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 술을 단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있다. 벌써 14일 째이다.
애주가인 내가
왜
전혀 술을 마시지 않냐 하면..
요즘 나에게 가장 큰 변화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출력해 내 침대 옆 벽에 붙였으며 매일 날짜에 X를 표시하며 지우고 있다. 2월 25일부터 3월 18일까지 3주가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기로 와이프와 약속을 했고 이를 어길 시 50만 원의 벌금을 주기로 했다.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큰 일인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 같은 애주가에게는 '엄청난 도전'인 것이다. 사실 나의 의지로 3주가 넘는 기간 동안 술을 먹지 않은 것은 고등학교 때 술을 마신 이래로 처음이기 때문이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갑자기 술을 안 먹는 이유가 술을 먹고 엄청난 사고를 치거나 당장 건강상 치명적인 문제가 생겨서는 아니다. 물론 잦은 술자리, 혼술, 낮술, 반주 등으로 피곤감이 계속 유지되기는 하지만 술주정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술을 심하게 마셔서 문제를 일으킬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 세상 최초의 인간이 포도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그때 악마가 찾아와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인간이 대답하기를 '지금 근사한 식물을 키우고 있다'라고 말하자 악마는 이런 식물은 처음 보는 것이군'하면서 놀라워했다. 그래서 인간은 악마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이 식물에는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데, 익은 다음 그 즙을 내어 마시면 아주 행복해진다네. 악마는 자기도 꼭 한몫 끼워 달라고 애원하고는, 양과 사자와 원숭이와 돼지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악마는 이 짐승들을 죽여 그 피를 거름으로 썼다.
포도주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 처음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술을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에는 양같이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납게 되고, 조금 더 마시며 원숭이처럼 춤추거나 노래 부르며, 더 많이 마시게 되면 토하고 뒹굴고 하여 돼지처럼 추하게 되니,
이것은 악마가 인간들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탈무드>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언젠가 지나가다 본 탈무드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탈무드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은 '아담'이고 그가 만드는 열매즙은 '술'이다. 탈무드에 따르면 아담과 함께 악마가 만든 술은 그 양에 따라서 우리는 짐승으로 변하게 만든다. 우리가 평소에 마시는 술도 그와 다르지 않다. 나도 술을 마시면서 술을 마셔 짐승이 될지언정 양에서 넘어갈 정도로 술을 마시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
물론 내 인생에서 술을 역사가 꽤나 깊으니 술을 마시고 양에서 원숭이나 돼지가 되었던 적도 있다. 보통을 술을 많이 마시면 기분 좋게 술을 마시다가 식탁에 엎드려 자는 정도가 나의 술주정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남에게 주는 피해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주는 피해였다. 숙취..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가슴 깊이 박힌 세계적인 명언이 있다.
"술은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니 몽땅 마셔서 없애버려야 한다."
농담이다.. 위에 인용한 탈무드에는 술에 대한 이야기가 또 나온다.
술 마시는 시간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시간에
당신의 마음은
쉬고 있으니까.
- <탈무드>
술을 마시는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술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술과 함께 사람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 좋은 작품을 만난다. 그 시간은 나의 마음이 쉬는 시간이기도 하고 어쩌면 더더욱 열정적으로 나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 내가 술 마시기를 멈춘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양하다. 술을 마셔야 하는 시간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한 무언가를 빼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곁들이는 술
어느 때보다 고된 날에 일을 마치고 나와 만나는 술
좋은 경치에 돗자리 깔고 바람을 느끼며 음미하는 술
비 오는 날 파전과 함께하는 술
좋은 영화와 함께 가볍게 마시는 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즐기는 술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는 일상에 흘러넘쳤고 그게 빠졌을 때는 앙꼬 없는 붕어빵처럼 무미건조하고 제대로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2주 정도 그러한 상황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과 굳이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대치한다. 단,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나의 일상을 해치지 않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의 말미에 밝히자면 술을 한동안 마시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술을 더 즐기기 위해서'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애주가스러운 답인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실행을 하게끔 한 소중한 사람이 있다. 자주 술을 먹는 나에게 그분께 들은 이야기가 늘 족쇄처럼 따라다니곤 했다.
언젠가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참 멋진 사람인데 술에 대해서는 정말 이해가 안 돼."
"술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술병을 얻어 좋아하는 술을 이제는 먹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술을 조절하면서 먹었으면 좋아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더 오래 즐길 수 있었을 텐데"
- 원웨이브, <좋아하는 형님의 이야기>
뭐든 비슷하겠지만 좋은 것도 지나치면 결국에는 좋지 않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나치게 탐닉하다 보면 그것을 더 오래 향유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숙취로 고생하고 그런 날들이 이어질 때면 이 이야기가 늘 생각난다.
https://brunch.co.kr/@onewave/63
https://brunch.co.kr/@onewave/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