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었다. 주민등록초본을 뽑으면 동주민센터에서 놀랄 정도이니. 그래도 그땐 그런 게 그리 싫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새로운 것들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 었으니까.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면 늘 집 근처 골목들을 돌아다니며 근처를 파악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좋아하던 만화책방은 어디에 있는지, 슈퍼나 떡볶이 집은 어디에 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사를 자주 다녀서 새로운 곳에는 친구가 아직 없으니 그러한 친구를 찾아다녔던 거 아니었을까 한다. 하지만 그저 돌아다닌다고 친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며칠을 돌아다니며 동네가 파악이 되면 마지막으로 그곳에 가장 높은 지대를 찾아가 노을을 보곤 했다.그때는 뭔지 잘 몰랐지만 외로움이나 고독감을 노을이 비춰주고 채워주기에 노을을 자주 봤던 것 같다.
노을을 찾아가고 좋아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국내여행을 가건 해외여행을 가건 노을 보기는 항상 여행 일정에 포함되어있다. 말 그대로 노을 보는 시간이 배정된 계획이 있다!! 맛집이나 랜드마크보다는 노을 보기 좋은 곳을 검색하고 찾으며 여행 일정에 꼭 반영을 한다. (사실 나의 대부분 여행은 계획이 별로 없다. 어쩌면 노을을 보는 것이 거의 유일한 계획일지도 모를 정도로) 그만큼 노을이 좋고 그 시간과 노을이 진행되며 시시각각 세상이 붉게 물들고 이내 붉은빛이 사라질 때쯤 개개별의 건물들과 도로에서 각각 다른 조명들이 켜지는 것이 흥미롭다.
어린왕자가 사랑한 노을
언젠가는 내가 왜 노을을 좋아하지? 언제부터였지?라는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이유이자 시작은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라는 책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평소에도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중 가장 좋아하는 책을 뽑자면 단연 <어린왕자>이다. 지금까지 10번도 넘게 봤지만 늘 다른 부분이 좋고 볼 때마다 다른 책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에서 어린왕자가 자신이 사는 별인 B612호에서 마음이 적적할 때는 의자를 조금씩 뒤로 옮겨가며 하루에도 44번이나 노을을 보던 모습이 나의 마음속 깊숙이 들어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해 지는 걸 보는 게 좋아. 함께 보러 가자."
...
그런데 네 조그마한 별에서는 의자를 조금 옆으로 옮기기만 해도 가능하다. 어스름한 석양빛이 보고 싶어 질 때마다 너는 그렇게 했겠지.
"어느 날은 태양이 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본 적도 있어!"
조금만 있다가 너는 이렇게 덧붙였다.
"있잖아. 사람은 너무 슬플 때 해 지는 걸 보고 싶거든...."
"태양이 지는 걸 마흔네 번이나 본 날 그렇게 슬펐던 거야?"
어린 왕자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 <어린왕자> 中
이 글을 쓰면서도 "요즘 노을을 많이 안 본 것 같네. 오늘은 노을을 보러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노을을 보고 싶은 것은 늘 슬프기 때문은 아니다. 결국 내가 노을을 좋아하는 건 그 순간 내가 느끼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그대로 마주하고 싶은 마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과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는 없다. 모든 결정을 늘 누군가와 상의해서 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외로움을 한편에 두고 있으며 그 외로움이 커지는 게 두렵고 싫어서 늘 핸드폰을 보고 항상 음악을 들으며 왁자지껄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