     


우리는 차를 시켰다. 형님(시인 할머니)은 보리 미숫가루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자리 잡고 앉은 정자로 차를 갖다주었다. 우리는 이제 그런 걸 들고 다닐 나이는 지난 것이다. 정자는 그늘이 지고 마룻바닥은 시원했다. 딸이랑 사위가 사다 준 모시옷이 더더욱 시원하게 만들었다.     





그 옛날도 이렇게 시원했었다. 그저 생각 속에 묻어둔 이야기다. 그 얘기가 문득 하고 싶어졌다.     

“형님! 오늘은 제가 옛날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그래, 해봐. 해봐.” 

형님이 재촉하신다.     


“옛날, 옛날에 제가 젊었을 때였어요. 시어머니랑 남편이랑 셋이 살았는데, 우리 어머니는 밭일밖에 모르던 분이셨거든요. 한여름 뙤약볕에서도 집에 들어오려고 하시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폭염 주의보가 내려지거나 그 정도로 더운 날씨에는 모시고 여기(용천사)로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불갑사 앞으로도 가고 그랬지요.”


“불갑사 앞에는 상가가 하나도 없었을 때였어요. 그렇지만 커다란 나무들이 많아 그늘이 좋았죠. 그리고 여기는 지금처럼 카페랑 식당이 있었고요. 주인아주머니가 지금처럼 붙임성이 좋아서 사람을 끌었지요. 그때 식당에서 식용 꽃을 올린 음식을 팔았었는데 비빔밥이었는지 칼국수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어머니는 빨리 가자고 재촉하셨는데 제가 말을 안 들어드렸죠. 꽃밥도 먹고 한참 놀다 들어가곤 했어요.”     


“그리고 멀리까지 놀러 다니기도 했죠. 우리 진짜 형님인 순자 형님께서 어머니랑 쓰라고 50만 원씩 1년간 보내주셨어요. 영암에 있는 왕인박사 유적지도 가고 운주사에 서 있는 수많은 부처와 와불도 보러 가고 그랬어요. 그러던 어느 날 불갑사 앞으로 갔는데 현수막이 눈에 띄더라고요. 불교대학을 하고 있다고요. 인터넷으로 불교를 접하고 있었던 터라 관심이 많이 갔어요. 한자투성이라 따라가지 못할까 봐 조금 걱정은 됐지만요.”     

“등록하고 밤마다 공부하러 갔어요. 공부하러 갈 때는 생얼에 수수한 옷을 입고 갔어요. 왠지 그래야 할 거 같았어요. 그리고 낮에 회식을 몇 번 했는데 그때는 화장하고 화려한 옷도 입고요. 그 당시 화장은 아주 색깔이 짙은 게 유행이었어요. 밤에는 수수한 마음이었는데, 낮에는 도깨비 같았달까요? 보는 사람은 어땠을까요?”     

“이상한 사람으로 봤을 수도…. 하하하!”

형님이 웃으셨다.     





“하지만 수수한 마음도 도깨비 같은 마음도 다 저예요. 그날들은 지금껏 살아온 날 중에 제 마음이 가장 맑고 아름다웠던 때였어요.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렸지만요.”     


“어느 날은 같이 공부하던 분 중의 한 명이 제게 그랬어요. <내가 싸우면 내 편 들어줄래요?> 그래서 <그래요>하고 대답했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무심하게 대답한 거예요. 그런데 일어난 거예요, 교실에서 대판 싸우더라고요.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거짓인 거 같았어요. 하지만 쳐다보면 또 참말인 거 같고요. 어떻게 법당에서 싸울 수가 있죠?”     


“스님은 수업 시간에 영광과 함평을 비교하며 무시하는 듯했어요. 몇 차례 그러시니 하루는 제가 벌떡 일어나, <하산하겠습니다!>하고 말했어요. 나도 모르게 인터넷에 떠도는 불교 이야기에 나오는 단어가 쑥 튀어나온 거예요. 그 길로 절은 접고 책 한 권 사서 읽고 인터넷으로 조금씩 좋은 글들 읽으며 지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용천사에도 불교대학이 있더라고요. 그걸 모르고 불갑사까지 갔으니, 사람들이 무슨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나 했나 봐요. 절이라는 데가 모든 게 가지런히 정돈돼있는 게 아니라 정돈해 가는 곳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의견을 내며 서로 풀어가야 했을 것을 그냥 뛰쳐나왔으니 거기서 멈추고 만 거죠. 세월이 지나고 나니 재미있는 추억이 됐어요. 그랬더랬어요. 형님!”     





막 말을 마쳤는데 젊은 할아버지 한 분이 성경책을 들고 우리에게 오셨다.

“교회 다니세요”

옛날에도 그랬더랬다. 정자에 앉아 있으면 전도하는 분이 오시곤 했다.      


우리는 입을 모아

“저는 천주교 신자고요.”

“저는 불교 신자예요.”

절에도 안 다니면서….     


건너편 식당에 가서 청국장찌개를 먹고 돌아와 다시 정자에 앉았다. 식곤증에 졸다가 눕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앉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팔십 평생 살아오는 동안 가슴 졸이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렇게 조용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좋다. 조금 있으면 며느리가 데리러 올 것이다.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냐고누구는 재미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고누구는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다나는 허리가 꼿꼿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영숙은 자기성찰을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걸까잘 모르겠지만어쩌면 소설 쓰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거야너무 청산유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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