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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oraJ Apr 26. 2019

새벽 로마 산책

시차 적응 실패로 인한 뜻밖의 새벽 산책


 같은 장소라도 시간에 따라 다른 매력이 있다. 하지만 로마만큼 낮과 밤의 차이가 극명한 곳이 있을까. 이전의 로마 여행 때는 낮에 주요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느낀 바를 솔직하게 말하자면 로마의 낮과 밤은 매력이 다르다기보다 낮 시간의 로마는 찰나의 운치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별로였다. 트레비 분수는 홍대역 9번 출구만큼 붐비고, 스페인 계단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앉아 있는 인파로 인해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파가 나오지 않게 사진 찍는 각도’가 꿀팁으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진실의 입에 갔을 때는 모두가 포토 라인에 선 듯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놀라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데 그 줄이 어린이날 롯데월드 수준이었다. 앞서 줄 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손이 무사한 것을 지켜보다 보니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햅번의 긴장감을 연출하기에는 웬만큼 낯이 두껍지 않으면 힘들었다. 여유 있게 에스프레소를 한 잔 하며 웅장한 건축물과 경이로운 조각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세 번째 로마 여행에서 우연히 걷게 된 새벽의 로마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차도 사람도 텅 빈 새벽 6시의 로마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아침 햇빛이 차오르던 광장


 로마 인아웃으로 여행을 간다 하니 친구가 새벽에 일어나서 트레비 분수를 꼭 가보라고 권했다. 매일 정해진 아침 시간에 일어나는 직장인이다 보니 여행에서 만큼은 늦잠과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는데 새벽 기상이라니!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하고 흘려들었는데 다행히(?) 시차 적응에 완벽하게 실패하면서 새벽 4시에 아주 개운하게 일어났다. 한국 시간으로 11시니 푹 잘 자고 일어날 시간이 맞았다. 침대에서 넷플릭스나 보며 몇 시간을 보낼 수는 있었지만 배가 고팠다. 조식 시간도 한참 남은 시간이라 결국 24시간 편의점을 찾아 나섰고 뜻밖의 새벽 산책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새벽 산책은 한 번도 본 적 없던 로마의 새로운 매력을 알게 해 주었다. 새벽의 로마는 마치 낮동안 관광객으로 지쳤다가 밤새 에너지를 충전한 후 깨어난 듯 말갛게 갠 모습이었다.


골목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콜로세움. 낮에는 자동차로 꽉 찼을 교차로에 멈춰 서서 빛을 받아 반짝이는 콜로세움을 한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흔한(?) 산책 풍경. 반나절만에 눈 앞의 풍경이 급격하게 달라졌다. 둑흔둑흔.
베네치아 광장에서 바라 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낮에는 멀리서 봐도 보일 정도로 건물 곳곳에 수많은 관광객으로 꽉 차있다.
그리고 트레비 분수. 옆 사람과 대화도 힘들 정도로 시끌시끌하고 북적거렸던 트레비 분수였는데, 아침의 트레비 분수는 고요함 속에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의 마찰음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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