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헤르만 헤세가 해준 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 헤르만헤세, <데미안>, 민음사
길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에서 헤르만 헤세를 만났다.
요즘 나는 길 위에 멈춰있다. 어디를 가야 할지, 어떤 길 위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해야 할 일들은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일들은 내 속에서 부유하듯 떠다니기만 한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방황이 조금 섞인 여행이었다면 지금은 주인을 잃어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주인 찾고 있는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답을 찾고자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사람을 만나도 해결되지 않는다. 거북한 느낌을 해소하고자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멍하니 TV를 보고 게임을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이 시간이 뒤로 밀릴 뿐이었다. 그러던 중 집 근처 도서관에서 다시 무언가를 찾다가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이라는 책을 만났다. 들어는 봤지만 아직은 읽어보지 않았던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의 글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스승 헤르만 헤세를 만나다.
그는 늘 자기 자신으로 이르는 길을 찾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그리는 데 그중에서도 영적인 성장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그에 대해 조금 더 탐구하던 과정에 유튜브에서 헤세는 평생 자신의 내면을 찾아 헤매며 그 과정을 책으로 담아낸 작가였으며,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를 통해 그 과정을 자신의 글로 쌓아갔다고 했다.
그래서 <데미안>에 이어 <싯다르타>를 읽었다. 다소 심오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그는 어떠한 종교와 사상이 일러주는 외부적인 어딘가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이르는 길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거듭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자기 자신으로 이르는 여정은 <데미안>의 싱클레어, <싯다르타>의 싯다르타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나 자신한테서 배울 것이며, 나 자신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 자신을,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아내야지.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p62
헤세의 글들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좀 더 명확해졌다. 지금 내가 헤매고 있는 이유는 가려는 길의 종점을 내가 아닌 타인이 정해놓은 곳으로 가려하기 때문이다.
내 삶에서 막힘이 생기면 자꾸 밖에서 원인과 해결책을 찾았다. 사람을 만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물론 그 과정을 통해 비슷하거나 좋은 답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듯한 답일 뿐이지 내가 가진 어려움과 문제의 답은 아니었다. 나의 길에 있어서 헤매거나 막힘이 생긴다면 결국 가장 정확한 길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좀 더 고요하게 혼자 시간을 가져 스스로를 만나야 한다.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필요한 일인 것이다.
당신의 내면에는 당신이 매 순간마다 그 속에 파고들어 가 편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그런 고요한 은신처가 하나 있어.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야. 그런 은신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되지. 하지만 모든 사람은 다 그런 은신처를 갖고 있는지도 몰라.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p107
명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얼마 전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라는 앤디 퍼디컴의 책을 읽었다. 그 책의 저자는 헤드스페이스라는 어플을 만든 파란 눈의 스님이다. 명상을 종교에서 분리해 마음 챙김이라는 이름으로 서양에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한 스님이다.
책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헤드스페이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헤드스페이스는 싯다르타가 이야기한 내면의 안식처와 같다. 스스로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는 내면에 고요한 공간이다. 앤디는 그 공간을 푸른 하늘에 비유를 했다. 현재 눈앞에 세찬 비가 내리고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 보자. 비행기를 타며 경험했겠지만 아무리 거센 비바람이 부는 검은 하늘 위에는 늘 푸른 하늘이 존재한다.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위에는,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청명한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변함없는 나만의 은신처를 찾는다면 힘겨울 때마다 눈만 감으면 그곳으로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너는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가면 그곳에는 오직 푸른 하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하늘에 먹구름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그 구름 위에는 언제나 청명한 하늘이 존재하지."
...
"하늘은 언제나 푸르다는 얘기다."
앤디 퍼디컴,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스노우폭스북스
얼마 전 재갈매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재갈매기의 부리에는 붉은 점이 있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그 붉은 점이 보통 식당에 있는 호출벨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어미 재갈매기가 새끼들을 위해 먹이를 가져오면 바로 주지 않는다. 오직 어미새를 똑바로 바라보며 부리에 있는 붉은 점을 쪼는 새끼에게만 먹이를 준다는 것이다. 어린 새는 안락한 둥지 안에 있고 어미가 바로 옆에 있지만 붉은 점을 쪼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깨달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걸세.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 우리는 지혜를 찾아낼 수 있으며, 지혜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으며, 지혜로써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p204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Heaven helps thos who help themselves.'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추구하며 얻어가고자 한다. 그런데 싯다르타에서 헤세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은 죽은 지식일 뿐 스스로를 더 자기 자신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얻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재갈매기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붉은 점을 쪼아대듯이 나도 나의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며 지혜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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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2002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민음사, 2009
- 앤디 퍼니컴,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스노우폭스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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