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죽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로 니체는 "보복 살해"를 말한다. 신이 무엇을 했기에? 인간을 동정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보는 신은 인간이 숨기고 싶었던 추악함도 보았다. 그리고 신은 그런 인간을 불쌍히 여겼다. 추악한 자는 그 시선에 수치심을 느꼈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신을 살해했다.
우린 그 심정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들켰을 때 수치심을 느낀다. 그 누군가가 자신을 동정까지 했을 때는 분노로까지 번진다. 살해는 그런 식으로 발생한다. 나는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면 나는 살해 당할까?"
최근에 '나'는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으른 나'도 있고 '성실한 나'도 있다. '해맑은 나'도 있고 '우울한 나'도 있다. 수많은 '나'들이 각자 서로 싸우기도 하고, 왕따시키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기도 한다.
'초라한 나'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누구인가?
나의 이상이다. '이상적인 나'. 또는 나에 대한 관심. '소중한 나'다.
자기 연민을 하면 이들이 살해당한다.
그래서 자기를 불쌍히 여기다 보면 자꾸만 추악한 나만이 생존하다.
그게 추악하다고 말해 줄 목격자를 제거하기 시작한다.
자기 연민을 하다 보면 자신이 어떻게 돼도 좋다고,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나를 불쌍히 여기지 말고 어떻게 해야 할까?
차라리 동등한 적으로 간주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단지 알겠는 건 자기연민은 저급한 행위라는 것.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마라, 자신을 동정하는 것은 저속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다."
[노르웨이 숲] / 무라카미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