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에서 살아남기 - #1
대학을 다닐 때부터 직장인의 삶을 꿈꿔왔던 것 같다. 군대 가기 이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프로그래밍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얼른 풀타임 개발자가 되길 꿈꿨고, 군대 이후 일했었던 한국의 스타트업에서 작은 회사의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는 얼른 졸업해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자리 잡았다. 다른 미국 유학생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인턴 하며 느꼈던 한국의 정서와 서울이라는 큰 도시의 다양성이 나에겐 긍정적으로 다가와 졸업 이후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꿈꾸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의 유학이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직장생활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딱히 하진 않고 있었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 학교 주변 Research Park에 있는 회사들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분위기가 다들 평화롭고, 자유롭고, 심적으로, 그리고 재정적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학교가 시골 쪽이라 더 그랬나...). 오후 4시 반쯤 되면 하나둘씩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고, 키친에 모여 이런저런 삶의 얘기, 회사 얘기, Netflix 본 얘기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여유롭게 퇴근했다.
물론 이런 여유로움이 좋고 편안하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좀 더 도시스러운 곳에서 바쁘게, 이것저것 많이 하면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마지막으로 인턴 했던 회사의 본사가 샌프란시스코였고, 오피스 간의 이동이 자유로운 회사여서 리턴 오퍼를 본사부탁하여 받았다.
그렇게 난 직장인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오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보니 난 13년 미국을 살며 한 번도 도시에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주로 suburb 나 완전 시골 (도시 주민 ~800명)에서 살았었는데, 크게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도 물론 꽤 시골이었지만, 한국인 학생이 많았고, 한국 마켓, 한국 식당, 노래방등 있을 것들은 다 있었어서 나에게는 완전 도시 같았다 (매일 한식을 사 먹을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 그러다 마지막 1-2년 정도, 학교 주변 Meetup conference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확실히 도시들에 비해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고, 학교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끝없는 옥수수 밭보다는 좀 더 도시적인 분위기에서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첫 도시에서의 삶은 여러 부분에서 꽤 만족스러웠다. 다양한 개발 관련 Meetup 도 자주 나가고, 한국에서 일할 때처럼 회사 동료들과 점심 먹으러 여기저기 가보고, 자전거로 출퇴근도 하고 (쉽진 않았다...), 퇴근하는 길에 백화점에 잠시 들려 옷도 사고. 갈 수 있는 카페들도 너무 많았고, 가보고 싶은 식당들도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도 평소에 쓰던 서비스들의 본사가 길가에 즐비하게 있는 게 신기했다. 감사하게도 룸메이트 형의 인도로 좋은 교회도 찾을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동갑내기 친구들 여럿과도 곧바로 친해져서 활발한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콘서트를 많이 가보고 싶었지만 그동안 기회가 없었는데, 실리콘밸리 전체적으로 SF Jazz, SF Symphony, Napa Blue Note, Stanford Live 등 많은 기회가 생겼었다. 크게 주변에 재즈를 좋아하는 친구를 찾지 못해서 혼자서 콘서트를 보러 가곤 했는데, 너무나도 좋아하는 가수가 오면 Napa Valley까지 택시를 타고 다녀오곤 했다. 내가 평소에 너무나도 좋아했던 아티스트를 직접 보고 듣는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오랜 시간 동안 조용하고 안전한 동네들에서만 살다가 도시, 특히나 난폭한 노숙자가 많기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는 정말이지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밤에 자주 들리는 총인지 폭죽인지 모를 소리들도 신경 쓰였고, 거리마다 진을 치고 있는 노숙자들이 무서웠고 매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해가 진 이후 도시를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고, 밖에 나갈 때마다 굉장히 안전염려증 사람처럼 눈을 여기로 저기로 돌리며 alert 되어 있었다. 심지어 회사 첫 출근 날, 한 노숙자는 나에게 달려오며 내가 신고 있는 Toms 신발을 벗으라고 욕을 하며 소리쳤다. 그것도 나의 아파트 빌딩 바로 앞 교차로에서 신호등 기다릴 때 말이다...
학교 다닐 때, 삶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머리 비우고 노래 들으며 걷기였는데, 당연히 하지 못하게 되었고, 도심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하루하루가 반복이 되자 나는 도시에서 하루빨리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느 정도로 힘들어했었냐면, 그렇게 1년을 도시 속에서 살고 나서, 한참을 샌프란시스코는 너무 더럽고 살 곳이 못되니 가지 말라고, 여행할 곳도 못된다며 주변에 신신당부를 하고 다녔다. 물론 걔 중에는 샌프란시스코에 몇 번 놀러 와본 친구들이 다들 나보고 정말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거 맞냐며, 자신들이 본 도시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좋았다며 의심을 했었다.
한참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샌프란시스코에도 안전하고 아름다운 neighborhood 가 많다. Dogpatch, Financial District, Potrero Hill, Pacific Heights 등, 좀 더 잘 알아보고 아파트를 잡았었다면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나의 인식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그땐 월 $800 만 내도 혼자서 1 Bedroom에서 살던 대학 시절 바로 직후였고, 2 Bedroom 일인당 $1600 내는 것도 굉장히 좋은 곳 일거라고 생각했다 (물가를 몰랐지...). 미국에서 굉장히 오래 살았던 나로서는 도시와 시골 월세 차이가 이렇게나 심하게 날줄 몰랐고, 사람 사는 곳이 이렇게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월세 가격 차이는 집이 얼마나 fancy 한가의 척도라고만 생각했지, 안전과 직결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아파트 빌딩 바로 주변의 텐트촌이 "세기말" 감성을 (룸메이트 형의 표현) 불러일으키는 곳을 가게 됐었고, 그렇게 저렴한 곳에는 주로 이유가 있다는 것도 같이 배우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아파트/집을 찾으신다면 꼭 동네 safety check을 추천해요..!).
그렇게 난 직장인으로서 굳은살이 붙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