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운영팀에서 깨진 독에 물을 붓고 새 독을 만들면서
전래동화 속 콩쥐의 업무 스펙트럼은 넓고 업무량도 많았다.
쇠 호미 대신 부러진 나무 호미로 농사를 지어야 하지 않나, 벼도 찧어야 하고 베도 짜야한다. 역경에 가까운 업무들을 외로이 시작하고 처참하게 실패하려고 할 때쯤 스페셜리스트, 동물 등 각종 조력자가 튀어나온다. 어린 나는 손뼉 치던 좋아했지만 조금 나이 든 나는 '능력도, 인맥도 없는데 착하게만 살면 이렇게 쉽게 해결된다고?' 차가운 탄식을 내뱉는다. 콩쥐의 미션 중 '깨진 독에 물 붓기'는 지금 생각해도 참 난처하다. 두꺼비의 희생으로 해결은 했지만 해결했다고 볼 수 있나? 책을 덮은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찝찝하다.
부어도 부어도 차지 않는 깨진 그 독은 발로 차 버리고, 새 독에 물을 부으면 되잖아.
음, 그럴 수 없다.
공간적 배경이 회사라면 말이다. 정말 어떻게도 못쓸 독이라면 과감히 깨뜨리고 새 독을 만들기도 하지만, 10여 년의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런 장면은 아직까지 못 봤다. 그리고 올해 12월은 스타트업의 운영팀에서 5년을 꽉꽉 채워 일한 달이었다. 스타트업은 한 손으로 깨진 독에 물을 쉼 없이 붓고 또 한 손으로는 새로운 독을 만들어야 하는 숙명이 넘실거리는 곳이다. 회사 대표님은 '스타트업은 짓고 있는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어떤 스타트업 대표는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하지만 현재 쓰고 있는 노후화된 시스템 운영도 멈출 수 없는데, 이 과정을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를 갈아 끼우는 장면으로 비유했다.
깨진 독에 물 부으면서 새 독을 만드는 일
비를 맞으며 벽돌을 쌓건, 뛰면서 바퀴를 교체하건 비유보다 현실이 더 힘들다. 그렇다고 깨진 독이 원망스럽거나 미운 것은 아니다. 아무리 한 장의 기획서에서 견고하고 빛나는 독 이어도 기획서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쉴 새 없이 깨진다. (음, 그냥 인생 자체가 깨져가는 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깨지지 않는 독은 파도 없는 모래사장의 모래성,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플랫폼은 가장 최악이니까.
플랫폼이라는 줄 위에서 고객에게 빙의하는 회사의 인싸, 운영팀 오퍼레이터
운영팀 오퍼레이터를 거치지 않고서는 회사의 일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정말 많다. 서비스도 사람과 같이 살아있고, 날씨처럼 매일 같지 않고, 얄미운 변수도 많다. 서비스가 계속 흐르게 하는 오퍼레이터, 우리의 활력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오퍼레이터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거의 알고 알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회사 밖 세상까지 오지랖이 필요하다. 무소음 우직함만이 덕목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던 나는 초반에 운영이라는 이 일이 조금 힘들었다. 아웃사이더의 기질을 숨기고 회사 전부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당처럼 고객에게 빙의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가끔 기획서에 데이터가 담겨 있으면 고객의 목소리가 빠져 있거나, 고객의 목소리만 담겨 있으면 실무자들의 원성이 빠져 있는 경우가 있다. 보통 혼자 쓴 경우나 어디 하나에만 꽂혀 있을 때 이런 기획서가 나온다. (다행히 그런 기획서를 썼을 때 실현되지 않도록 해주신 저의 팀장님들께 감사하다) 이런 기획서를 받았을 때, 철없던 주니어 시절에는 함께 수정할 생각은 못하고 불편한 심기를 꾹꾹 눌러 담아 날 세우기만 했다. 그러다 정말 날 새는 날도 많았다. 숱한 밤들을 사무실에서 면벽하면서 깨지면서 깨달았다.
-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제대로 알 것
- 정책의 방향성부터 고객에게 안내될 워딩까지 들꽃 보듯 디테일하게 들여다볼 것
- 플랫폼과 양방향의 고객 (판매자, 구매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사고할 것
- 하나의 예외사항을 만들 때 전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보수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유연성을 가지고 서비스는 생물인 것을 명심할 것
- 나, 내 조직만 알지 말고 함께 할 다양한 부서의 상황을 현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고 조율할 것
콩쥐의 얼굴로 독의 깨진 부분을 두꺼비로 메꾼다.
많은 걸 깨달아도 콩쥐의 얼굴로 깨진 독을 두꺼비로 메꾸는 날이 많다. 사실 거의 그렇다. 스타트업 운영팀 오퍼레이터에게 주어지는 자원은 주로 두꺼비 같은 것들. 어쩔 수 없다. 원망할 사람도, 시간도 없다. 망하게 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
당장 사용해야 하는 이 독에 깨진 부분이 없는지, 해가 떠있을 때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달이 뜰 때 알게 되기도 한다. 어떤 사건으로 독이 깨지면 와르르 무너지지 않게 붙이고 기우고 메꾸는 것, 왜 깨졌을까? 어떻게 붙이지? 이 두 가지를 병행으로 생각하고 신속하면서도 신중하게 이행한다. 독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 그리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 감정 이입하는 것, 그리고 지금 써야 하는 독보다는 나은 새 독을 만드는 것. 이 모든 것이 스타트업 운영팀 안에서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건 그 독이 깨지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것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회사일을 하는데 쓴다. 일을 하면서 생각하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굳이 옮겨 써야 더 단단한 서비스, 그 서비스가 잘 흐르게 하는 오퍼레이터, 나아가 내 인생도 잘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노트북을 열었다. 노트북을 닫고 달력을 넘겨도 계속될 고민과 감정, 실수와 실패 사이에서 얻은 교훈을 써 내려가야지. 아주 가끔 성공하면 나직하게 환호도 지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