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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Apr 05. 2024

내 남자들의 비즈니스

유튜브 라이브 방송

지난 월요일은 A의 라이브 방송이 있는 날이었다. 이 방송을 끝으로 끝으로 매주 2번씩 하는 라이브 방송은 짧은 방학에 들어갔다. 단콘(단독 콘서트) 준비와 아티스트의 목 보호를 위한 조치라서 팬들은 그동안의 영상 복습을 다짐하며 모두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그날 방송은 만우절 특집으로 진행된 5인뱅(=5인 완전체 방송, 라이브는 대개 2명 또는 3명이 맞춰함. 생일 방송 제외)이었다. 서로의 이펙트(윙크하면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 등 멤버별로 특수한 효과를 가지고 있음)를 바꿔 시연해 봤고, 거짓말 탐지기를 가지고 한참 깔깔거리고 놀았다. 이후엔 속마음 토크를 했는데, 훈훈한 덕담을 기대했던 팬들은 개큰 악플 달기에 웃다가 배가 찢어질 뻔했다.




보통 라이브는 아티스트가 팬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뜻하고 정해진 주제로 놀이를 하는 식의 활동(ex. 공포게임하기, 챌린지 안무 배우기 등)은 자컨(자체 컨텐츠)으로 불리는 것으로 보인다. 재미 면으로만 보자면 후자가 월등히 뛰어나지만 매력적인 컨텐츠 선택과 이를 하리캐리할 아티스트의 역량이 중요하다. A의 경우는 2시간 동안 진행하는 라이브 중간중간 소통 방송을 하긴 해도 거의 빠짐없이 자컨으로 방송을 한다.


좋은 노래, 훌륭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아티스트와 사랑에 빠지는 건 순간이고 또 운명적이다. 그러나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 그 마음이 변치 않고 앨범이나 굿즈의 구입, 스밍, 공연이나 콘서트 참여로 발전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단순한 팬을 코어 팬으로 만드는 데에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예능에 출연해 인지도를 올리고 팬심을 다지면 좋겠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급 때문에 소속사는 라이브, 버블, 자컨 같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노력들이 부재하여 코어팬이 생기지 않는다면 해당 아이돌의 매력은 생각보다 쉽게 잊힐 거라고 나는 단언한다.


라이브의 매력은 나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아티스트를 만나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건 사랑의 흔한 속성이다. 이미지로 먹고 산다는 아이돌인 만큼 그들의 실제 모습과 취향 등을 알 수 있는 라이브에 팬들은 애정을 느낀다. 그를 통해 멤버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아도 조심스럽게 그와의 일상과 미래를 꿈꿔본다. 그렇게 우리 안에 쌓여가는 서사는 이 관계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버추얼 아이돌 그룹인 A의 라이브는 뭐가 다를까? 


나를 포함한 많은 팬이 A의 입덕 계기로 라이브 편집 영상을 꼽을 것이다. 그 영상의 절대다수는 팬들이 직접 만들었다. 홈마(고화질 카메라로 아티스트를 촬영하고 공유하는 사람)가 있는 것처럼 영상 쪽에서도 자체 편집 영상으로 팬들 사이에 유명세를 얻는 계정들이 있다.


나의 입덕을 이끌어낸 영상은 바로 버추얼 아이돌의 오류 영상이다. 라이브다 보니 심심치 않게 오류가 발생하고 이는 그대로 방송될 수밖에 없다. 춤을 추다 목이 꺾이고 멤버 한 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거나 바지에 맨살(맨살일리 없다, 이들은 버추얼이니까)이 보이면 그들은 애절하게 '닥터'를 찾는다.


소속사나 아티스트의 입장에서야 당황스러울 상황이지만 보는 팬으로선 신선한 코미디다. 기술이 보완됨으로써 이런 오류는 줄어들었고 아티스트는 주먹으로 해당 부위를 때려 오류를 고치는 일명 '셀프 물리치료사'가 되었다. 그런데 팬으로서는 이런 점이 조금 아쉽다니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내가 유튜브로 누군가의 라이브를 본 건 당연하게도 A가 처음이었다. 나는 과거 유튭으로 음악을 듣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MZ들은 필요한 정보를 네이버가 아닌 유튜브 검색으로 해결한다고 하고, 또 요즘은 '영상 시대'라고 하지만 내겐 딴 나라 얘기였다. 그랬던 내가 라이브를 보고 언리얼 엔진, 모션 캡처, VFX 기술 등을 알게 된 건 순전히 A 덕분이었다. 현재 버추얼 아이돌인 A의 라이브는 관련 기술 분야에서도 인정받는 높은 퀄리티라는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게 절대 당연한 게 아님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입덕 초반 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활동에 제약인 많은 버추얼 아이돌 A는 어디에서 수익을 얻을까? 결국 다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수입이 들어올 루트가 적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들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다. 그때 알게 된 게 도네였다. 


도네이션은 라이브 방송 중 팬들이 아티스트에게 돈을 기부하는 시스템이다. A는 유툽으로 넘어오기 전 트위치에서 라이브를 시작했고, 거기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유튜브에서도 '슈퍼챗'이라고 불리는 도네 시스템이 있다. 슈퍼챗을 하게 되면 챗이 더 크고 오래 보이기 때문에 아티스트의 눈에 더 잘 띄고 언급을 당할 확률도 높아진다.


이렇게 얼마나 벌까 싶지만, 개인 멤버 생일 방송의 경우 천만 원 단위로 도네가 빵빵 터진다. 버추얼 아이돌에게 도네는 큰 수입원이 될 확률이 높다.(A는 데뷔 1주년을 기해 도네를 중지했다) 도네에 멤버들은 뚝딱거리며 큰절을 하고 황송해하는 모습을 나는 흐뭇하게 바라본다.




1주일에 두 번, 공지로 안내된 요일 저녁 8시에 노트북 앞에 앉는다. 좋은 건 크게 봐야 하기에 스마트폰의 화면 크기는 너무 작다. 이 시간을 위해 저녁에 할 일들을 후다닥 빠르게 처리하는 건 라이브에 임하는 팬의 기본자세다.


과거엔 유튭 라이브가 내 아티스트를 접할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기회였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더 현대에서의 팝업 스토어 성공과 지상파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의 1위, 단콘 10분 만에 매진 같은 가시적인 성과들로 이제 A는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보고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성장한 내 새끼들의 모습은 대견하고 또 자랑스럽다. 그들이 그런 성공을 꿈꿨을 걸 알기에 그렇다. 그런데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못된 심보는 뭐란 말인가? '니들은 이렇게 재미난 걸 모르지? 나만 알지롱!' 했던, 우리들만 알던 그 은밀함을 잃어버렸다. 그래놓도 또 또 내 아티스트가 좀 더 높이 훨훨 날아오르기를 꿈꾸는, 이 복잡다단한 이 마음의 정체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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