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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채기 Aug 01. 2023

위대한 사건

정조대왕


"부르셨사옵니까, 할아버지"

"그래, 드디어 타임머신이 완성되었다."

"축하드리옵니다"

"자 이제 내 너를 과거에 보낼 테니, 보고 싶은 우리나라 역사 사건을 말해보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자 말해보거라"

"정조대왕입니다"

"정조대왕? 그건 사건이 아니지 않느냐?"



우리나라 역사에서 진정으로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 한 사람밖에 없다. "정조대왕". 그의 출생, 그의 능력, 그의 사연, 그의 업적, 그의 죽음, 이 모든 것 위대함의 자격이 있다. 그리고 내가 정조를 위대하다고 부르는 데에는 나의 출생도 관련이 있다. 문예부흥을 일으킨 혁신 군주,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은 성군. 그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해 보자.


위대하기 위한 나만의 특별한 조건이있다. 일단 '왕'이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왕이 되는 일은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기만 하면 왕이 될 수 있잖아? 그게 뭐 어려운 일이야? 그러나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 보았냐고.

왕족으로 태어날 확률은 왕족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보다 기적적으로 낮다. 그 바늘구멍 같은 확률을 뚫었다하더라도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나야만 한다. 여기서 확률은 또 반토막이 난다. 여기서 유아사망률까지 뚫고 왕세자가 되어 왕 자리에 올라야 한다.

아주 낮은 확률, 난 그것 자체에 경외심을 느낀다. 딱히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그냥 내 취향이다.  왕 중에서 천재가 나올 확률까지 곱해보자. 그야말로 위대한 존재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천재는 비교적 쉬운 사건이다. 정말 어려운 사건은 왕 중에서 천재가 나오는 일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조선에는 두 명의 천재 왕이 있었다. 조금 똘똘했다 정도가 아니라 진짜 '천재'가 두 명이나 있었다. 한 명은 세종대왕이고 한 명은 정조대왕이다. 이 둘의 천재성과 리더쉽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세종대왕이 신하들과 회의할 때 모습이다. 신하들의 말 하나하나를 들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대의 말도 옳소, 경의 말도 옳소" 그렇게 모두의 의견을 들은 뒤, 마지막에 "그러나 내 생각은…."하고는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신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앞에 나온 그 어떤 의견보다 뛰어나서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고 회의가 끝난다. 그러나 정조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다. 그는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해결책을 발표한다. 신하들은 초라한 자신들의 의견을 차마 발표하지 못하고 그렇게 회의가 끝났다고 한다.

사실 '천재'라는 단어는 세종에게 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늘날 '천재'라고 한다면 창의적인 과학자 이미지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아인슈타인 때문이겠지. 그런 이미지에는 세종이 분명 더 어울린다. 그 스스로 과학자이자 가장 과학적인 언어 한글을 만든 장본인이니까. 그러나 세종대왕에게 정말 죄송하지만, 그는 머리만 커다란 왕이었다. 그에 비해 정조는 완전한 인간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정조를 학자 군주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조 스스로는 자신을 무인 군주라고 생각했다. 정조가 학자 군주라고 불리는 이유는 명백하다. 정조는 어릴 때부터 무서울 정도의 책벌레였다. 그가 초등학생의 나이에 나눈 대화 기록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수준이 이미 학문의 경지에 이른 학자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는 철학, 과학, 역사 등 모든 학문에 능통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를 당대 조선 최고의 학자였다고 불러도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조는 '초계문신제'를 시행했는데, 이는 정조만이 할 수 있는 정책이다. 평생 공부만 해서 시험 보고 들어온 인재들을 정조 자신이 직접 교육하고 시험을 보았다. 정조가 그들보다 더 똑똑하지 못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평범한 왕은 학자들에게 배웠지만 정조는 그들을 가르쳤다. 그만큼 정조가 높은 경지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초계문신 출신 중 한 명이 바로 "정약용"이다.


그러나 정조는 왜 자신을 무인 군주라고 했을까. 학자 군주가 자신이 어떤 군주인지도 알지 못했던 것일까? 그럴 리가. 정조는 실제로 매우 탁월한 무인이었다. 정조는 무예를 연마하는 일조차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정조는 활을 정말 잘 쏘았다. 기록을 보면 기예에 가까운 명중률을 보유하고 계신다. 정조는 실제로 "신궁"이라고 불렸으며 과장이 아니었다.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조는 특수부대를 설립해서 무사들을 직접 교육하고 시험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뛰어난 무인의 기질을 가진 학자 군주는 결국 무술과 무예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까지 이르렀다. 정조는 무인들을 통솔할 줄 아는 장군이었으며 진법에 대해 정통한 전략가였다. 정조는 흔치 않게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무인 군주였다. 한 나라의 왕이자 학자이자 무인인 정조. 이게 내가 그를 완전하다고 말한 이유다.





"오 할아버지! 정녕 알지 못하신단 말입니까?"

"무엇을 말이냐?"

"한 인간이야말로 가장 극적인 사건임을 진정 알지 못하신단 말씀이십니까?"

"인간이 사건이라는 말이냐?"

"인간이 사건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구나"

"정조대왕이야말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임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사건을 말하라!"

"정 그러하시다면 정조대왕의 즉위식으로 가고 싶습니다"



"천재적인 왕"은 사실 위대함의 필요 조건에 불과하다.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비극"이 필요하다. 이것도 취향이니까 이유는 묻지 말라. 정조의 사연을 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뒤주에 갇혀서 굶어 죽은 사도세자가 정조의 아버지다. 아버지가 뒤주로 들어가는 날, 10살의 정조는 아버지를 살려달라면 할아버지에게 울며 빌었다. 정조는 바로 끌려 나갔다. "손 떼라! 저 아이는 장차 이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다!" 끌려 나가며 정조가 아버지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렇게 정조는 아버지가 뒤주 속에서 능욕당하고 굶어 죽는 모습을 멀리서, 그러나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 후 정조는 역적의 아들로서는 왕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호적을 파야만 했다. 어머니와도 이별해야 했다. 정조의 어머니는 10살짜리 아이에게 상복을 벗고 어미를 떠나라고 해야만 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정조는 평생을 암살 시도에 시달렸다. 그가 책벌레였던 이유는 밤에 잘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정조가 무예를 단련한 이유도 자기를 보호해야만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조의 일기를 보면 신하들이 자신을 보고 고개조차 숙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모든 칼날과 눈초리 속에서 정조는 왕이 되었다.


왕위에 오른 후 정조의 업적은 설명해 봤자 입만 아플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이루지 못한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정조가 이루지 못한 업적이야말로 진정 위대한 것이었다. 그는 노예제도를 폐지하려고 했다. 이는 링컨보다 앞선 시기였다. 정조는 실제로 이를 진행하고 있었다. 정조의 왕권은 강력했기 때문에 실제로 아무런 전쟁 없이 노예제 폐지에 성공했을 수 있다. 그렇다. 정조는 전 세계 최초로 노예제를 폐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추진 중에 죽고 말았다. 못 이루고 죽은 것이니 위대하지 않다고? "비극"이야말로 위대함의 조건이라고 나는 말했다. 닿을 뻔했던 것처럼 비극적인 것이 또 있을까?


정조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그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바로 '과로사'다. 그의 죽음조차 위대하다. 잠시 니체의 목소리를 빌려본다. "천재란 필연적으로 낭비하는 자다. 자신을 다 내준다는 것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희생적인 행위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그는 다만 내부로부터 솟아나고 넘쳐흐르며 자신을 탕진하고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 강물이 강둑을 넘어서 흐르듯이". 과로사로 죽었다는 것은 그만큼 정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자신을 전부 내준 위대한 사람이다.


정조가 죽고 찬란했던 24년의 조선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누군가는 이를 정조의 실패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가 얼마나 뛰어난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조선이 찬란했던 이유가 진정 정조 때문이었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정책이 국가 존속하는데 옳았느냐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지에만 관심이 있다. 진정 위대한 인물이라면 사후에도 잘 돌아갈 수 있는 국가를 만들어야 하지 않았냐고? 그렇다면 우리는 미의 기준이 다른 것 같다. 당신은 영원의 미를, 나는 찰나의 미를 믿는다.


이제 나의 혈통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 볼까 한다. 내 할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채제공의 후손이라고. 우리는 학자 집안이고 똑똑하다고. 어렸던 나는 채제공이니 똑똑함이니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나중에 채제공이 정조대왕의 오른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채제공이 없었다면 정조대왕은 절대 혁신을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왜 그렇게 정조에게 정을 느끼는지. 나에게 정조가 왜 그렇게 위대하게 느껴졌는지. 어쩌면 정조대왕을 섬기던 습성이 유전된 것은 아닐까. 내가 위에 적었던 이유들은 사실 거짓말일 수도 있다. 정조대왕을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정조를 섬기는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게 위대한 인간을 섬기는 기분은 대체 어떤 기분일까?





"할아버지, 저는 가서 보고 오고 싶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사도세자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모욕당하고 암살당할 뻔했던 정조. 그가 드디어 왕에 오른 그 순간을 보고 싶습니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데 그러느냐?"

"그곳에는 위대함이 있사옵니다."

"무엇이 위대하냐?"

"정조가 왕위에 오르고 처음으로 한 말이 위대합니다 "

"그 첫마디가 무엇인데 그러느냐?"

"관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니라"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니라! 아,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을까? 자신을 정의하는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을까? 나는 가서 정조대왕의 첫마디를 듣고 말 것이다. 그리고 맘껏 기대해 보리라. 그분과 내가 이루어 갈 빛나는 조선을. 잠시만 그건 내가 아니라 채제공이잖아...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의 아들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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