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가 학생을 데리고 학교에 방문해야 한다. 교사들은 학부모에게서 취학통지서를 받고 학생 신변을 직접 확인해야 했다.
원래는 1학년 선생님들만 하면 되었지만, 요즘 코로나로 특수한 상황이라 인력이 많이 필요해서 나까지도 나가게 되었다.
학교에 찾아오신 분들 중에는 다문화 가정이 몇몇 있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여자 두 명이 아이 없이 온 일이었다. 한 사람은 나이가 많은 한국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베트남 사람이었다. 나이 많은 분이 먼저 말을 거셨다.
"안녕하세요? 제가 학생의 친할머니는 아닌데요, 이 엄마가 한국어를 잘 못해서 도와주려고 같이 왔어요. 베트남 사람이거든요."
나는 알겠다고 대답한 후에 취학 서류를 받고, 학교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안내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혹시 학생은 어디 있나요? 신변을 확인해야 해서요."
"아! 유치원에 있어요."
"학교에서 학생도 같이 오라고 안내했는데, 못 올 경우에는 전화로라도 확인을 해야 합니다. 유치원 번호 좀 알려주세요."
전화번호를 받은 뒤,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다.
유치원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는데, 내가 학생 이름을 대자 그 아이를 바꿔주었다.
"안녕? 도윤아!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이 도윤이 잘 지내나 확인하려고 전화했어!"
"네!"
"혹시 어머니 이름 말해줄 수 있어?"
"네!"
아이는 크게 대답했다. 그리고 적막이 흘렀다. 학생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길래 내가 다시 말했다.
"도윤아! 혹시 엄마 이름 말해줄 수 있어?"
"네!"
"......."
또 기다렸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도윤아! 엄마 이름 말해 줘!"
"네!"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엄마가 외국인이라서 아마 이름이 어려울 거예요. 아빠 이름 말해보라고 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학생에게 물었다.
"도윤아, 아빠 이름 말해줄 수 있어?"
"네!"
기대를 하고 기다렸지만 역시 아무 응답이 없었다. 전화가 끊긴 줄 알고 다시 학생을 불렀다.
"도윤아? 여보세요?"
"네!"
휴대폰 너머에서 도윤이의 힘찬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도윤아! 아빠 이름 좀 말해줘!"
"네!"
"......."
응답이 없었다. 이렇게 말이 안 통할 줄이야. 초등학교 1학년 올라갈 즈음이면 별 말을 다하던데...
보다 못한 할머니가 내게 휴대폰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른 건네드렸다. 할머니가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도윤아! 아빠 이름! 아빠 이름 알지? 말해줘!"
"네!"
"아빠 이름 말해달라고!"
"이! 도! 윤!"
맙소사. 학생은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자신 있게 말했다. 웃음이 나왔다. 보다 못한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아빠 이름 이길성 맞지?"
"네!"
아이는 어떤 질문을 하던 무조건 '네'라고 대답할 것 같았다.
혹시 몰라서 유치원 선생님과 통화를 하며 학부모 이름과 학생 이름을 대조해서 신변을 확인했다.
신입생 소집일 업무가 끝난 뒤, 같이 있던 1학년 선생님께 웃으면서 말했다.
"올해 1학년 맡으면 정말 힘들 것 같네요. 특히 코로나 때문에 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러자 그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셨다.
"아마 올해는 1학년이 기피 학년이 될 것 같네요. 힘들어서."
오늘은 학교에서 2021년에 새롭게 맡게 될 학년이 발표되었다. 나는... 1학년 담임이었다. 그리고 그 날 같이 신입생 소집 업무를 맡았던 선생님도 1학년 담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