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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화 Oct 26. 2022

나만 남은 집

서해 강원도 부근의 해안가를 향해 따라 나 있는 이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넘어가는 과정에서 얼핏보였던 바다에 민수는 신난 듯 말을 이었다.

“와 바다다! 바다! 엄마! 봤어? 바다야!”

다소 평범한 반응이었지만 오히려 동생다운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내 산으로 시야가 가려지면, 보였던 바다는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지곤 했다.

나는 구불구불하게 난 이차선 도로를 타고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에 멀미가 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 차 안에 갇혀있는 것에 실증이 난 것인지도 모른다.     


‘내리고 싶다.’     


멍하니 뒷좌석에서 부모님이 앉아계시는 앞 좌석 사이의 공간으로 전방을 바라봤다.   

  

가족들은 뜨문뜨문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 대화는 어딘가 부유하는 것처럼 들렸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는 됐지만, 나를 제외한 대화들처럼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오지 말 걸 그랬어.’     


가족여행이라고 해 봤자, 이럴 줄 알았다.

민수가 가자고 조른 여행에 부모님은 좋다고 반응했고, 그걸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내게 없었다.

민수가 제안하고, 부모님은 당연히 응답한다.    


‘어련하시겠어.’     


만약 내가 여행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부모님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일차적으론 거부했을 것이다.

물론 그 거부가 어떤 거부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피곤하면 안 와도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당연히 셋이 다녀오겠다고 하겠지. 

    

‘그건 그것대로 싫었으니까.’

그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고개만 끄덕거리고, 응응. 갈게. 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응과 응 사이에서 말하지 못한 것들은 언제나처럼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지금은 그 여행을 거부하는 게 나았으리란 생각만 들었다.  

   

‘구역질이 나.’

차의 창문을 내렸지만 여름 산의 공기는 역시나 습하고 텁텁하고 끈적거렸다.     


‘씨발….’     


욕을 삼키려고 전방을 쳐다봤다. 부모님이 앞좌석에 앉아 계시는 모습을, 그 사이에 비춰 보이는 엄마의 뒷모습과, 아빠의 뒷모습.

그리고 까불거리는 민수의 말소리가 들리고.     


그 순간, 이차선 도로의 비탈이 꺾여지는 부근에서, 트럭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것이 우리를 향해 정통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또 뭐가 들렸지? 아아…. 기억난다.’     


끼이이이익-!     


소름끼치는 타이어소리. 그리고.    

 

콰아앙-!     




“제발 좀 일어나 봐주라 응? 응? 민수야….”     


부모님의 장례식을 다 치르고 난 이후에도 민수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가족은 민수 뿐이였다.

평소에는 얄밉기만 하던 동생이었는데. 이제는 내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다.     


“일어나봐…. 민수야.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어… 알아? 듣고 있어? 민수야…. 너 없이 장례식도 다 치렀다고… 제발….”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건 나뿐이었고, 당연히 그런 걸 답답해하는 민수는 벨트를 매고있지 않았다.     


의사는 이 정도 사고로 민수와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기적이라고 했다.

‘기적? 기적이라고? 이게?’

세상에 이런 기적도 있나.     


차라리 그때 네 사람 모두가 깔끔하게 즉사했다면, 그랬다면…….     


의사는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민수는 의식을 되찾아도 아마 움직이진 못할 겁니다. 교통사고로 뒷좌석에서 척추와 목이 꺾이면서 중추신경계가 마비되었어요. 돌아올 가능성은 없습니다. 의식이 장기간 돌아오지 않으면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고……”     


“제거요?”

“예.”

“언제부터 제거할 수 있는데요?”

나는 깁스를 하고 있는 발을 쳐다보며 물었다. 석고로 굳어있을 종아리까지의 감각이 마치 마비된 것처럼 느껴졌다. 꼼지락거려보려고 해도 움직여지지 않는 깁스였다.    

 

‘민수의 몸은 이런 상태일까?’     


깁스한 몸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안정감. 유일하게 떨림이 없는 부위가 기브스를 한 왼쪽 발 뿐이었다. 그곳을 제외한 전신은 모두 떨리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정신도 제대로 차릴 수 없었다.

지금이 몇시인지.

먹고 있는 게 점심밥인지 저녁밥인지 조차.

나를 도우러 온 사촌들이 외가인지 친가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다만 민수가 혼자 남아있는 병실에 심전계 소리가 들려오면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곤 했다. 

    

어느새 옆에 있었던 의사도 간호사도 보이지 않았고, 친척들도 없었다.    

 

‘언제 갔는지 모르겠다.’     


“근데 왜 너만 남아있니… 민수야…?”     


삑… 삑… 삑…     


“왜 너만….”     


일정한 박자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심전계와 생명유지장치에서 호흡기로 뿜어져 나오는 산소 소리만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왜 너만 남았냐고!! 제일 쓸모 없는 너만!!”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병실을 울렸다.

나는 민수의 호흡기에 손을 댔다.     


내가 이걸 뜯어낸다면?

민수의 목구멍 깊숙한곳에 처박힌 호흡기를 빼버린다면.   

  

그러면 민수는 죽는다.

민수는 죽는다.

‘동생은 죽는다.’     


이내 가쁜 호흡이 가다듬어지고. 냉정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병실에 알람이 울리고 간호사들이 뛰쳐오겠지.     


어차피 이대로 깨어나지 않는다면, 그대로 죽게 될 아이다.     


아니 민수도 죽어선 안 된다.     


‘왜 나만 살아남아서 고통받아야 해?’

모두가 죽고… 나 혼자만 살아남아서… 이 모든 걸 혼자서 버티라고?

아니야 그럴 순 없어. 그럴 순 없지.     


나는 푹 잠든 것처럼 보이는 민수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민수야…. 살아남아야 해? 응?”     




“네 동생 기사 좀 봐라! 응? 은수야 듣고 있니?”

“네 엄마.”

“네 동생은 너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배운다니?”     


재능의 차이라면 재능의 차이였다. 노력의 차이라고 볼 순 없었다.

분명 나한테 도레미를 배우던 민수가, 순식간에 학원 선생님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학원을 채 한 달도 다니기 전이었으니까.     


민수가 내가 예술고등학교를 목표로 연습하던 피아노를 듣고는 흥미를 가진 게 시작이었다. 

    

민수가 내 방에 들어온 것은, 엄마가 내 감수성에 도움이 되랍시고 식물과 꽃을 내 방에 들여놨기 때문이었다.

원래 거실과 베란다에 키우던 식물들이었는데, 그 중 많은 것들이 내 방으로 옮겨졌다.   

  

민수가 내 방에 들어온 것도 그 식물 때문이었다.

민수는 내 방으로 옮겨온 식물 중에서 파리지옥을 가장 좋아했다.     


밖에서 개미를 집어와서는 파리지옥에게 밥으로 주는 것이 민수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였다.

     

나는 파리지옥 입이 닫히기 전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떼어내는 민수가 징그럽기도 하고, 그 풍경이 섬뜩해 파리지옥을 바깥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민수가 개미의 다리를 뜯어내 파리지옥의 입에 올려놓고, 개미가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모습은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그래서 민수가 파리지옥 밥주러 왔다고 하면, 어김없이 방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던 중 민수가 어김없이 벌레를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평소라면 민수가 하는 일을 지켜봤겠지만, 그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콩쿠르 준비로 바빴기 때문이었다.     


민수는 벌레의 다리를 떼면서 내가 연주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와… 누나 그 소리는 뭐야? 되게 이쁜 소리가 난다.”

“그래? 고마워. 식물 밥 주고 한 번 쳐볼래?”

“어? 그래도 돼? 누나가 아끼는 거잖아.”

“뭐…. 주먹으로 때리지만 않으면 괜찮아.”

“어라, 이건 뭐야? 파리지옥 옆에 주사가 꽂혀있어.”

“아 그거. 엄마가 영양제라고 하나씩 꽂아놨어.”

“영양제구나.”

“영양제야.”

“내가 좋은 벌레 잡아다 주는데. 영양제가 필요해?”

“난 식물 잘 몰라.”

“엄마한테 파리지옥 말고 다른 식충식물 사달라고 했어. 그건 내 방에 둘 거다?”

“제발 좀.”     


민수는 피아노가 내심 쳐보고 싶었는지, 빠르게 벌레를 손질해 파리지옥에 넣어주었다. 평소보다 빨리 달려온 민수가 내 옆에 앉으려고 했다.     


“손 씻고 와.”

“아차차…. 갔다 올게!”

후다닥 뛰어나간 민수가 화장실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민수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부모님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의 중심은 나한테 있었다.     


엄마는 어려서 포기했던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내게 투영했고.

나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밤낮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들겼다.

자면서도 피아노 콩쿠르에서 연주할 곡을 들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내가 예술고등학교 입시에서 떨어지면서? 아니면 민수를 만나고 벽을 느끼고 슬럼프를 겪으면서부터?

언제부터였을까?     


엄마의 눈빛이 변한 것은, 아니.

모든 건 민수 때문이었다. 내 부족함은 아니었다.

난 누구보다 열심히 했잖아.

안 그래?

나한텐 문제 없어.     


민수는 손을 빡빡 씻고 왔다면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작고 조그마한 손이 어떻게 피아노 건반을 누를 수는 있을지 걱정스러운 순간.

내 의문은 놀람으로, 놀람은 두려움으로 바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기가 도야.”

“도?”     

도레미파를 알려 줄 생각이었다.

“그 옆에가 레.”

“으음… 레….”

“여기가 미.”

“미…. 미… 미 소리가 이쁘다. 그 위에는 뭐야? 검정색이 있어.”     


“눌러볼래? 이건 미샵.”

“미샵?”

“여기 악보 보면 이렇게 샵 붙은거 보여?”

“오… 모르겠어. 이건가?”

“응 그거. 뭐가 더 붙었지? 그건 이걸 치면 되는 거야.”

“으음 소리가 다르네. 여기가 도고 레고 미고… 그러면 여기는 이런 소린가?”     


민수는 악보와 피아노 자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정확히 악보의 음계 하나를 짚어 쳐냈다. 

    

“누나가 치던 거 이런 느낌인데.”

그리곤 곧바로 도레미파와 미샵만을 배웠을 뿐인데, 내가 연주했던 악보를 낮은 음자리로 연주했다.     


나는 소름이 돋는 걸 참지 못하며 민수를 공포스럽게 쳐다봤다.

“너… 피아노 배웠어?”

“아니? 처음인데? 재밌당. 나도 배우고싶다. 엄마한테 학원 보내달라고 해볼까?”    

 

그렇게 민수는 피아노 학원비를 3번을 내기도 전에, 전국 초등학생 콩쿠르 대회를 나갔고. 대회에 나가기 위해 엄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민수를 태우고 전국을 쏘다녔다.     


엄마의 꿈은 어린 민수로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내가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예술고등학교의 피아노 교사도 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가, 민수를 찾아와 입학을 제안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천재였다.     


너무 압도적인 벽 앞에 나는 민수에게 질투를 느낄 세도 없었다.     


내가 콩쿠르로 밤낮으로 연습하던 곡을, 민수가 악보 초견으로 거뜬하게 쳐냈을 때.

나는 민수를 질투하기를 포기했다.     


정작 나를 견딜 수 없게 한 건 부모님의 온도차이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엄마. 오늘 내 생일이잖아요.”     


“어쩔 수 없잖니. 중학생이나 되어서 그렇게 쩨쩨하게 굴래? 동생 콩쿠르 타면 그때 아빠랑 같이 넷이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말했잖니!”

“아무리 그래도… 작년 생일도 못 챙겼잖아요! 나 이제 중학교 졸업반인 건 알아요? 예술고등학교 입학 포기한 건 아시냐고요!”     


“아… 그랬니? 아 잠깐잠깐 누가 민수를 찾네. 민수 어디로 안 도망가나 봐야겠다. 조금 있다가 전화할게! 아 맞다! 이번에 또 민수 방에 있는 피아노 건들지 말아라? 민수 조율에 예민한 거 알잖니. 또 조율사 부를 시간이 없어! 그럼 이따 전화할게!”     


뚝.     


나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빠조차도, 퇴근 후 곧바로 민수의 콩쿠르를 들으러 그곳으로 퇴근한 모양이었다.  

   

나만 남은 집.

민수의 방에서 원래 내 것이었던 피아노를 쳐다보았다.     


파리지옥은 이미 말라 죽어있었고, 다 비어있는 영양제가 화분에 꽂혀있었다.

나는 죽어있는 파리지옥의 흙 옆으로 다른 영양제 하나를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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