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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화 Oct 26. 2022

언니는 범인이 될 거야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어중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지옥을 끝내기 위해서는 그저 발버둥 치는 것으로는 안 된다. 가영은 병원에서 치료만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진영을 보며 결심했다. 이 지옥을 끝낼 것이다. 아무도 가영과 진영을 도와주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찾아오던 센터의 어른은 발길을 끊었고 가영과 진영이 병원에 가는 횟수는 늘었다. 엄마는 한 병원에 한 번만 갔다. 진영은 먼 병원에 다녀왔는지 지쳐서 방구석에서 잠이 들었다. 가영은 잠든 진영을 두고 아무도 없는 집을 둘러보았다. 가영은 지금 명탐정 코난 속 범인이다. 그러나 코난 범인 중에 어린아이가 없다. 어린아이는 어른을 죽일 수 없다. 코난처럼 브라운 박사의 특별한 무기가 없다면 어른을 상대할 수 없는 것일까. 코난에는 늘 지옥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인을 하는 어른들만 나왔다. 지옥 같은 일상을 사는 아이들은 그럼 어떻게 하지? 가영은 총과 칼이 아닌 것으로 죽는 사건들을 유심히 보았다.     


“저거야.”     


가영의 눈은 범인의 정체를 알아낸 코난처럼 예리해졌다. 티비 앞으로 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자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코난이 말하는 범행 방법을 집중해서 봤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몇 번이고 범행 장면을 되뇌었다.     


“잊어버리면 안돼.”     


진영은 헥헥거리며 방에서 자고 있었다. 해는 아직 하늘 위에 떠 있다. 해가 지면 엄마가 돌아올 것이다. 가영과 진영은 아침 해가 뜨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침 해가 뜨면 엄마가 나가기 때문이다. 아침이 돼서야 가영과 진영은 잠에 들 수 있었다. 가영은 베란다로 나가 밖을 내려다보았다. 가영의 집은 7층이었다. 코난에서는 10층이었지만 3층 정도 모자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코난 속 아파트와 다르게 가영의 집에는 튼튼한 난간이 없었다. 유리문과 방충망을 열면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었다. 그러나 방충망이 못으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가위.”     


가영은 가위를 가져와 방충망을 잘랐다. 방충망 아래를 거의 다 잘랐을 때 진영이 잠에서 깨어나 가영을 불렀다. 진영은 눈을 비비며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진영에게서 병원 냄새가 났다. 가영은 냉장고를 열고 먹을 것을 찾았다. 냉장고에는 그래도 음식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전혀 먹지 않을 것 같은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밥이 있는 날은 드물었다. 가영과 진영은 배가 고파도 엄마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밥상은 폭력이 일어나기 좋은 공간이다. 다양한 이유로 맞을 수 있다.     


“찾았다.”     


의자를 타고 올라가서 냉장고 위에 있는 음식들을 발견했다. 먹다 남은 피자 몇 조각이 남아있었다. 진영과 가영은 차가운 피자를 먹으며 티비를 틀었다. 진영이 좋아하는 프로를 틀어 놓고 가영은 아직 한참 잘라야 하는 방충망을 봤다.     


“언니.”

“왜.”

“저거는 왜 잘랐어?”

“범인이 그렇게 했어.”

“엄마한테 혼나면 어떻게 해?”

“괜찮아.”     


피자를 다 먹은 진영은 가영을 도왔다. 위까지 잘라야 하는데 손이 닿지 않았다. 의자를 가져와 손이 닿는 곳까지 방충망을 잘라냈다. 의자를 잡고 있는 진영의 손이 땀으로 미끈거렸다. 그래도 의자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가영은 까치발을 들고 부들거리며 아래를 보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해가 점점 내려오고 있었고 잘라낸 방충망은 가영의 키보다 훨씬 컸다. 방충망의 단면에 찔린 가영의 손에서 피가 흘렀다.     


“언니 이거 붙여.”     


진영은 병원에서 붙이고 온 밴드를 떼어 가영에게 주었다. 진영의 아물지 않은 상처가 붉게 빛났다. 가영은 말없이 진영에게서 밴드를 받았다. 가영은 잘라낸 방충망을 베란다 구석으로 치웠다. 해가 사라지고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진영아.”

“왜.”

“언니가 부를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마.”

“왜.”

“언니는 범인이 될 거야.”     


진영은 가영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진영은 늘 앉아있는 방구석으로 달려갔다. 가영은 거실에 앉아 구두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 코난의 범인이 그랬던 것처럼. 가영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느새 옆구리의 통증과 엉덩이에 통증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소리가 들리고 문 앞으로 걸어오는 구두 소리. 철컹 거리는 문소리가 들린다. 집안을 걸어 다니는 쿵쿵거리는 발소리. 그리고 곧이어 들려오는 짜증 섞인 목소리. 그리고 고함 소리가 들렸다. 가영은 아무 말 없이 눈치를 보며 엄마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베란다로 나가 방충망이 없는 걸 확인한 엄마는 가영이 있는 곳을 노려봤다. 베란다로 나가는 뒷모습과 방충망이 없는 곳에 서 있을 때. 가영은 범인이 그랬던 것처럼 결의에 찬 눈빛으로 베란다로 뛰었다. 

    

밀었다.     


범인은 총도, 칼도 없이 사람을 죽였다. 범인은 어른이었고 두 손으로 밀어도 충분히 사람을 밀수 있었지만 가영은 아니었다. 두 손으로 미는 것으로 엄마를 떨어뜨릴 수 없었다. 크게 비틀거린 엄마는 이내 다시 중심을 잡았고 가영을 밀어 넘어뜨렸다.     


“이 미친년이!”     


가영의 앞에는 방충망을 자르고 남은 가위가 놓여있다. 가영은 가위를 들고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가위를 피하느라 완전히 무너진 무게중심.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엄마가 사라져야 한다. 엄마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렸고 그 손은 가영의 팔을 잡았다. 아이는 어른의 힘에 끌려간다. 가영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엄마보다 먼저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뿐이었다. 가영은 엄마와 바닥에 나란히 누워 엄마가 먼저 죽기를 바랐다. 가영이 할 수 있는 건 이런 작은 바람밖에 없었다. 엄마가 먼저 죽는 걸 확인하고 가영은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가영은 진영과의 미래를 상상했다. 눈치 보지 않고 맛있는 밥을 먹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평범한 삶을 꿈꿨다.     


같이 살 수 있는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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