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의 꽃이 마흔에게 하는 이야기
마흔이 오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기 전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앞섰지만, 서른이 되었던 것처럼 마흔이 되어 결국 달라진 것은 없었다. 원래도 책을 좋아하고 많이 보는 편이지만 여러 번 곱씹고 음미하며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책들을 다시 펼쳐보려 한다.
마흔에
달라진 것이
정말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마흔에 다시 봐야 하는 책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이다. 그만큼 나는 '어린왕자'를 좋아한다. '어린왕자'를 제대로 읽은 것은 10번도 넘으며 짤막하게 읽은 것까지 치면 수없이 많다. 집에 '어린왕자' 책만 국문, 영문합본, 리미티드본, 미니북까지 4권이 있으며, 어린왕자나 생텍 쥐페리 관련된 책까지 하면 10권은 될 것 같다.
신기한 게 '어린왕자'는 볼 때마다 눈여겨보는 문장이 달라진다. 한동안은 모자 그림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면, 언젠가 책을 펼쳐서는 꽃의 이야기에 매료되고, 여우의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어린왕자'는 <A는 B다>와 같은 명료한 정답보다는 읽기 쉬운 이야기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왕자'가 더 애착이 가는 이유는 고등학교 때 교내편집부에서 '어린왕자'로 축제 때 직접 쓴 대본을 가지고 짧은 낭독극을 했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를 끊임없이 읽으며 내가 '꽃'이다, '여우'다 하며 직접 썼던 대본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게 한 큰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마흔이 되어 바뀌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 중에 하나는 나의 위치였다. 서른의 기대와 실망이 흐려질 때쯤 마흔에 대한 생각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마흔이면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래, 마흔이 되면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인정받으며 존경받고, 그만한 장소와 직위에 있을 것이다. 전문성과 경험을 겸비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멋진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마흔이 되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내가 하는 일을 10년 넘게 해 오며 전문성과 경험을 쌓았으며 관련된 강의와 심사를 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크고 안정된 직장에서 대단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게 아닌 오히려 프리랜서로 전보다 더 홀로 서있다. 큰 집단이 아닌 홀로 서 있기 때문에 더더욱 누군가를 알아주고 나를 불러주어야 나는 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전문성과 경험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타인이 알아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일에 대한 것을 떠나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나면 즐겁고 편안한 사람으로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나의 바람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더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를 꾸미고 몰아가고 다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과 맞물려 '어린왕자'의 꽃이 생각났다. 아름답게 태어나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어린왕자 꽃은 마흔의 나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좀 더 그렇게 보이기 위해 꾸미고 포장하는 모습이...
"아! 이제 막 잠에서 깼어... 미안해, 내 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있어서..."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中
자신의 아름다움이 가장 빛을 발할 때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며칠 간 몸치장을 하고 천연덕스럽게 어린왕자에게 한 말이었다. 꽃은 자신의 초록색 방 안에서 주름이 가득 있는 꽃잎을 하나하나 정돈하면서 천천히 치장해 왔던 것이다.
"저녁에는 내게 유리 덮개를 씌워줘. 네가 사는 행성은 너무 추워. 환경도 안 좋고, 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내가 살던 곳에는..."
하지만 꽃은 하던 말을 멈추었다. 그 꽃은 씨앗 형태로 이곳에 왔다. 다른 세상을 알리가 없었다. 뻔한 거짓말을 하려다 들킨 게 무안해진 꽃은 어린 왕자에게 죄책감을 안겨주려고 기침을 두어 번 했다.
"바람막이는...?"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네가 계속 말을 시켰잖아!'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中
마흔이 된 우리는 생각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다. 마흔이면 좀 더 완벽해질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차이를 꾸미고 돌려가며 말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조금은 과대포장하고 돌려 말하며 마흔의 부족을 채우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꽃처럼 무안해져 마음에 없는 말들로 이어가곤 한다.
시간이 흘러 철새를 따라 행성을 떠나기 전 어린왕자는 불을 뿜는 화산을 정성스레 청소하고, 바오밥나무의 마지막 싹도 뽑고, 꽃에게도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주었다.
"잘 있어."
어린 왕자가 꽃에게 말했다. 꽃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 갈게."
어린 왕자가 또다시 말했다.
꽃이 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감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침내 꽃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너무 바보처럼 굴었더. 나를 용서해 줘. 어딜 가든 행복하길 바랄게."
...
"그래 맞아, 난 널 좋아해. 네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건 내 잘못이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런데 너도 바보 같기는 마찬가지야. 부디 행복하길... 유리 덮개는 그냥 둬. 그건 이제 필요 없어.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中
어린왕자가 떠날 때가 되어서야 꽃은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꽃은 나 자신만을 알아주길 바라며 자신을 내세우고 꾸며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너무도 바보 같았음을 깨달았다. 오히려 먼저 알아주기를 바라를 대상을 좋아하고 내가 상대방을 알아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단 하나의 소중한 사람이 떠나갈 때 깨달은 것이다.
논어에서도 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자가 말했다. "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 공자, <논어>, 학이편, 1.16
마흔의 나는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 바라기보다, 먼저 남을 알아주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란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내가 먼저 남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좋아해 주면 나에게도 좋은 일들이 더 생기지 않을까? 그러면 더 멋진 마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알아봐 주면 가장 행복해할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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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진. Pixabay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열린책들, 2015
- 공자, <논어>, 현대지성,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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