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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Feb 23. 2023

남들 시집갈 때 나는 대학 간다.

6. 89와 99

로드뷰를 켰다.

다음날 OT에 가기 전 로드뷰로 미리 가보고 싶었다.

화면 속에서 몇 번 클릭만으로 내가 앞으로 다닐 대학교의 모습이 보였다.

내일이면, 이 건물을 실제로 보고, 이곳을 거닐 수 있다니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다음날, 나는 미리 예습한 대로, 길을 걸었고,

정문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OT장소를 알려주는 표식이 여기저기 붙어있었고,

나는 그 길을 따라 OT 장소에 도착했다.

강당 안에 사람들을 둘러보며, 빈자리에 앉는데,

대부분 나보다 어려 보였다.

교수님들과 간혹 보이는 어른들 빼고

 거의 연장자에 속하는듯했다.

OT는 준비한 식순에 맞춰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렇게 모든 게 낯선 생경한 분위기 속에

내가 있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지 못한다.

나도 이 사람들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 중 같은 학과라는 이유로 학교 측에서

마련한 저녁식사장소로 함께 이동했다.

모두가 서로를 모르니 자연스레 본인 소개가 이어졌다.

인원은 10명 남짓이었고, 다 나보다 한참은 어려 보였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왔다. 마치 러시안룰렛이 다가오는 듯 계속 긴장을 했다.


"여기서 제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요.

 저는 올해 26살 ~~~ ""

나를 제대로 못 봤나 보다.

정확히 그 친구 다다음에 다가온 내 차례.

어떤 말부터 할지 열심히 고르다가.

결국 나이얘기 먼저 오픈했다.

나도 내 나이가 놀라운데,

듣는 사람들도 당연히 놀랐을 거다.

본인들보다 이렇게 나이차이가 많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거다.


내 옆에 앉은 친구는 99년생이라고 했다.

나는 89년생이다. 정확하게 10살 차이 나는 사람

 둘이 옆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10살 어린 사람하고는 어떤 대화부터 시작해야 하더라?라는 생각이 스칠 때쯤.

그 친구가 나에게 먼저 사는 곳이 어디인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어떤 일을 하는지, 회사는 어떤지, 목표가 무엇인지, 가장 기대되는 수업이 어떤 것인지 등등

평소 생각했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나이차이는 물론 내 입장이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과의 대화가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채용, 인사평가 등 정말 모든 역량이 누군가를 평가하는데 쏠려있다.

단순히 면접, 인사평가 시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팀원부터 시작해서 모든 세세한 순간에 나의 기준과 회사의 기준을 잣대로 평가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그걸 원하고 있었고,

 나를 통해 직원들의 동태를 살피길 원했다.

그런 게 나에게 너무나 큰 피로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내가 그 누굴 평가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도 된다.

학생들만 누릴 수 있는 평등한 관계.

그 속에 내가 들어와 있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사는 곳도. 꿈도.

목표도 다 다르지만.

이제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반짝이게 빛나는 친구들 사이에 내가 앉아있다.


그리고 나는 기도해본다.

그 안에서. 나도 같이 반짝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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