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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준 Oct 19. 2021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나를 사랑해 주세요.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타인의 실수에는 늘 관대하다.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은 늘 실수하는 거야.' 어쭙잖은 위로마저 건넨다. 

하지만 내 실수에는 자비란 없다. 왜 그랬니 도대체 뭐가 문제야 다른 사람은 하지도 않을 실수를 하는 거야

내 목을 점점 옥죄어 온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나를 몰아세운다. 

살려주세요 나는 나에게 외친다. 나 좀 살려주세요. 나를 사랑해줘요.


착한 아이, 말하지 않아도 늘 알아서 잘하는 아이, 어른스러운 아이

칭찬인 줄로만 알았다. 

우리 집 장녀, 공부 잘하는 얌전한 아이, 동생 잘 돌보는 언니. 우리 집 내 포지션이다.

정해진 경로를 이탈해서는 안됐다. 

나는 늘 완벽해야 했다. 실수해서는 안됐다. 그래야 손이 덜 가는 어른들의 기준에 맞는 아이가 될 테니.




고작 초등학생이었는데 왜 그렇게 참았을까. 왜 그렇게 어른들 눈치를 봤을까.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집안 사정을 먼저 고려했다. '아니야, 한 번만 참으면 돼' 버릇이 되었다. 먹고 싶은 것 한번, 사고 싶은 것 한번. 그 한 번이 점점 늘어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집안 사정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돈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어른도 없었다. 그런데 왜 말하지 못했을까. 스스로 잘하는 아이라는 틀 속에 스스로 가둔 게 아닐까.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일이 있다. 초등학생 때, 컴퓨터 자격증 응시비용이 필요했다. 만 얼마쯤으로 기억한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가져가면 됐을 것을 나는 그동안 모은 용돈을 가져갔다. 지폐로 채워온 다른 아이들의 가벼운 봉투와 달리 천 원, 오백 원 , 백 원으로 꾸역꾸역 흰 봉투를 채웠다. 묵직한 봉투를 선생님께 내밀었다. 돈 달라는 얘기가 그 어린아이에게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어른들이 기대하는 만큼 충족시켜 줘야 할 것 같았다. 나를 향한 시선들에 응당 보답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눈치 보기 시작했다. 내 감정보다 남의 시선이 더 신경 쓰였다. 이렇게 감정을 죽이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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