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졸업을 앞두었을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부모님께서 대만으로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하신 것이었다.
학창 시절에 우리 가족은 단돈 100원을 아끼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변기 물 사용량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물탱크에 벽돌을 집어넣은 채 살았고, 샤워할 때는 항상 대야에 물을 받아서 썼다. 사람이 없는 방에 불을 켜 놓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마흔이 넘어서야 첫 차를 구매하셨다. 나는 대학교 선배가 한 턱을 쏘기 전까지 피자헛, 도미노 피자 같은 곳에서 비싼 피자를 먹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동네에 있는 가게 피자가 전부였다.
언제 한 번은 친구가 카페에 가자고 해서 무심결에 따라갔다가 다투었던 적도 있다. 마트에서 1000원이면 사 먹을 수 있는 오렌지 주스를 카페에서는 5000원에 팔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서, 어떻게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냐고 친구를 나무란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 가정은 소비와 담을 쌓고 살았고, 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데 해외여행이라니. 그것도 부모님, 동생, 나 포함해서 네 명이 한 번에 말이다. 돈이 갑절은 들 텐데 부모님께서 그런 제안을 하시다니 놀라웠다.
결국 우리 가족은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대만에 갔다. 처음으로 외국 땅을 밟았을 때 그 설렘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길거리를 거닐 때 옆에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 간판과 표지판에 한글이 없다는 것, 생소하게 생긴 자동차들. 이 모든 것들이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으로 나가 세상 구경하는 것처럼 폴짝폴짝 뛰며 돌아다녔다.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예류 지질 공원, 물이 회색 빛을 띠던 타이루거 협곡, 중정 기념당 등 모든 것이 신기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던 것들을 접하니 세상이 더 크게 보였다.
대만 중정기념당
그 여행이 얼마나 감격적이었는지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대신 15년 전, 대만의 한 호텔 베란다에서 아침 해를 바라보며 내가 한 말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엄마, 아빠. 저 정말 행복해요. 다음에도 이렇게 또 여행 가고 싶어요.”
“그래. 열심히 돈 모아서 다음에 또 가자.”
어떤 일의 첫 경험에 대한 감정은 앞으로의 선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다. 내게 있어서 첫 해외여행은 행복함, 즐거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알을 깨고 나온 기분이랄까? 새로운 것을 보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이런 소중한 경험을 선사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여행에 대한 열망을 마음속 깊이 갖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해외여행이라는 잠깐의 일탈을 꿈꾸며 돈을 악착같이 모았다.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걸치고 손은 아름다운 하늘을 향해 뻗을 수 있는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