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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돈 Feb 02. 2022

내가 경험한 COVID-19 VIRUS


벌써 지난주에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지나갔다. 새해 아침부터  딸아이가 다니는 스터디 카페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PCR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르신들 걱정에 본가와 처가에 들르지 못하고 '페이스 톡'으로 인사와 덕담을 대신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인데도 개인적으로는 대선보다 코로나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에 눈길이 간다.


2년 전 대전지점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코로나 사태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처음에는 생소한 바이러스 소식에 그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해하기 힘든  마스크 대란 사태가 벌어졌다. 뒤이은 조치로 채택한 재택근무는 다소 낯선 영역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당연히 '메타버스'라는 영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무실 밖에서의 식사가 꺼려지기 시작하더니 도시락으로의 점심 식사 대체, 저녁 회식 금지는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수시로 보도되는 뉴스를 접하며 불안하기는 하지만 대안이 없기에 백신 3차 접종까지 마치고 나서야 심리적 안정을 바탕으로 그런대로 적응해오고 있다. 물론 정신적으로야 가끔 벽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하는 외로움이 사회성을 밟아버려 힘들어하고 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뉴스에서 오르내리는 일들이 다소 나와는 동떨어진, 말 그대로 그들만의 뉴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올해, 그 뉴스가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간간이 들려오는 인근 지점의 확진자 발생 소식과 더불어 지점 폐쇄 소식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가운데 1월 중순 인사이동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30년간의 직장 생활, 그리고 2년간의 객지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의미 있는 인사이동이었다. 이러 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입사 동기인 지역본부장, 함께 달려온 지점장들과 조촐히 식사라도 하고 객지에서 2년간 함께 생활했던 부지점장들과 차, 과장들이 눈에 밟혀 역시 간단한 식사를 계획했다. 인사이동 전날, 사택의 짐을 꾸려 차에 실을 준비를 마치고 사무실 짐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커피 한잔하며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같은 건물 3층의 센터장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 3층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1층부터 5층 직원들 전원이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계를 보니 저녁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자가 건물을 총괄하고 있는 나로서는 마음이 급해졌다. 전 직원에게 문자를 돌리고 직원들을 독려해 서둘러 구청 선별 검사소로 향했다. 출장 중인 직원들에게도 소식을 전하며 불안한 마음을 다독였다. 검사를 마친후 단톡방을 열고 사택에서 대기하며 통보 결과가 오는 대로 소식을 전할 것을 당부했다. 보통 다음 날 아침에  결과가 통보되기에  초조한 마음을 추슬렀다. 그런데 카톡 알림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 넘어서고 있었다. 단톡방에 검사 결과를 통보받은 직원들의 소식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신속 항원검사를 진행했는지 결과 통보는 빨랐고 다행스럽게도 25명 전원이 음성 판정이었다. 다만 2-5층 직원들의 검사 결과를 알 수 없어 관할 지점장들과 통화를 마쳤다.


문득 허기가 몰려왔다. 짐을 모두 꾸려 차에 실은 상태라 끼니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사들고 들어왔다.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오지않는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이미 확진자 발생으로 건물은 폐쇄되었기에 일어나자마자 CESCO에 연락해 건물 전체 소독을 실시해야 했다. 담당자로부터 소독 실시 후 1시간 이후부터 직원들 출입이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객지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보내고 짐을 차에 싣고 지점 주차장에 도착했다. 직원들은 출근할 수 없어 소독이 완료되는 때까지 집에서 대기 상태다. 주차장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넣으며 이별 인사를 갈음하고 신임 지점장이 부임해야 했기에 자리를 비켜주고 카톡으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객지 생활을 마무리하는 날 벌어진 일련의 상황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제대로 경험한  씁쓸한 기록이다.  결국 직원들과 식사도 못한 채 코로나가 잦아들면 한 번 들르기로 하고 집으로 차를 몰았다. 따스한 햇살이 왜 그렇게 춥던지 몸살이 날 것 같아 휴게소에 들러 감기약을 털어 넣었다. 집으로 올라온 다음 날, 다른 층 직원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모두 별 탈 없이 업무에 복귀했다는 전언이다.


이번 일은 TV에서 보도되는 뉴스가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언젠가 인문학 강의에서 어떤 교수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인생은 남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정신없이 1월을 보내고 이제야 컴퓨터 앞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여전히 오미크론 변이가 활개 치는 이 사태가 언제쯤 진정될 수 있을까. 뉴스에서 속삭이듯이  독감처럼 치부하고 생활해야 하는 단계인가. 이런저런 의문이 꼬리를 물고 나를 흔들고 있다. 어쨌든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신 모든 분들의 쾌차를 기원한다. 아울러 고군분투하고 있는 의료진과 간호사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특히,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선별 검사소에서 근무하는 모든 분들에게 특별히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


돌이켜보니 지난 2년간 갑작스럽게 너무 낯선 세상이 전개되었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세상에 빠르게 적응해야했다. 올해에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지만 이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살면서 처음 경험한 일련의 사태는 사회적 트라우마로 남을 듯싶다. 그래도 미지의 우주를 탐험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믿으며 긍정의 끈을 붙잡는다. 오미크론을 비롯한 모든 돌연변이를 극복하는 희망의 임인년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2022.02.02. 맑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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